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환제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 따져 묻자.

검토 완료

한승우(lotrec78)등록 2004.04.23 14:22
17대 국회에서 국민소환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의 후폭풍으로 민주당과 자민련은 총선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 한나라당도 원내 제1당 타이틀 방어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으로의 자리매김에 연착륙했다. 탄핵철회에 대해서는 여전히 법적 정당성을 근거로 정치적 해결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탄핵역풍과 방탄국회의 주도세력이란 인상을 지우기 위해 국민소환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과 정체성은 틀리지만 민주노동당도 한결같이 의회권력에 의한 탄핵소추를 강도높게 비판해왔다. 따라서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보조를 맞추어 국민소환제 논의에 가속도를 붙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이 반민주적 의회권력의 폭거였다고 인식하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국민소환제"는 응당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획기적 도입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선에서의 선전을 통해 여전히 지지자들의 신망을 잃지 않았다고 김칫국을 마시는 세력들에게서 구태정치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그러나 국민소환제가 그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제도로서의 공신력을 어떻게 확립할 수 있느냐에 주도면밀한 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 논의 과정중에 국민소환제의 구조적 모순점이 발견된다면 전면적으로 검토해서 정책적 실효성이 담보되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민소환제의 부정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불충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먼저 국민소환제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가 문제다. 탄핵가결 당시의 심정으로야 탄핵에 찬성한 반민주세력 전부를 심판하는게 마땅하겠지만 정당정치 구조속에서 개별 국회의원의 정치력과 민주성을 재는 척도는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즉 국민소환제가 정당해산을 목적으로까지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면 동일한 의원소환사유에도 불구하고 193명에 대한 일괄 기준 적용에 따른 재보궐선거 결과가 각양각색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즉, 민의라고 하는 피상적인 차원(그렇다고 허상이거나 국민의 뜻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의 의지를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은 다양한 제반조건에 맞물려 명백하고 단일한 결과를 보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제도적으로 문제인 것은 거의 총선에 맞먹는 193명에 대한 재보궐선거에 대한 기회비용을 계산해야 하는 점이다.

물론 탄핵과 같은 정치야합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런 류의 최대치의 악재를 상정할 경우 "국민소환제"가 주는 국회운영의 부담은 상당하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또한 여론에 의한 정도 이상의 압박을 받아야 한다. 의회권력의 견제책으로써의 기능에 무게중심을 싣는다고 하더라도 이라크 파병안, 한-칠레 FTA협정, 호주제 폐지문제 같이 여론의 입장이 비등한 경우에 국민소환제는 거시적차원의 사회발전 방향보다는 지역구시민을 의식하는 인기영합주의을 유발하기가 쉽다. 시민들의 정치적관심이 뜨거운 것과 정치 역학을 고려해야 하는 정책이 마냥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공청회나 타협을 통해 부분적 민심의 이반을 수습하는 과정은 어떤 현안이나 발생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국민소환제"가 들썩인다면 정책적 지속성과 일관성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이전보다 힘들어 질 것이다. 민의의 수준이 높고 낮다를 저울질하는 오만한 생각을 내비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시민의 불만이 정책의 실효성을 신뢰해주고 지켜보는 시간을 우려할 정도로 짧게 만들수가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총선의 의미가 퇴색되는 문제점이 있다. 4년이라는 임기에 대한 보장은 그만큼 투표를 할 때 면밀한 판단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지우는 것이다. 총선은 인물과 지지정당을 두루 살펴서 4년간의 유권자 권리를 대리 행사하는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다. 위법한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국회의원도 실정법상의 처벌을 받고 의원직도 박탈된다. 그러나 명시화된 규정없이 여론의 향방에 따라 의원직을 박탈하게 되면 총선의 심판으로서의 기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당선만 되면 안면몰수하는 정치인의 생리구조에 마뜩치 않터라도 총선은 유권자 권리행사의 절정이기 때문에 최고의 선택을 하게끔 유도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보완책이 총선과 다름없는 것이라면, 그 중요성은 감등될 것이고 4년내내 지역구마다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명약관화한 법리적 판단마저 부재할 수 밖에 없는 국민소환제의 안정성과 공정성은 과연 무엇으로부터 획득될 수 있을 것인가. 다수결과 과반수의 입장이 늘 탁월한 것이 아니었음이 귀납적으로 증명돼왔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국회의원 뺏지만 달면 민심을 개뼉다귀 보듯하는 구태 정치인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정치인 인력풀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상적인 정치인을 선택하라는 주문도 현실적으로 불충분한 제안일 수 잇다. 그러나 그런 유권자의 착잡한 심정은 총선때만 되면 민주주의 시민이 되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4년 내내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담론화 하고 감시하지 않고 오로지 투표의 행위를 통해서 심판하려는 일종의 직무유기가 당장의 표계산에만 영합하는 국회의원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투표만이 민의를 드러내고 의회권력을 심판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공론화의 노력 속에서 늘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회의원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정치의 수준이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뼈저리게 가슴에 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총선이나 대선때가 와야 정치권력을 단죄하겠다는 한시적 권리행사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여전히 미디어정치와 이벤트에 현혹되는 정치수준이 도처에서 드러나지 않았던가.

탄핵이라는 극한 대결의 화톳불로 뛰어든 국회의 아둔함의 적지 않은 원인은 여론을 잘못 읽은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 야3당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다고, 탄핵까지 묵인할 것이라는 인과관계의 오류로 인해 반민주적 행위를 자행했다. 타협과 합의라는 대의 민주제의 본질과는 유리되는 폭력을 동원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민주화의 소중한 역사를 한순간에 더럽혔다.

다수당의 횡포와 법리논쟁이라는 가증스런 면모에 대해 억장이 무너지고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 총선이후의 심판을 통해 유권자들은 절묘한 선택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득권이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이 여론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탄핵의 후폭풍 속에서 이미지정치의 모습이긴 하나 참회의 눈물을 뿌리며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의원직 박탈이라는 현실적 권한이 없더라도 여론은 가장 강력한 권력의 견제책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해 방탄국회나 체포동의안 부결과 같이 정치권 밥그릇 담합에 대한 특권남용만을 견제한다면 국민소환제가 그다지 절실한 입법사항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존의 실정법의 제한과 수정으로 "법대로 하라는 안하무인의 정치꾼"은 확실하게 징치하고 정치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여론형성에 더 철두철미하자. 그것이 국민소환제도의 도입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제재수단이며, 4년임기의 효율성을 최대한 제고하는 방법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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