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의 알프스란 이정표에 일행의 마음은 다들 들떠 있었다. ⓒ 황재만
'동양의 알프스'라 적힌 이정표. 다들 더더욱 마음이 설레었다. 정말 경치가 좋을것 같은 기대감에 두말없이 산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여전히 궂은 날씨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혹시나 비가 온다 하여도 모두들 후회없이 정상인 영봉까지 가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시련은 생각보다 일찍 다가왔다. 불과 2-30분정도 올라가다보니 빗방울이 굵어지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비다. 그 비에 미리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정상가기를 포기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마애불에 도착해 반쯤 뚫린 동굴에서 일단 비를 피했다.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본래 색다른 분위기를 접하면 동료들간 미처 나눠보지 못했던 생각이나 말들을 쉽게 할수있는법. 각자가 조금은 더 깊이 담아 두었던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 할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본 것 또한 소득이었다. 30분을 기다려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정오를 지나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정상에 가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 산에 오르던중 빗방울이 굵어지고 안개가 짙게 끼기 시작했다. ⓒ 황재만
더 이상 지체 할수 없어 비를 맞으며 정상으로 향했다. 본래 산이름에 '악'자가 들어간 산은 매우 험하다는 속설이 있다. 아마도 속설이 아니라 사실일 것이다. 치악산, 설악산, 지금 오르는 월악산도 마찬가지. 그래도 다들 젊은탓에 잘들 올라갔다. 다른 국립공원도 마찬가지지만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거나 아주 위험한 경우를 당하지는 않는다. 가파르면 계단을 만들어 놓았고 계단 만들기도 힘들면 쇠파이프를 만들어 놓았다. 등산길이 편해 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산의 본래 모습이 훼손된듯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13년전에도 험했었고 소문도 험하다고 났던 월악산인데 이상하게도 보통의 산과 별반 다를것 없는 등산길이 이어졌다. 비는 부슬비로 바뀌었고 그다지 힘들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분명 예전에 왔을때는 이렇게 만만한 산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이내 그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사도가 느닷없이 가파르게 변하고 편하던 길 대신에 암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비가 오고 있어 미끄럽기 까지 했다. 게다가 산자락에 머물고 있는 구름으로 인해 10m앞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갑자기 나빠진 환경탓에 다들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주위엔 우리 일행을 제외한 다른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우리 모두를 더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끝이 없을것 같은 계단이 보였고 오르고 올랐지만 항상 그 자리 인듯 했다. 주위의 짙은 안개로 인해 애초에 경치를 구경하고자 했던 기대는 접은지 오래이고 그래도 정상까지는 가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 하나로 계속 위쪽으로 올라 갔다. 구름에 가려진 계단을 보니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이 아닌가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도 해 봤다.
▲ 끝없이 이어진 계단. 안개로 인해 마치 하늘로 이어진 계단인듯한 착각이 들었다. ⓒ 황재만
비는 그치지 않았고 정상으로 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져 갔다. 험한 암벽을 오르고 나니 평탄한 능선이 이어졌다. 정상으로 가는길에 마주친 평탄한 능선은 여태껏 고생해서 올라온 사람들에 대한 산의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일행은 다시금 힘을 내고 정상을 향했다. 정상이 가까워 져 갈수록 빗줄기는 굵어 졌고 바람도 세졌다. 하지만 설레임도 그에못지 않았다.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 등산에 취미없는 사람이야 올라가면 내려올꺼 뭐하러 힘들여 올라가냐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에 올라갔을때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 올라간다고... 그렇다면 나는... 사실 나는 올라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반드시 한걸음 한걸음 옮겨야만 정상에 다다를수 있는(최근에는 산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올라가는 산이 많긴 하지만),그래서 그 걸음 모두가 의미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옮기는 걸음걸음을 좋아한다. 또한 그렇게 움직여 몸에 땀이 배는것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한편 등산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상에 섰다가 하산하는건 아이러니컬 하게도 싫어한다. 하산도 분명 등산의 일부분일진대 괜시리 내려 오는것은 지겹고 힘들게 느껴진다. 목표를 달성하고난 후의 일종의 허탈감이랄까...아직 진정한 등산의 묘미를 깨닫지 못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정상으로 다다르는 막바지에는 그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곳곳에 추락에 주의하라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었고 안전망 넘어로는 절벽이 이어져 있었다.
▲ 이 경고판 뒤쪽은 낭떠러지였다. ⓒ 황재만
마지막 험한 산새는 인간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그 정상을 허용하지 않으려느 산의 마지막 자존심이 아니었을까...출발한지 3시간 반만에 드디어 정상인 영봉(해발1097m)에 다다랐다.
▲ 월악산 정상, 정상까지 갔다왔다는 유일한 증거가 되었다. ⓒ 황재만
올라가면서 단 한군데도 13년전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정상에 오르니 13년전의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암벽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영봉. 많은 사람들의 추억속에 아마도 좋은 모습으로 남겨져 있지 않을까... 단지 그때와 차이라면 그 당시는 날이 맑아서 산아래 정말 아름다운 경치들을 볼수 있었지만 지금은 짙은 구름과 안개 외에는 아무것도 볼수 없는 것이었다. 아쉬웠다. 13년전에 정상에서 봤던 풍경은 넓게 퍼져있는 산맥과 그 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진 충주호의 멋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봉. 구름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색다른 느낌도 있어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려웠다.
허기진 탓에 정상에서 비바람을 맞아가며 도시락을 먹고 각자 기념이 되게 분주히 사진도 찍었다. 그래 어차피 남는것은 사진뿐. 사진의 힘을 빌려 내 추억의 또 다른 한페이지를 채울수 있는 것이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우리 일행은 정상에서의 좋은 기분을 충분히 느낄만큼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 정상에서의 어색한 포즈 ⓒ 황재만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도 훨씬 수월했다. 비가 많이 와서 미끄럽긴 했지만 어찌 올라갈때와 비할수 있으랴... 모두들 신나게 빠른 걸음으로 아래로 향했다. 중턱을 내려오다 보니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하늘에 대한 다소 원망섞인 몇마디씩을 하기는 했지만 일행 대부분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 여느산에서나 볼수 있는 소원을 비는 돌탑. 각자 소원을 빌었다. ⓒ 황재만
맑은날 산에 올라 그 넓고 좋은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비오는날 그 비를 맞으며 힘들게 올라가 본것도 추억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평범한것 보다는 특별한것이 좋다. 밋밋하고 지루한것 보다는 별나고 독특한 것이 훨씬 좋다. 앞으로 비오는 날 일부러 산에 가지는 않겠지만 비로 인한 오늘의 조금 특별한 경험은 일행 모두의 가슴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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