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차압> 포스터 ⓒ 국립극단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4.15총선을 거치며 우리는 부패, 무능 정치인들이 펼치는 한편의 잘 짜인 희극을 보고 있다.
대통령 탄핵직전,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보여 줄 수 있는 온갖 부조리한 모습들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50년간 해결하지 못한 친일청산의 첫 단추를 꿰는 <반민족행위에관한특별법>은 일제 강점기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정치인들이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고, 대선불법자금 수수는 007영화를 능가하는 민첩함과 영민함으로 국민들의 상식을 무너트렸다. 또한 산적한 민생법안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던 이들은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구속된 동료의원의 석방동의안을 제출, 탈옥에 성공시키는 끈끈한 동료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런 정치인들의 행위가 국민들의 야유를 받자, 이들은 동네북처럼 두들기기 쉬운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키고 독립운동을 한 것 마냥 ‘대한민국만세’를 외쳤다.
2004년의 이 우울한 정치코미디는 열린우리당의 총선 과반승리와 민주당, 자민련, 한나라당 출신의 코미디언들이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 종국으로 가고 있다. 헌재의 판결 혹은 정치권의 탄핵 철회가 이 희극의 결말이 될 것이다.
생생한 정치코미디가 매일 계속되는 가운데 이 사회 기득권층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정도되는 ‘이중생’이라는 인물의 몰락에 관한 희극, <인생차압>이 국립극단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됐다.(2004. 4. 13 ~ 19) 이 작품은 전통연희의 해악을 현대극에 잘 접목시켰던 오영진의 1949년 작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가 원작이다.
일제에 빌붙어 재산을 축적한 이중생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미국에 빌붙어 일본인 소유의 삼림회사를 몰래 가로챈다. 하지만 이중생은 미국인 랜돌프에게 사기를 당하고 그간의 범죄행위도 들통이 나면서 전 재산이 국고에 환수될 처지에 빠진다. 그는 위장자살을 통해 재산을 지키려 하지만, 사건의 방향은 그의 생각대로 흐르지 않고 그는 진짜 자살을 한다.
이 작품은 동시대의 사실주의 작품들과는 달리 민요조의 운율과 판소리의 해악, 풍자가 잘 묻어있다. 이번 공연에서 원작의 운율과 리듬을 살리기 위해 고어를 제외하고 원작에 충실했다. 또한 이중생, 부인, 형, 자식들 등 전형적이며 개성이 강한 희극 속 인물들이 극의 충실함을 더해주었다.
특히 이번공연은 1957년 <인생차압>에서 이중생역을 맡아 찬사를 받은적이 있는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가 주인공 이중생역을 맡아 그 의미를 더했다. 올해 80세인 장민호는 비록 발음이나 움직임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존경받는 원로배우가 무대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관객에 감동을 줬다. 그 외 국립극단의 중견배우 이희승이 이중생역에 더블캐스팅 되었고 부인 우씨 역의 이승옥의 연기도 눈여겨볼만했다.
이번 공연은 중견연출가 강영걸이 맡았다. 그는 <불 좀 꺼주세요>, <피고지고 피고지고>,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등의 작품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바 있다.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해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을 말한다. 해방직후 파렴치한 기득권층을 비판하던 희곡이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관객에게 폭소보다는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차압>은 한국연극의 고전이라 말할 수 있다. <인생차압>은 희극이지만 제2의, 제3의 ‘이중생’이 득실거리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비극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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