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다는 것

[리뷰] MBC 베스트극장 <곰스크로 가는 기차>

검토 완료

서석원(dreamsun)등록 2004.05.10 18:39
5월 7일 문화방송을 통해 방영된 베스트극장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꿈을 좇는 남자와 고비마다 그 남자의 발목을 잡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아마도 보는 이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시청 후 묵직한 여운이 느껴진 건 누구에게나 매한가지 아니었을까.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맑은 수채화 같은 화면구성과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대표되는 황인뢰표 드라마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형식면에 있어서는 다분히 연극적인 요소가 도입돼 낯선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연극적인 요소란 이런 것들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지명이나 건축물, 가구, 인물의 복장 등은 유럽풍인데 배우의 얼굴, 기차 등은 한국풍인 데서 오는 기묘함, 작위성 등 무대화된 번역극에서 흔히 맛 볼 수 있는 느낌 그리고 레스토랑 여주인으로 나오는 예수정의 너무나도 '연극적인' 연기 등등. 결국 이 연극적인 요소들은 드라마를 '현실의 재연'이 아닌 '성인동화'로 이끌었다.

남자 역할을 맡은 신인배우 엄태웅은 표정연기가 다소 불안했지만 남자의 캐릭터와 썩 잘 어울렸다. 곰스크에 대한 열망으로 조바심 내고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극중 남자의 상황이 막 연기를 시작한 그의 현재와 상응하는 부분이 있어서였을까.

그 느낌을 엄태웅은 연기에 실었고, 황인뢰는 화면에 포착해냈다. 엄태웅은 우수에 젖은 듯 하면서도 편안함을 자아내는 인상과 목소리를 가졌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좋은 연기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발랄하고 거침없는 현대 젊은 여성의 모습을 주로 연기해 온 채정안은 소극적이고 연약해 보이지만 고집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켜 나가는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덕분에 극중 여자의 캐릭터는 영악함과 가련함의 경계에서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하듯 극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극중 남자도 그랬겠지만 극을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도 여자를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배우다.

황인뢰는 이 '성인동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여러가지 상념이 머리 속을 부유했지만 명료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먼저, '평범하지 않은 꿈을 좇는 이라면 함부로 결혼하지 말라'. 누군가는 '결혼은 무덤'이라는 말까지 했지만, 어쨌든 한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좇으려 할 때 사랑하는 배우자(그 또는 그녀)와 아이는 기회(드라마에서는 열차티켓이 기회를 상징한다)가 찾아드는 인생의 고비마다 확실히 그 사람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극중 남자와 여자의 경우처럼 말이다. '꿈을 좇거나 포기하거나' 또는 '가정을 지키거나 포기하거나''윈윈 게임'은 불행히도 경우의 수가 낮다. 분명한 건 결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그녀에게도 욕망이 있다'. 극중 여자는 극중 남자가 좇는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의 욕망을 따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녀에게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망(드라마에서는 소파나 가구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예측 가능하고 낯설지 않은 상황을 원했으며,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꿈꿨다. 그러나 극중 남자 역시 극중 여자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적어도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 비록 그 노력이 욕망을 제압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곰스크 이후'. 극중 레스토랑 여주인은 곰스크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꿈을 좇았던 사람들의 말로를 두 부류로 설명했다. '돈이 많지만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과 '돈이 없고 시끄럽기만 한 사람들'. 여기서 논란의 여지가 되는 것은 후자 쪽이다. 극중 남자는 그들에게서 행복을 읽었고, 레스토랑 여주인은 궁핍(물질과 정신 양면의 궁핍)을 읽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황인뢰가 누구의 입장을 지지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곰스크 이후'는 불확실하다는 사실 하나 뿐.

결국 황인뢰는 꿈을 말하기보다 결혼의 의미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한다면 무릇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 적어도 본인이 원하는 것의 반씩은 버리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서로 양보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사랑의 하모니가 이루어지며 '스위트 홈'이 만들어진다."라고.

물론 가장 좋은 결혼은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동행을 만나는 경우일 게다. 그러나 그 행운을 누리는 자 썩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극중 남자 역시 그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아마도 드라마를 지켜본 사람들의 상당수는 엔딩타이틀과 함께 흘렀던 '곰스크'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신산한 마음을 달래며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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