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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경제 부총리 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발표됐다. 37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를 구제할 특단의 대책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그 이전부터 뜨거웠다. 발표된 이후의 여론의 반응은 일단 시큰둥하다. 더구나 언론은 정책으로 야기될 도덕적해이를 예단하며 신용불량자 대책이 미온적 해결책이란 평을 내놓고 있다. 정책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응당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의 수가 마련된 특단의 대책이란 일종의 기대심리의 과잉적 상징일뿐 현실적으로 정책은 많은 무리수를 상정하고 입안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총선과 맞물려 정책 실행의 입지가 좁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책이 실행되기 이전부터 부작용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객관적 접근은 아닌 것 같다. 즉 선심성 정책 혹은 단순히 신용불량자의 숫자줄이기에 급급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에 경도되는 것보다 정책의 실효성과 목적을 차분하게 타진해보자는 얘기다.
자동차와 IT수출 증대에 힘입어 경제성장률은 낙관적 전망치를 구가하고 있지만 내수진작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국내 소비경제는 여전히 복지부동으로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고 있고, 소비심리는 갈수록 위축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업률도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경제를 보는 시각은 그 학문적 얼개의 방대함만큼이나 다양하기 때문에 짧은 지면과 지식으로 원인분석을 명쾌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에서 양산되는 여러 불안요소 및 실업률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누구나 동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시름의 중심에 신용불량자 문제가 있다. IMF탈출을 위한 소비경제의 활성화 정책과 카드회사의 무분별한 카드남발이 결국에는 오늘날과 같은 구조적 신용부실을 만성화시키게 됐다. 지나간 정책의 오류와 시장의 비합리적 과열을 질타하는 반성은 계속해서 반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를 모색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부터 현정부의 정책을 면밀하게 검토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신용불량자 대책과 그 이전의 신용불량자 양산의 정책적 오류를 연장선상에서 성급하게 매듭지어서는 곤란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해야 가장 큰 기우인 '도덕적 해이'의 양산이라는 비판이 어떠한 하중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판단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신용불량자 대책은 크게 단기소액채무자와 5천만원이하의 다중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책으로 나누어 진다. 그 중에서도 다중신용불량자를 위한 배드뱅크제의 도입이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 논란의 중심에 있다. 배드뱅크가 실행될 경우 채무자가 원금의 3%를 우선 상환하면 신용불량자에서 제외시켜준다. 채무관계는 배드뱅크를 통해서 일원화되며 최장 8년 동안 6%수준의 금리로 원금을 상환해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채무자의 연체이자는 탕감되며 원금에 대한 상환의 의무를 지게 된다. 채무자의 해당 금융기관은 부실채권가격에 해당하는 8~10%의 금액은 현금으로 돌려받고 나머지는 배드뱅크에 출자전환하거나 수익증권으로 돌려받는다. 출자받을 부실채권은 액면가 10%안팎의 시세대로 평가받게 된다. 간단하게 이와 같은 운용이 배드뱅크의 기본적 요체이다. 무엇보다 신용불량자라는 딱지의 제거가 개인채무자에겐 시급한 문제이다. 기본적인 금융거래와 신용거래에 있어 권한을 많은 부분 제한당하기 때문이다. 채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빚을 갚아나가야 해야 하는 마당에 이와 같은 제한은 이중고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많은 수가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용불량자는 채용상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
경제심리의 차원에서 신용불량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법은 그 규모를 줄여나가는 것이 정도다. 신용불량자의 도덕적해이가 370만이라는 숫자규모에 안주하려는 안이함과 국가를 향한 일종의 암묵적 담합차원에서 읽힌다면 그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이 타당한 방법이다. 물론 단순히 숫자놀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정부측 예측대로 100만명 정도를 자포자기에서 벗어나게 해서 경제활동 의지를 촉발시킨다면 개인 채무자가 신용불량자라는 불리한 경제활동 조건에서 버티기를 할 이유가 엷어지게 된다. 감이 떨어질때 까지 기다릴 느긋하고 여유있는 채무자는 극히 일부라는 얘기다. 물론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단호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시혜성 정책이 남발되서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요동치면 더이상의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는 강직한 태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 대 개인의 채무관계에 대한 조정이 아니다. 다시말해 개인 채무자가 여론이나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곧이곧대로 예정없는 정책에 그의 생계를 의탁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억지스럽다는 얘기다.
'도덕적해이'는 신용불량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조사에 의하면 신용불량자의 63%가 채무재조정이 없이는 빚을 갚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신용불량자가 된 원인은 사업실패 37%, 본인실직 24%, 배우자 및 가족실직 13%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무분별한 소비에 기인한 자책적 신용불량자가 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조적인 경제불황에 의해서 부득이하게 신용불량자의 지위로 내몰린 사람들이 많다. 물론 신용회복정책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고용을 증대시켜 그들이 빚을 갚아 나갈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고용확대 정책을 진행시키고 있다. 물론 근거없는 수치를 남발하는 구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장밋빛 낙관에 순진하게 동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내놓는 정책의 약점만을 확대해석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책하나만을 떼어놓고 보는 것보다 전체적인 경제정책 구도하에서 그 흐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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