너희가 내각제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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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천(dongcpark)등록 2004.03.20 11:18
노대통령을 탄핵한 세력이 내각제 개헌을 획책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그저 하나의 소문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만일 그들이 지금은 여론의 엄청난 비난 때문에 그런 소리를 입밖에 꺼내지 않는 것일 뿐, 혹시라도 사태가 그들에게 조금 호전되어 그런 시도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도무지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벌어져서는 아니 될 염치없는 짓이 되고 말 터이기 때문이다.

설혹 그래봤자 그런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리 만무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 낭비가 벌어지지 않도록 못을 박아둘 필요가 있다.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의회의 권한이자 대통령제를 채택한 모든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다. 의회 다수파가 거론한 노 대통령의 “잘못”이라는 것이 과연 탄핵을 해야 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대해서 나 자신 할 말이 많지만, 그 점 역시 의회 다수파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쳐주자.

그 대신 내각제의 원리에서는 지금과 같은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게 되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우선 내각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의회의 다수가 동시에 행정 권력도 장악하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총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실력자들이 내각을 차지하여 정책을 입안하면 의회에서 다수인 그 정당의 일반 의원들이 그 정책을 법률로 만들어 주게 된다.

따라서 내각제에서 행정부와 의회가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그런 일은 최근 총선의 결과 다수 의석을 얻은 정당 내부에서 예컨대 권력 투쟁이나 노선 갈등으로 말미암아 일부가 떨어져 나와 (탈당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고 어떤 정책에 관한 의회내 투표에서 수상에게 반대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반대쪽에 가담할 때 발생한다.

이처럼 내각제에서는 내각이 발의한 법률안이 의회에서 부결된다는 것은 그 내각은 더 이상 의회의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그리고 이는 곧 새로이 총선거를 실시해야 할 필요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의회 다수에게 행정권을 맡김으로써 권력을 융합하도록 되어있는 체제에서 두 기관의 권력이 갈라져 버렸기 때문에, 이제 어떤 쪽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맞는지를 최종적 주권자인 국민에게 묻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각제에서는 행정권에 대한 탄핵이라는 제도가 불필요하다. 행정부와 의회가 분열된다면 총선을 통해 그 분열을 정리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될 때부터 의회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난 1년여 동안 이 나라의 행정권은 국회와 대립상태에 있었다. 그러한 대립 자체는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을 분리하는 대통령제의 제도적 특성 상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노 대통령은 그래서 취임 초부터 2004년 총선에서 나타나는 민의에 따라 남은 임기 4년을 설계하겠다고 했다. 만약 의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의회의 뜻대로 총리를 임명하고 권력을 나누겠다고 했다.

3월 초에는 총선 결과에 따라 거취를 정하겠다고까지 말했다. 우리 정치판에서는 이 말이 총선 전략이냐 아니냐만 가지고 말싸움을 벌였지만, 헌정적 원칙의 측면에 주목할 때 노 대통령의 발언은 대통령제라 할지라도 의회의 권력이 행정권의 원천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물론 의회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대통령제에서나 내각제에서나 마찬가지로 그렇다. 그랬기 때문에 지난 일년 동안의 분열된 정국에 대한 해법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결정할 문제였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무능하고 부패했는지 아니면 그의 개혁 정책에 내용이 있는 것인지를 국민이 판단하여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이번 탄핵소추안 가결에 70%라는 압도적인 다수 국민이 분노하는 까닭은 바로 그와 같은 결정권 즉 주권을 박탈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의 원리도 의회 권력의 원천도 총선거의 의의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각제 운운할 때 가소로운 생각밖에 들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총선거를 정성껏 준비하여 그 결과에 따르기만 하면 될 일을 두고 이 모든 분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말하는 “내각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으니 그들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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