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 소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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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수(khjm117)등록 2004.05.08 17:56
아랫것테 맨 윗집 윤환이 형네 안방에 소가 눈을 깜박거리며 안방을 지나 부엌으로, 다시 마당을 빙 돌아 마루로, 쟁기를 졸졸 끌며 밭고랑을 내며 지나갑니다.

이라
자라자라
이리이리
워, 워

윤환이 형네 가족이 서울로 이사간 후 마루엔 흙먼지가 부옇게 쌓여가고, 마당엔 개망초가 피었다 지고, 눈 내린 날이면 쥐들이 이리저리 발자국을 남기며 밤이면 밤마다 그렇게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사람 훈김 빠져나간 텅 빈 집엔 집 주인 숨소리가 그리웠던지, 아님 집주인을 향한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지탱할 힘이 없었던지 기둥이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더니 지붕을 덮고 있던 기왓장들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고 황토 흙에 볏짚 섞어 천장에 발라놓은 흙들이 빗물에 흐물흐물 떨어져 내리며 서까래가 하나 둘씩 썩어가더니, 결국 폭설 내린 시린 겨울 어느 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앞산에 올라가 마을 풍경을 찍으려고 렌즈를 들이대니 아랫것테 맨 윗집 거기에 늘 한쪽으로 기울고 서 있던 윤환이형네 집은 쓰러져 렌즈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옥수수 알맹이처럼 촘촘히 붙어있던 고향마을은 이제 옛 모습을 감추며 이웃집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며 이빨 빠진 마을이 되어갑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재철이네 할아버지가 쇠죽을 끓이며 주무시던, 태풍에 슬레이트 지붕 한쪽이 날아가버려 비 내리는 날이면 황토 벽이 빗물에 씻기며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문간채는 남아 있어 ‘저그가 윤환이 형네 집이었다’는 것을 마을사진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향마을 폐가집들이 더 이상 무너져 내리 않고 안방에 붉은 소가 눈을 깜박거리며 밭고랑을 내며 지나가는 봄이 아니길 바래봅니다.

이라
자라자라
이리이리
이리 올라서
워, 워

동환이 양반은 무너진 동생 집을 올 봄 내내 치우고 곡괭이로 땅을 파서 밭을 일궈 고추를 심으려고 쟁기질을 하고 있습니다.
동환이 양반은 쟁기질을 멈추고 밭머리쉼을 하더니 마음이 씁쓸했던지 소가죽처럼 단단해진 흙 묻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립니다.

“집이 사라져붕게 맘이 좀 그렇고만∙∙∙. 허무라진 집을 걍 내비둬불먼 고것도 볼썽사납고, 하여간 마을에 집 한 채가 또 사라져부렀어.”

“워, 워.”
“이 놈의 소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다냐.”

소가 몇 발자국 움직이자 애꿎은 소에게 크게 소리치며 화를 냅니다.

정든 고향 땅을 버리고 서울로 이사간 윤환이 동생이 보고 싶어서 그랬겠지요.
조상님들 제사상을 차려 놓고 안방에서 절을 올리던 그 밤이 생각나서 그랬겠지요.
모내기 하는 날 마당에 멍석을 펴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밥 먹던 그 밤이 그리워서 그랬겠지요.
쓰러진 동생 집 안방에 소가 지나가니 마음이 씁쓸해서 그랬겠지요.

앞산에서 꿩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뒷산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뒤란에 줄줄이 서 있는 먹감나무에 연둣빛 새순이 지는 해와 함께 반짝입니다.
강변엔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이 짙어 오고 자운영꽃이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봄 비 내려 강물소리 힘차고 강은 마을을 휘감아 오늘도 남해로 흘러갑니다.

나만 보면 생긋 웃으며 오르막 집으로 달려가던 코 흘리게 재철이가 내 눈 앞에 휙 지나갑니다.

진뫼마을 아랫것테 맨 윗집 윤환이 형네 집 안방에 소가 눈을 깜박거리며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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