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0만 관객시대에 관한 단상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는 '비상업주의 작가영화의 몰락 시대'와 동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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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일(allday33)등록 2004.04.11 09:06
2004년 벽두부터 두 편의 한국 영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증유의 흥행 돌풍은 급기야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언명할 지경이다.

'한국영화 1000만 관객 시대'. 하지만 현재의 한국영화를 규정짓는 이 '1000만 관객 시대'라는 화려한 문구에는 산술적 의미만 있을 뿐, 시대영화를 규정짓는 영화적 특질은 결여되어 있다. 그러기에 언론에서는 1000만이라는 전대미문의 숫자 앞에서 영화가 창출해 낼 수 있는 부가가치를 셈하기에 분주하고, 영화계는 한국영화의 비약적 발전을 자축하며 성공 요인을 벤치마킹하기에 여념이 없는가보다.

한국영화의 성공시대라 일컬어지는 이 '1000만 관객 시대'를 오히려 '비상업주의 작가영화의 몰락 시대'라고 규정짓는다면 지나친 언사일까.

'비상업주의 작가영화의 몰락 시대'는 두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자본에 의한 영화시장의 지형 변화와, 국가주의의 발로이다. 1999년에 처음 등장한 멀티플렉스로 인해 영화관 수와 스크린 수는 반비례하고 있다.

전국 영화관 수는 300여개로 감소했지만, 스크린 수는 오히려 1000여개로 증가했다. 멀티플렉스는 기존 영화관의 도심 진중에서 탈피, 부도심과 지방으로 확대되어 영화관람객의 접근성을 향상시켰다.

극장업뿐만 아니라 배급사와 제작사의 규모도 수직적 통합과 투자자본의 유치를 통해 비대해졌다. 소수의 배급사가 영화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 규모의 확대는 철저한 자본 논리에 입각해 전체 스크린의 절반을 한 영화로 도배하기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자발적 동의에 의한 국가주의의 발로이다. 소재는 한국현대사가 선택된다. 마케팅 전략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시켜 국가주의를 자극하며 이는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다.

1000만 관객 시대나 2004년 1/4분기 한국영화 점유율 70%라는 통계수치는 그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이 통계수치를 보며 한국영화의 눈부신 발전에 고무되어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며, 애국심의 발로에서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흥행기록을 세워 가는, 우수한 한국 여화를 확인하려는 애국심으로 포장된 국가주의. 국가주의의 폐해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기제에 의해 결과적으로 시장의 불균형이 은폐되고 있지 않을까. '한국영화 점유율 70%'는 '한국의 소수 상업 영화와 할리우드 대작의 시장 점유율 95%'라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영화 관람객의 사전선택권을 차단해 버린다. 아무리 다양한 상품이 제조되어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영화계와 언론계에서는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건 이율배반적이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서 내세웠던 명분이 무엇인가. 자국 시장 보호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시장에서 비상업주의 작가영화는 상영관을 확보할 수도 없다. 또한 외국의 작가주의 영화는 스크린쿼터의 장벽과, 특정 한국영화들의 시장 잠식으로 더욱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국가주의'의 발로가 시대정서에 의한 일시적 사건이라면, 자본에 의한 지형 변화는 구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의해서만 작동되는 영화시장에 제동을 거는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해서 다양한 영화들이 공존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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