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악몽, 개혁의 꿈

아름다운 민란, 수구기득권 저항 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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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석(풀벌레)등록 2004.05.13 16:14

3월 12일 아침, 국회 근처 국민은행 앞.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밤새 이곳을 지켰던 시위대들이 벌써부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 김명석



나는 내 연구실에서 가만히 수업준비나 하면서, 직업상 의무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그 자리는 무엇보다 공동체(공화국)의 주인으로서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만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내 의지에 따라 매순간 선택하고 바꿀 수 없다면 나는 역사적 존재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상 스케줄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수강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부산으로 가는 기차표를 취소했다. 그리고는 곧장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고, 전화를 이리저리 눌러 동참할 친구들을 모았다.

이날 오후 7시 10분경 노사모 회원 백은종씨가 국회 앞에서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항의하는 분신을 기도했다. 다음 날 새벽1시까지 시민들 400여 명이 국회 밖 국민은행 앞에서 탄핵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한편 국회의사당 내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탄핵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채 이미 사흘째 농성을 하고 있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도 표결 강행을 위해 맞대응 농성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오마이뉴스에 “하나둘 잠든 의원들…. 국민은 잠을 못 잔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 탄핵을 위한 총동원령

내가 새벽 4시 기차를 타기 위해 대구역으로 이동할 즈음,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석을 사수하는 열린우리당 의원과 의장석 진입로를 확보하려는 야당 의원들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기습작전은, 두 야당 지도부가 사전 약속을 통해 소속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미리 기획된 각본대로 일사분란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두 야당 총무들은 기습 현장에 직접 나와 작전을 지휘했으며, 이윽고 최병렬 대표, 박상천 고문, 정균환 전 총무, 이만섭 고문, 강운태 총장 등까지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야당 의원들은 마침내 의장석으로 가는 길목을 확보했으며, 이렇게 하여 야당의 새벽 기습작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와중에 북파공작원 출신 한 시민이 차량으로 국회 본관으로 돌진하여 방화시위를 벌였다.

시민운동가들은 국회의 탄핵가결을 의회쿠데타로 규정하고, 민의를 저버린 제16대 국회의 장례식을 거행할 태세를 갖추었다. ⓒ 김명석



아침 8시쯤 영등포역에 내려,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함께 올라온 한 후배와 아침을 먹은 후, 탄핵반대 시위 장소로 걸어갔다. 거리는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분주했지만, 피곤하면서도 활기찬 이 분주함 속에서 탄핵정국의 긴장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여의도공원을 지나면서 몇 개월 전 리멤버1219 행사를 얼핏 회상했다. 거기서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희망을 만들기 위해 이 추운 날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 희망을 시샘하는 이들이 우리의 희망을 지금 산산조각 내려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침을 먹는 동안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이 탄핵안 의결을 위한 총동원용 의원총회를 소집해 놓고 있었다. 외유 중이던 박헌기 의원 등도 최후의 반동을 위해 이미 귀국해 명실상부한 총동원이 성사되고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본회의장 단상 진입로를 확보하는 등 소기의 작전이 성공했으므로 사전 집결 없이 곧장 본회의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곧 휘몰아칠 폭풍의 냉혹함과 강력함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후퇴냐 전진이냐?

우리가 국민은행 앞에 도착하니 밤새 이곳을 지켰던 시위대들이 벌써부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현사태의 심각성을 가장 잘 간파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전 국민의힘 대표 이상호씨가 시위를 이끌고 있었고, 밤새 집을 비우고 이 자리를 지켰던 한 여성 참여자는 아이와 남편에게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면서, 탄핵결사저지를 애타게 주장했다. 그리고 탄핵반대를 부르짖는 우리의 외침은 점차 절박해지고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할아버지”로 유명해진 이천재 옹(72)께서 “제2의 6월 항쟁을 이루자”고 외치고 계시다. ⓒ 김명석



시간이 흐르자 탄핵저지 시위에 참석하는 시민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고, 열린우리당 총선후보들도 속속 상경하여, 탄핵저지 투쟁을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도 곧 물러나야 할 부패 국회의원들이 이제 막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새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매우 파렴치한 일이라 판단하고, 제16대 국회의 장례식을 거행할 태세를 갖추었다. 이 장례식의 집례를 위해 최민희 민주언론연합 사무총장,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 등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했으며, 최광기씨가 사회를 맡았다.

그런데 김기식 사무처장이 탄핵규탄 연설을 하는 도중, 국회의 긴박한 상황이 다른 쪽 집회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고 있었고, 집회 참여자들은 매우 초초해졌다. 국회 경위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무력으로 끌어내자, 박관용 국회의장이 의장석으로 진입했고, 야당 의원들은 박수로 환대했다. 박 의장은 국회난동사태의 원인을 대통령과 여당에게 돌리면서 “자업자득이다”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여당 의원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채 결국 투표는 시작되었고, 국회의사당 바깥에서 우리는 전의를 상실한 채 탄핵의 부당성을 부르짖을 뿐이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는 탄핵이 가결되었다는 국회의장의 선포가 악몽처럼 흘러나왔고, 농성 중이던 몇몇 시민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 눈물이 21세기형 민주항쟁의 씨앗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이것을 전혀 몰랐던 박관용 국회의장은 놀랍게도 예언자처럼 선포했다. “대한민국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래, 대한민국은 계속 전진해야 한다.

“채권에 사과상자에 이제는 아예 트럭 채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 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그래서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제발 너흰 나라 걱정 좀 하지 마.” ⓒ 김명석



◇ 아름다운 민란

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이들은 당황했고 격분했으며 절규했다. 이 절규가 민주주의를 위한 축제로 변모될 것이라고 거기에 있던 누구도 예상해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TV 생중계를 통해 이 중대한 사태를 목도했고, 그들의 울분이 내 휴대용전화기를 통해 계속 울려나오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했던 친구, 열린우리당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였던 친구들까지 현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들은 행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의식이 국민적 문제의식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결국 패배하고 말 것인가? 결코 아니었다. 민주주의 수호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집결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이러한 열망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그 밑바닥에서는 매우 건실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몰려드는 시민들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전투경찰의 차량 바리케이드가 하나씩 철거되기 시작했다.

3월 12일 저녁, 시위를 주도했던 노사모 회원들은 집회 주도권을 즉각 일반 시민단체들에게 양도했다. 이것은 탄핵반대 운동이 노무현 한 개인을 보위하는 지엽적 저항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범국민운동으로 승화되고 있는 이 역사를 받아들인 것이다. 민중연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22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국회의 탄핵가결을 의회쿠데타로 규정하고 탄핵불복종 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포했다.

12일 저녁, 즉석에서 집회의 사회권을 양도받은 시민운동가들은 “탄핵무효부패정치청산범국민행동”을 발족하고, 탄핵불복종 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것을 시민들 앞에서 약속하고 있다. ⓒ 김명석



12일 아침 수십 명에서 시작한 피켓 시위가 밤이 깊어지나 수만 명의 촛불 시위로 성장해갔으며, 전국적으로 작은 촛불 시위들이 동시에 거행되었다. 한편 인터넷상에서 탄핵반대 열기는 더욱 뜨거웠으며, 심지어 어떤 인터넷 폴에서는 탄핵반대가 90%까지 육박하는 곳이 있었다. 각종 언론은 이 상황을 “사이버 민란”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이 “민란”은 전세계 언론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다운 시민운동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촛불 자체의 아름다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매우 질서정연했으며, 집회가 마칠 때까지 아무런 불상사가 없었다. 민주시민들의 공화국인 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이만큼 전진해 있었다.

나는 대구로 내려가지 않고, 13일 광화문 행사에도 참석하기로 했다. 역사의 한 가운데 있고 싶었으며, 재민주권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넘실거리는 시민들의 물결에 휩싸여 차라리 떠밀려 다니는 지경이 되었다. 이날 민주수호 촛불시위에 참석한 시민의 수는 거의 10만에 육박했다. 이후 이 시위(촛불문화제)는 전국 각지에서 매일 저녁 자발적으로 거행되었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고향에서, 종종 서울 광화문에 총집결하여, 탄핵의 부당성과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불태웠다. 어떤 날은 흥분했고 어떤 날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으며, 어떤 날은 백수로 취급받았고 어떤 날은 빨갱이로 매도되었으며, 어떤 날은 추웠고 어떤 날은 비를 맞았으며, 어떤 날은 설렁했다. 그러나 이 모든 날들은 자랑스런 역사가 되었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전진시켰다.

◇ 그들은 정녕 미쳤던 것일까?

한편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개혁성향의 언론은 연일 탄핵의 부당성을 성토하는 시론들을 게재했으며,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은 탄핵반대 성명을 속속 발표했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탄핵가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미쳤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는 그 광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정치적 자기와 본래의 자기를 지나치게 동일시해 온 사람들이 심각한 직업적 위협을 받게 되자 내가 소멸해 버릴 것 같은 극단적 위기감에 정상범주를 벗어난 행동을 보인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끔찍하고 비상식적인 짓을 이해할 길이 없다.”

12일 아침 수십 명에서 시작한 피켓 시위가 밤이 깊어지나 수만 명의 촛불 시위로 성장해갔다. 우리들의 이러한 열정에 우리 스스로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패배의 불안을 버리고 승리의 확신을 품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 김명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탄핵가결을 “야만”으로 묘사하면서, “국민주권을 유린하는 어떠한 책략도 반드시 응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탄핵사태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탄핵정국은,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 사회의 커다란 흐름에 반발하여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부패수구세력과 깨끗한 정치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수 국민 사이의 대립에서 빚어진 것이다.”

시인 김정란은 이미 탄핵가결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탄핵발의 자체를 기득권 세력의 쿠데타이자 내란 행위로 규정했었다. “문제의 본질은 자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정말로 무시무시한 세력이라는 것,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어떤 뻔뻔한 짓이라도 눈 깜짝하지 않고 해치울 세력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그것이다. 이번 의회 쿠데타는 아마도 역사를 거꾸로 돌리기 위한 수구 기득권 세력의 마지막 카드가 될 것이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장은 탄핵세력의 역사적 뿌리가 반민주적 밀어붙이기 세력에 있다고 보았다. “밀어붙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은 법치주의와 인연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뿐만 아니라 그들 다수는 양식과 양심, 이성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왔다.” 나아가 이순원, 은희경 등 젊은 소설가들은 탄핵이 가결되는 순간, 매우 경악스럽게도, 백범의 암살과 5·16 쿠데타의 발발을 떠올렸다면서, 탄핵가결이 “일제의 식민지배와 군사독재에 그 서사의 뿌리가 닿아 있다”고 폭로했다. “민주주의의 호흡이 한 순간 딱 멈춰지는 느낌 속에서 친일파의 망령이, 뒤틀린 역사의 기나긴 서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목격했다.”

탄핵가결 다음 날인 3월 13일, 탄핵무효 민주수호를 위해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수는 거의 10만에 육박했다. 우리는 이렇게 연대하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전진시키고 있었다. ⓒ 김명석



전국 역사학 교수들도 탄핵가결 세력들의 “반역사적 배경과 성격”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폭거는 1987년 이후 진행되어온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써 한국 역사를 후퇴시키는 심각한 사태라고 생각한다. […] 우리는 추악한 과거의 행태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 우리 정치가 정치공작과 금권부정, 지역감정에 유린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후세에 전할 수는 없다.”

김두식 교수는 매우 독특하면서 기발한 분석을 내어놓았다. “노 대통령의 언어 분석만으로 빈약한 정치활동을 대충 때워 오던 정당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마저 그처럼 쉬울 거라 생각한 것이 이 이상한 소동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양비론을 고수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시민들께 드리는 권고의 말씀도 빼먹지 않았다. “아직도 중립이 최선이라 믿고 계신 시민들께는 조순형 대표가 최근 두 번이나 암송했다는 한 마디를 꼭 전해드리고 싶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비 되어 있다.”

◇ 한 손에 촛불을, 다른 손에 투표용지를

백낙청 명예교수는 시민들이 촛불축제를 통해 지금의 진통을 “온전한 나라를 만드는” 과정으로 승화시켰다고 칭송했다. 정말이지 탄핵반대 촛불집회는 참여정치의 확대와 정치개혁의 촉발을 가져왔다. 홍성태 교수는 “아이들의 손을 잡은 아줌마, 아저씨들의 대거 진출, 고등학생들의 자발적 참여 등 연령과 세대의 폭이 대단히 넓어졌다”면서 “특히 아줌마, 아저씨의 대거 진출은 생활정치의 진전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참여는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으로 발전될 것이었다.

3월 20일은 탄핵반대 전국민 행동의 날이었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30만, 전국 각지에서 20만, 인터넷에서 50만, 총 100만이 참여하는 탄핵무효 민주수호 총궐기를 준비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만 20만 정도가 집회에 참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 김명석



다행스러운 것은 탄핵사태를 통해 4월 총선의 본질이 낡고 부패한 수구세력과 정치개혁을 바라는 깨끗한 민주세력 사이의 전쟁이라는 점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안병욱 교수는 유권자들의 적극적 투표참여가 87년 반독재투쟁과 유사할 것이라고 총선 전에 예상했다. 그는 “이번 탄핵사태로 인해 유권자들이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가 됐고,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을 급속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4·15 총선은 반민주 구태정치를 종식시키고, 국민통합과 민족통일, 양성평등과 차별철폐, 반민족반민주세력청산을 선도할 개혁의회를 구성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우리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내내,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개혁후보들을 위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지역구 선거사무실에 방문하여 힘을 북돋는가 하면, 후원금을 납부한다든가, 자원봉사자로 거리홍보에도 나섰다. 우리의 한결같은 캐치프레이즈는 “개혁의회 구성을 위해 총력투쟁!”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선거전이 종반에 이르자, 비본질적이고 구태의연한 요소들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매우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던 전국 철학교수 92명은 탄핵·수구·지역주의 정당의 심판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4월 12일 긴급히 발표했다. “참담하게도 이들의 달콤한 언사와 겉치레 참회행각에 넘어간 유권자들의 수가 위협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의회폭거를 감행한 100여명의 잔당들이 여전히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직을 목표로 약진하면서 또 다시 대한민국 국회를 점거할 수도 있는 불길한 조짐에 우리는 전율한다.”

아마도 송앤라이프의 윤민석씨는 촛불문화제가 낳은 최고의 스타일 것이다. 그의 노래들은 우리 모두를 흥분시켰고, 단결시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김명석



동일한 위기감으로 안절부절 했던 우리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우리는 총선시민연대에서 선정한 낙선대상자 명단과 물갈이국민연대에서 선정한 지지후보 명단을 사이버 상에 배포한다든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떤 후보가 바람직한지에 대해 밤새 격렬하게 토론도 벌였다. 그리고 지역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각종 투표참여 캠페인에 참석했으며, 심지어 투표참여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 선거 전날까지 시민들과 대학생들에게 배포했다. 게다가 선거 당일엔 투표율 제고를 위해 쉼 없이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그리고는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우리는 이 결과를 한 자리에 모여 시청했고, 환호했고, 마음을 졸였고, 미묘한 두려움도 느꼈다.

◇ 후퇴 없는 개혁을 위해 멸사봉공!

한국정치 발전을 갈망하고 대망하는 모든 민주애국 시민들의 이 모든 노력과 헌신을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얼마가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여하튼 시민들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제17대 국회는 개혁의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띠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남겨져 있는가?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마침내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이미 며칠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의 복귀를 환영하는 노란 리본을 나뭇가지에 달고 있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보다 성숙되고 보다 지혜로운, 보다 강해지고 보다 낮아진, 보다 대담하고 보다 개혁적인 모습으로 우리 국민들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우리는 복수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후퇴는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자만과 만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보신과 소심은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16대 국회의 죽음을 보았다. 이 죽음과 함께 17대 개혁국회가 탄생했다. 새 국회가 국민통합, 민족통일, 부패청산, 정치개혁, 양성평등, 분배정의, 공정경쟁, 역사청산을 이룰 때까지 쉼 없이 전진하기를 꿈꾼다. ⓒ 김명석



우리는 17대 개혁의회에게도 동일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실용파든 개혁파든, 보수파든 진보파든, 민생파든 경제회생파든, 후퇴 없는 개혁을 위해 전력투구할 것을 바란다. 그가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국무의원이든, 아름답고 멋진,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직무에 태만할 때, 국민적 심판대 앞으로 소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토록 사랑했으므로, 그만큼 비판할 자격도 있다.

글을 맺으면서, 탄핵가결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노무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 중 일부를 약간 수정하여 여기에 옮겨 적는다. “사람은 아이를 낳을 때 진통을 겪는다. 나는 탄핵사태를 그러한 진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괴롭기만 한 소모적인 진통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일 것이다. 발전과 도약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일의 도약을 위한 밑거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일이다.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겠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고통, 현장에서 느낀 고통 하나하나가 결코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노력해서 변화와 개혁을 성공시켜 내겠다.”

김명석 oxys@nate.com

김명석은 경북대학교 연구초빙교수이며, 국정브리핑의 넷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 논리와 비판적 사고, 글쓰기, 철학의 이해, 과학철학, 과학사, 자연과학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탐구 주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의 답변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아무도 달을 보지 않는다면 과연 달은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가?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정신은 어떻게 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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