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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
4.15 총선의 출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열린 우리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한나라당이 120석 정도의 의석을 확보한 가운데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인 결과를 받아보고 지역적 득표율 등에 대한 분석를 첨부하여 더욱 면밀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탄핵 역풍 이후에 있었던 우리당의 자만과 안이한 정국 대응을 보아야 했던 경험에 비추어, 개혁 진보세력이 4.15 총선 절반의 승리에 대한 지나친 승리에의 도취되지 않고 좀 더 긴 안목의 전략적 역사적 사고를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한국 민중의 승리
무엇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느슨한 의미에서 개혁 진보 세력이 국회의 과반을 점하는 6 대 4 정도의 역전이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의 진전으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도하였던 개혁 과제들을 치체시켰던 수구 냉전 세력들로부터의 역사에 대한 반동과 저항의 늪에서 어느정도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민노당의 국회입성으로 보다 선명한 진보적 주장과 국민의 목소리들이 국회에 전달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계기들에서 보여지듯 승리와 실패가 승자의 정당성을 패자의 부당함과 어리석음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승리는 역사가 우리들에게 던져 준 과업의 절반의 성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절반의 승리 조차 한국 정치의 승리가 아니라 한국 시민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민주수호를 위한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이슈를 주도한 선거
이번 총선의 이슈를 생산하고 주도한 정파가 어디였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탄핵정국에서부터 박근혜 바람, 정동영 노인폄하 발언까지 충선의 굵직한 이슈들을 생산하고 전파한 집단이 한나라당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후 보여준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냉전 식민세력들의 위기 의식은 소위 진보진영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크고 깊은 것이었다. 일면으로는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자체가 위협받는 존재의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관행으로 혹은 응당한 대가로 간주하였던 폭력과 부정과 부패가 자신들을 심판하는 길로틴의 단두대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그들은 정확히 주시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론 세련되지도 못하고 지식과 경륜에서도 떨어지는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모셔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분열적 자존심의 상처를 경험해야 했다. 그 결과 수구냉전 세력은 노정권 등장 이후 무려 150회 이상의 탄핵 협박을 거듭해 왔으며, 총선을 앞두고 탄핵의 카드를 빼어든 것은 매우 정교히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느끼고 있었던 위기감은 당시의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의석 3분의 1을 확보하기도 힘든 처지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잊어가고 있지만, 선거 전에는 차떼기와 세풍의 부패, 북풍의 공작, 방탄국회의 조폭적 행동들이 국민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절반의 성공
탄핵가결이 있기 전날 밤 최병렬이 기자들에게 했다는 말에 따르면, “이것은 의회 구데타다…. 젊은이들은 말은 많지만 투표율이 낮은 반면에, 노장층은 성실히 투표장에 나가기 때문에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만 결집하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류의 주장을 하였다. 전통적 지지자의 결집으로 어떻게 한나라당이 승리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의 지지률은 약 30 % + 알파 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지도로 승리를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3당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제 1당 한나라와 우리당, 민주당의 3당 체제를 구축하고, 탄핵의 과정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민주와 사안별 연대를 모색하는 제법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듯한 구상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철저히 지역구도의 부활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박근혜의 옹립으로 더욱 강화된 지역주의와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경상도와 부산의 탄핵풍을 잠재우고, 그것이 전라도의 민주당 지지로 연쇄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노장층의 투표율을 자극하는 정동영의 발언으로 한나라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계기를 확보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총선의 이슈를 독점하였던 한나라당의 이같은 총선 구도는 대체적으로 그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고 탄핵소추를 담당하고 있는 국회 법사위원장 김기춘의 당선, 고문공안 공작정치의 달인 정형근이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아야 해던 이철을 누르고 당선, 1971년 생의 김희정이 시인이며, 교수이고 여성활동가인 노혜경을 이기고 당선, 김문수가 또다시 국회에 발을 디디게 되는 이 참담한 상황이 과연 누구에게 승리란 말인가? 한나라당은 총선 이전의 기준에서 이번 선거에 절반 이상의 승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선거전 막판 소위 “박풍”을 더욱 몰아쳐 의석수로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여러곳에서 전사한 관록의 노장들에 대한 인사치례로 침통을 표할 수 있겠으나, 그들은 탄핵정국으로 추진하였던 정치적 목표를 당설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의 진보와 함께한 남도의 시민대중
저 교활한 수구세력들이 탄핵의 역풍을 저들이 몰랐을리 없다. 단지 탄핵의 역풍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광범위했다. 실은 그것조차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들의 전략에 가장 치명타를 날린 곳은 이번에도 광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의 성지에서이다. 경상도에서의 지역바람을 전라도를 자극하려는 그들의 책략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남도의 정치의식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다. 여타 모든 지역의 선거행태는 탄핵정국이 아니라 차떼기당의 이미지로도 그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자기살을 도려내 가면서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역사의 발전에 헌신하는 남도의 민초들, 내가 단 하루도 지내본 적이 없는 남도땅에 살고 있는 나의 형제들 자매들, 어르신들, 아이들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우리당의 어부지리 절반의 승리
열린우리당은 이번 총선 과정을 통해 여전히 함량미달의 어중간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탄핵사태를 그들이 막아내지 못한 것처럼, 파병의 문제를 막아내지 못했던 것처럼, 노정부의 대북외교정책을 견인해내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들은 지역주의 부활를 막아내라는 역사적 과업에 실패하였다. 부산, 경남에서 의미있는 의석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민주당과 무리해 갈라설 이유가 무엇인가? 열린 우리당의 승리는 총선 과반 의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산 경남에서의 의미있는 의석확보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당은 국민이 가져다 준 밥상에 가끔 코를 빠뜨려가며 하나마나한 선거 운동을 하였던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이 더 길었으면 더 많은 의석을 잃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결코 우리당의 승리가 아니다. 단지 역사를 밀고 가는 한국의 시민대중이 어쩔 수 없이 우리당에 가져다 준 숙제일 뿐이다.
민노당 승리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민노당의 약진은 과히 역사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당의 국회진출은 한반도 남단의 정치지평를 새롭게 짜는 의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 기간 혹은 이전에 보여준 민노당의 모습 또한 대안세력이라기 보다는 문제제기자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하겠다. 이번 총선이 가지는 역사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민노당 스스로가 얼마나 역사의 진보를 향한 전략적 사고를 하는지는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수구적인 경상도 지역에서 민노당의 약진? 이상하지 않은가? 넓은 정치 지평에서 민노당은 어느정도 지역주의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민노당은 야당이 없는 경상도에서, 김대중의 입김이라도 끼어있는 당이나 다른 지역적 기반을 가진 당을 지지하느니 민노당을 지지하겠다는 무의식적인 반사행동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소위 진보주의자들의 무의식 속에도 숨어있는 지역주의의 덫을 벗어버리는 일은 매우 힘들고 오랜 고통의 기간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의 원내 진출에 마음으로부터의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
민주당의 몰락
누구보다 민주당은 이번 탄핵정국의 최대 실패자이다. 민주당은 그 역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두가지 절체절명의 존재 부정의 실수 혹은 그 이상의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는 구시대적 부정부패 정치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내부개혁에 소홀하였다는 점이다. 그들이 더욱 부패하고 이성을 상실하여 간 과정은 그리고 결국 얼마나 한나라당과 동질성을 느껴 갔는가는 한나라당과 공조의 과정을 통해서 드러났다. 특이한 것은 한-민공조는 대부분 중요 정책적인 차원이 아니고 정치개혁을 방해하거나 국정을 파탄시키는 것에 모아졌다는 것이다. 둘째는 민주당이 존재 가능하게 하였던 남도시민들의 정치의식을 무시하고 모욕을 가했다는 점이다. 지역바람이 불면 미워도 다시한번 민주당을 지지해 줄 것이라는 배반의 판단이야 말로 남도 시민대중의 선진적 민주의식을 모욕하는 행동이며, 수구 냉전 식민 세력 한나라당과의 야합이야말로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수호한 이들에게 대한 배신이며 조롱이라는 점을 민주당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탄핵 불과 하루를 앞두고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여 탄핵을 지지한 추미애의 처지는 대단히 안타까운 것이다. 지금으로선 진보하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모든 개개인의 입장과 처지까지 차분히 살피지는 못한다는 슬픈 현실을 인정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열린 우리당이여,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라.
결론적으로,
한나라의 구도에 따라 치루어진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의 절반의 승리, 열린우리당의 절반의 실패, 역사가 수여한 민노당의 얼결의 승리, 민주당의 참패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다의 절반의 승리를 부끄러운 경상도 지역주의의 전략에 의해 가능하였으며, 우리당의 절반의 실패(주어진 절반의 성공), 민주당의 참패는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남도 시민대중의 성숙한 민주의식과 헌신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
역사와 국민이 의미있는 한 걸음으로 절반은 왔다 하더라도,
우리당은 아직 한걸음도 걷지 못하였다는 것을 명심하고, 내부 개혁과 국정운영에 있어 크게 변화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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