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 노조금지 합헌결정의 악몽 재현될까?

헌재 결정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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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헌(yeslne)등록 2004.03.27 13:07
대부분의 국민들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거나 각하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법학자들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헌법재판소가 그런 '상식적'인 결정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언제라도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인 1991년 헌법재판소가 수많은 법학자와 교사들의 기대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

노동조합 금지조항으로 교사 1600여명 해직

1989년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교원들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하였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가입자 전원에 대한 해고를 지시하였다.

국공립학교 교사 중 50여명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에 의하여 구속되고, 1000여명은 해임 또는 파면처분을 당해서 교단에서 쫓겨났다. 500여명의 사립학교 교사들도 사립학교법 제58조의 '노동운동금지'조항에 의하여 대부분 직권면직의 형태로 교단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사립학교 교사들에 대한 노동조합 금지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였으며, 전교조 가입 교사들이 용기를 내는 근거이기도 했다.

당시 전교조에서는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노동조합 금지조항은 위헌이기 때문에 사립학교 교사들의 해직문제는 곧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있었다. 그러면서 사립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합법화될 경우, 대비방안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사립학교 교사들로 전교조의 위원장 등 간부를 구성하고 공립학교 교사들이 그 산하에 가입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었다.

낙관적인 견해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33조에 노동기본권인 노동3권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일부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헌법 제33조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③ 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근로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되, 공무원에게는 법률이 정하는 공무원에 한하여 노동3권을 부여하며, 방위산업체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공무원인 국공립학교 교사들에 대해서는 법률에 의한 제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 헌법조항을 보면 공무원이 아닌 사립학교 교사들에 대해서 노동3권을 제약할 합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즉, 사립학교 교사들에게 노동조합을 금지시키려면 교사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거나, 사립학교 교사가 공무원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립학교 교사는 분명히 근로자의 신분이며, 공무원이 아닌 것은 명확했다.

당시 사립학교 해직교사의 소송에 임했던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 법원에 사립학교법 노동조합 금지조항이 헌법 제33조의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위헌청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국 28개 재판부에서 100건의 위헌제청신청

1990년 전국적으로 해직교사 1600명의 복직을 위한 소송이 진행되면서 사립학교 교사를 담당하는 민사재판부에 일제히 위헌제청신청이 제출되었다. 당시 이 제청신청은 77개 학교법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28개 재판부에 총 100건이 제출되었다.

당시 각 법원의 민사재판부에서는 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일제히 위헌법률에 대한 심판을 요청하였다. 위헌법률심판에 대한 제청신청이란 재판부가 직권으로 또는 소송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하고 있는지를 심판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신청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법의 노동조합 금지조항이 헌법 제33조의 노동기본권 조항을 위반하고 있다면 사립학교법에 의한 교사 해고는 무효가 되기 때문에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복직 소송을 담당하는 모든 법원이 그 소송을 중지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었다.

전국의 28개 담당 재판부가 해당 조항에서 위헌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전국에서 속속 위헌법률심판제청이 헌법재판소로 올라가면서 교사들과 언론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각종 토론회에서도 사립학교법 노동조합 금지조항의 위헌성에 대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본질적 내용을 훼손할 수 없을 것으로 기대

당시 학자들이나 교사들은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릴 논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워낙 헌법 제33조의 조항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으며, 헌법 제37조 2항에 기본권을 제한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한한다면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수준으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당시 노태우정권이 정권을 걸고 전교조 교사에 대한 대량해직을 한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명백한 위헌법률을 합헌으로 주장할 근거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더 많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사립학교 교사들이 중심이 된 전교조가 합법화될 경우에 대비한 방책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문건으로 작성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헌재 노조금지조항 합헌 결정

1991년 7월 22일. 89헌가 106호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통상 헌법재판소의 결정 기간을 훨씬 넘겨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결과는 예상을 깨고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노동조합 금지가 합헌이라는 것이었다. 당일 퇴근 이후에 축하잔치를 하려던 전국의 전교조 교사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결정이었다. 전교조 사무실에 모인 교사들은 그 날 밤을 새워 술을 마시면서 실망감을 달랬다.

기발한 논리를 개발한 헌법재판소

헌법 제33조에서 사립학교 교사들에 대한 노조활동 금지의 근거를 찾지 못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1조 6항을 합헌의 근거로 주장하는 기발함을 보였다. 헌법 제31조는 노동기본권이 아닌 국민의 교육권에 대한 조항이다.

헌법 제31조에는 모든 국민이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 등은 보장하며,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하고,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서 제⑥항에는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제6항의 본래 취지는 자의적인 행정권력에 의하여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의 지위가 침해받지 않도록 자격요건, 신분보장 등 교원의 지위를 법률로 정한다는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조항에 의하여 교육관계법령에 교원의 신분보장조항, 교원의 전문성 보장조항 등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들어 교원의 헌법이 정한 노동기본권을 하위 교육관계법령에서 제약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즉, 헌법 제33조에는 공무원이 아닌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노동기본권 제한이 없다 하더라도 '교사'이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을 하위 법률로 제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사의 권한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헌법 제31조 6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사립학교 교사에 대한 노동기본권 금지의 근거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아무도 이 조항을 근거로 합헌결정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일부 헌재 재판관의 격렬한 저항

이 합헌결정에 반대하여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의견서에서 격렬한 저항을 읽을 수 있다. 당시 위헌의견을 낸 김양균 재판관은 다음과 같이 의견서를 맺고 있다.

"헌법의 해석은 헌법의 명문의 규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목적론적 해석방법을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명문규정의 의미적, 논리적, 체계적 해석의 한계를 일탈할 수 없으며, 함부로 헌법의 명문규정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내용을 경시하는 헌법해석을 한다면 그것은 어떠한 이유와 명분을 실시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헌법저항의 요인만 양산,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헌법은 곧이곧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이치를 재차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어서 변정수 재판관의 위헌소수의견서는 당시 전교조 교사들이 거의 암송할 정도의 격렬하고 감동적인 문구로 마무리되었다.

"너무도 명백한 위헌법률에 대하여 합헌 선언함으로써 공권력의 위헌적인 처사를 합리화시켜준 다수의견의 논리는 견강부회(牽强附會)적인 헌법해석으로 헌법정신을 왜곡하였다는 평을 듣지 않을까 염려된다. 헌법정신의 왜곡은 그것이 가사 주관적인 애국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도 가장 경계해야할 헌법 파괴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독재 정권에 굴복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당시 노태우정권은 전교조를 탄압하면서 정권이 동원가능한 모든 권력을 동원했다. 심지어 면사무소 직원까지 전교조 교사를 감시하고 탄압하는데 활용했으며, 당시 삼성그룹차원의 전교조 대응문건이 공개되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은 이러한 권력의 의중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반대의견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명백한 위헌법률에 대하여 합헌선언'을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합헌결정을 하면서 논리를 구성하기 위하여 '사립학교 교사의 지위는 공립과 다르지 않다'거나 '사립학교법의 직권면직 조항은 반드시 직권면직 시키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등의 억지를 써야 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의 비상식적인 결정이 그것으로 마지막이었을까? 아니다. 이후 국가보안법에 대한 한정합헌, 합헌결정 등 사회적인 약자나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보수정치세력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쪽의 무리한 결정이 많았다.

한 헌법학자가 쓴 헌법재판소에 대한 논문의 머릿말에는 헌법재판소의 발자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가 실려있다.

"돌이켜 보면 헌법재판소가 그 동안 걸어 온 발자취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떳떳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정의 크고 작은 갈림길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권위마저 저버리고 위헌적인 법률이나 법률규정을 정당화하거나 묵인하는데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수록 갖가지 궁색한 논리를 동원하여 황금의 도피길을 마련해 주거나, 놀란 자라처럼 아예 몸을 움츠리며 적극적인 헌법 판단을 유보하기 일쑤였다" (인하대학교 국순옥 교수의 "헌법 재판의 본질과 기능"에서)

과연 헌법재판소는 과거와 다르게 공정한 결정을 할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걸어온 길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보루로서 헌법의 기본권을 신장시키고 지켜내는 방향의 결정보다는 정치.경제 권력을 유지하는 보수적인 결정을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매우 기발한 논리로 뒤집혀 왔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과 교사들이 사립학교법 위헌 결정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조항을 들고,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동원해서 합헌결정을 내렸던 그 사립학교법 합헌결정과 같이 다시 2004년에 국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논리로 탄핵이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독재권력을 지켜온 것은 공안세력 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법조인들이었다. 그 중에서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이들이 모여있는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상식과 부합되는 결정을 할 것이라고 순진하게 기대하기 어렵다. 변정수 재판관의 말처럼 보수적인 헌재 재판관들의 '주관적 애국주의'가 발동하게 된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보게 될지 모른다. 오늘 촛불을 더욱 높이 들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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