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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이미 몇 달이 되었다. 사실은 김 형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벌써 반년이 지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인해 석 달 넘게 공들여 기른 머리를 잘라야 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는 그걸로 김 형의 머리에 대한 집착은 끝이 난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김 형의 머리는 다시 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김 형을 볼 때마다 한마디씩 만류를 했었다. 물론 처음에는 나를 포함해서 몇몇 사람들이 격려를 해주기도 했었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보라.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은 것, 늙어서 후회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 것이 좋다.” 그것은 가고 싶은 길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용감하게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김 형에게 박수를 보내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머리를 기르는 게 석 달을 넘어가자 무척 보기가 싫어졌다. 김 형을 보기가 싫은 것이 아니라, 김 형의 모습이 흉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딸 유진이 마저도 때때로 “아빠. 싫어.”하고 다소 또렷한 발음으로 의사표현을 해서 반대대열에 합류했다. 하늘 아래에서 김 형이 머리를 기르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인 우리들은 만류를 했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돌아서서 킥킥거리며 웃기도 했었다.
그리고 김 형은 그 모든 것을 꿋꿋이 이겨냈었다. 아내마저도 지나치게 깔끔을 떤다고 흉을 보는 나도 사실은 김 형과 같이 머리를 기르고 싶은 꿈이 있다. 어쩌면 내가 지난 약간의 결벽증은 내 마음에 있는 진정한 바람의 반대인지도 모른다. 대학시절 나는 연극부에서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충분히 보아왔었다. 특이한 머리모습 역시 낮선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동료들이 보기에 충분히 특이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가슴에는 해보지 못한 것, 남들의 눈을 의식한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이해해준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충분히 외로웠었고, 또 나에겐 그 외로움을 꿋꿋이 이겨나갈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다 펼쳐낼 수는 없었다. 내 억눌려진 소망들은 끝이 없었고, 내가 표현해낸 것은 그 중의 극히 적은 일부에 불과했었다.
점점 나는 내 직업에 충실해져갔고 누구에게 못지않게 성실한 직업인이 되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내 직업에 대한 책임을 가져갔다. 나는 열심히 일했었고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내 직업에 타고난 적격자라고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가슴속에 눌러두었던 열망은 숨죽인 채 서서히 그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것도 바로 그 열망이었다. 마침내 고개를 들고 햇빛을 바라본 열망은 나를 미칠 듯이 이곳으로 이끌어왔지만, 나는 다시 그 열망을 잠재우고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고 있다. 숨죽인 열망이 뜨거워지는 동안 나도 서서히 세상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내 모습은 어느 것이 내 본모습이라고 나 자신도 말할 수 없는 그 두 가지 요소의 타협점인 것이다.
김 형의 머리는 4개월을 지나면서 다소 태가 나기 시작했다. 이젠 5개월가량 되었을 것이다. 김 형은 드디어 자신의 작은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 아직 어설프긴 하지만 머리를 뒤로 묶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머리 뒷 꽁무니에 조그만 꽁지를 하나 만들기에 성공을 했다. 옆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에도 불구하고 김 형은 그것에 무척이나 만족한 듯하다. 시간만 나면 우리들에게 자신의 묶은 머리를 보여준다.
“그래. 한두 달, 아니 석 달만 더 기르면 될 거야.” 이젠 우리들도 김 형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기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머리를 묶은 김 형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머리를 더 길게 기르더라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이겨내고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갈 문턱이 선 김 형에게, 이제 그를 이해하는 몇몇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계속 기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한번만 제대로 묶어보고, 그리고는 시원하게 잘라 버릴 거예요.” 김 형은 그렇게 말한다. “그래. 기왕에 시작한거, 한번 끝까지 해봐.” 나는 요즘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김 형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는 격려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겠죠? 한 두 달만 더 기르면 제법 괜찮겠죠?” 김 형은 나의 격려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때로는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나보다 세상을 더 잘 아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바로 김 형이다. 그래서 그를 보는 마음은 늘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의 순진무구한 모습에서 나는 내 마음을 엿보는 것만 같고, 내가 잘난 척 늘 세상살이에 대해 야단을 치는 김 형이 또 다른 내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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