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군이 바뀔 일이지, 병역거부자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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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열(savageryu)등록 2004.05.24 08:46
술자리에서 여성들이 제일 재미없어 하는 3가지 이야기를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대한민국의 예비역들이 술자리에서 매우 즐기는 안주인 ‘군대’라는 것은 군대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화두입니다. 아마 다들 경험 있으시죠?

이번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판정’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기는 한가 봅니다. 여기서 시끄럽고 저기서 소란스러우며 이런저런 주장들이 상당히 난해하고도 어떤 면에서는 원색적인 것을 보면 미필자와 기필자 사이에 혹은 여러 상이한 인식 차이에 존재하는 ‘국방의 의무’라는 것이 중요하기는 중요한가 봅니다..

그러나 그런 수많은 주장 속에 꼭 한 가지 짚어야 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예비역들 혹은 현역들, 아니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과연 군을 어떠한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 말이지요.

우리 자신이 겪었던 군에 대한 기억, 그리고 타인의 입을 통해 들었던 군에 대한 단상들을 한번 모아봅시다. 그 수많은 술자리의 이야기들, 여러 가지 초인적인 신화들... 그러한 한국사회에서의 현실적인 병영생활에 대한 의미가 과연 어떠한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겁니다.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매우 인간적인 선임을 만나 좋은 인연을 맺었던 이야기나 그 정반대의 이야기도 있겠지요. 아니면 정말 가슴 훈훈한 전우애로 뭉쳐진 이야기이나 정말 비극적인 자살이나 끔찍한 훈련들에 대한 이야기 등 정말 여러 가지 단면이 존재할 겁니다. 군대는 정말 각양각색의‘신화’를 쏟아내는 인간시장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던가에 대해서는 저는 일단 고개를 내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소한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아니면 괴롭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고의 증진이나 인생에 대한 참된 고민이라던가, 어떤 최소한의 긍정적인 가치가 보장되는 공간이던가, 그런 것들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던가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경험하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들었던 한국 사회의 병역의 의무는 ‘억압적인 상명하복 집단에의 적응’의 과정에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비상시에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적탄 앞에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기 위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명확하게 자리잡아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군은 상급자가 끊임없이 하급자를 강제하게 만들고 그 강제에 의하여 전체가 기능하게 하며, 그 시스템에서 단 1보라도 벗어나고자 하면 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 아주 강력한 제제가 가해지는 곳이 아니던가요.

애초에 군대라는 곳의 성격이 그러하기에 ‘무엇을 기대하느냐?’라는 물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신체건강한 남성들에게는 빠짐없이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기에 그러하며, 그 2년이라는 군 생활이 이후의 평생의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에 그러한 것이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듯이 사람은 ‘배우며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이는 단순히 학교를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이 속한 집단과 사회, 그리고 그 집단이 가진 규율과 규범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지역주의 극복’을 아무리 목이 터져라 외치더라도 그 지역주의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마저 수많은 편차를 가지는 것을 보면 그 개인이 집단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체득하는 바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일 테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그 상명하복의 억압적인 문화가 강제되는 군대에서, 그 문화로부터 한발 벗어나는 순간 참 고통스러운 제제가 가해지는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잘못했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 그렇게 국가적으로 and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장점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반면에 많은 단점들도 있을 겁니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단점들 중에서 그것의 단초를 군대에서 맛보게 되는 경우가 그리 적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집단이 어떤 합리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상급자가 지시한 것을 전체가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 그렇고, 집단의 행보로부터 한발 벗어나면 엄청난 제제가 가해진다는‘공포’를 배우게 되는 곳이 바로 군대가 아니던가요.

하긴, 돈이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군대가 합리적이고 무언가 발전적인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그런 곳이면 왜 그렇게 안 가려고 난리를 치겠습니까. 그리고 의무에 묵묵히 따르는 그 많은 사람들을 왜 ‘어둠의 자식’이라고 부르며 냉소적인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저의 이야기도 별로 재미가 없지만, 오라고 하지 않으면 알아서 갈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곳이 군대입니다. 경험하지 않아도 되면 별로 애써 경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 군 생활이라는 것은 여러분 모두 동의하시지 않는지요?

어떤 분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해 투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세포분열해서 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수없이 모여야만 국가라는 존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국가라는 것은 항상 의무에 충실한 길만 보여주기 보다는 개인의 다양한 의사에 따라 여러 가지 선택을 가능케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복을 입고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국가의 구성원이라면 지금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삐딱한 소수’역시 국가를 구성하는 당당한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바로 국가라는 존재이고, 그 국가가 부과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의무라면 개인의 의사에 의하여 의무를 다르게 수행하는 방식을 국가가 마련하는 것은 최소한 이 병역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당연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는 매우 반가운 일이라는 것 말이지요. 이미 그 불합리함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그것을 거부할 권리가 받아들여 진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라고 생각이 되니까 말입니다.

또한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런 삐딱한 소수가 많아진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하고, 그리고 그에 따라 현재의 국방체계가 존속하기 어렵다면 그 국방체계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그렇게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억압할 일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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