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엘리트주의와 탄핵 정국

진정한 엘리트 상(像)의 출현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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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돈(foje)등록 2004.03.26 14:44
교육 사회학자 터너(Turner)는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사회적 위치로 상승하거나 움직이는 사회이동(social mobility) 체제를 언급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경쟁적 이동(contest mobility) 체제와 후원적 이동(sponsored mobility) 체제를 들 수 있다.

전자는 경쟁의 참가자가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지위를 획득하는 체제로서 순전히 개인의 자질과 노력에 의해 그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후자는 경쟁 과정이 아닌 기존 엘리트 세력의 후원이나 지지에 의해 개인이나 그룹이 선발되어 기득권을 그대로 계승, 상승적인 지위를 얻게 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경쟁적 이동 체제가 누구나 지위 이동이 가능한 열려있는 체계라면, 후원적 이동 체제는 닫힌 체계를 견지한다는 점에서 그 결정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는 후원적 이동 체제가 고정화되어 사회 전체가 폐쇄적 성향을 지니면 지닐수록 그에 따른 많은 부작용과 역기능들이 생겨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폐해로서 우선 계층 간의 사회적 위화감이 형성되는데, 그로 인해 공동체성의 균열과 분열 양상이 야기되어 진다. 또한 그러한 닫힌 체계 안에서는 각 개별자들의 다양하고도 탁월한 특성들이 구조적으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 역시 더 이상 성숙하거나 발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바로 카스트제도와 같은 계급 제도나 획일주의적인 가부장 체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현실은 어떠한가? 사실 외적으로 우리 사회 내에는 새로운 기회와 경쟁의 장이 보장되어 있는 듯 하지만 기실 소외 계층에게는 교육 기회가 그만큼 낮게 분배되는 등 계층 간의 각종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어 있다고 하겠다.

즉, 부모의 교육수준이나 직업적인 지위가 높을수록, 가족의 사회적 자본이 많을수록 계속해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점유하는 닫힌 엘리트주의 구조가 우리 사회 속에 이미 자리 매김 하게 되었고, 그러한 단단한 틀과 껍질은 쉽게 깨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외적으로는 경쟁적 이동(contest mobility) 체제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후원적 이동(sponsored mobility) 체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왜곡된 엘리트주의가 우리 사회의 각 개인 및 공동체들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가로막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더 이상 시대의 대세와 흐름 앞에서 기존의 왜곡된 엘리트주의가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되면서 학벌주의와 지역 연고주의 문화 등 우리 사회를 폐쇄 체계화시켰던 각종 요소들이 비판적인 저항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수구적인 엘리트 세력은 그 이기주의적인 한계를 스스로 탈피하지 않은 채 시대정신과 그 흐름에 역행하여 비(非) 엘리트 세력과의 기세 싸움을 시도하였으며, 그것은 비주류로 상징되는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갈등을 촉발시킨 후 현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닫힌 엘리트주의 수호를 위한 마지막 카드를 내던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탄핵 소추 전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일류학교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잘 짜여진 학벌과 연고 사회의 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돛단배와 같다"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일리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네 인식적 접근이 '엘리트 對 비(非) 엘리트'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구도에 천착되어 계층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양상으로 나타나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 사회 내에 이러한 왜곡된 구조가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다라는 이 엄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분명 정확하게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 및 공동체의 진정한 성숙과 발전을 저해하는 우리 사회의 폐쇄적인 엘리트주의 문화는 분명 비판받아야 하고 청산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모든 주체들이 깨어 있는 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우선 기존의 엘리트주의자들은 철저한 반성적 고찰을 통해 그동안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소외된 계층들과 그 삶을 함께 나누지 않았던 자신의 삶에 대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먼저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벽을 깨는 자기 비움과 섬김의 정신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기존의 비 엘리트 세력은 여러 갈등과 소외 의식들을 역사의 물결 앞에 내어 맡기고 새로운 시작과 도약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마 금번 총선은 비 엘리트 세력들이 한 단계 더 도약하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류들로서 그 입지를 다지는 본격적인 출발의 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비 엘리트 세력들은 과거의 주류 세력들이 왜곡된 엘리트주의로 전락된 그 전철을 밟지 않도록 자신들의 양심을 계속해서 예리하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회를 건강하게 이끄는 양심적이고도 건전한 엘리트들로서 끝까지 그 정체성을 지켜 진정한 엘리트 상(像)을 우리 시대에 올바로 정립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탄핵 정국의 원만한 마무리가 그러한 기대의 실현을 앞당기게 하는 절호의 기회로 작용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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