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시대의 대북억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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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sof1998)등록 2004.05.27 15:00
흔히 우리는 수구세력의 색깔론이나 보수언론의 냉전적 안보 논리를 접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적화통일, 공산정권' 같은 용어를 떠올린다.

이미 우리 머릿속에는 '북한의 남침 -> 적화통일 -> 공산정권'이라는 도식이 고정관념처럼 자리잡고 있어서 외부에서 '북한의 남침'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만 하면 전상황이 뇌리에서 조건반사처럼 일사천리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우리가 이미 공산정권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듯한 환각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데 냉전종식이 그와 같은 조건반사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수구세력의 색깔론이나 보수언론의 냉전적 안보 논리가 작동하던 시대적 배경은 바로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시대'였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던 시대. 그래서 일단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해 공산정권을 수립하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종결되는 시대.

바로 그와 같은 시대적 배경이 존재했기 때문에 북한의 남침 시나리오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된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북한의 뒤를 봐주던 중국과 러시아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북한의 후원자 노릇을 해줄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이들 강대국들은 북한보다 남한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 이해관계는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따라서 냉전시대처럼 북한이 남한에 붉은 깃발을 꽂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종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붉은 깃발을 꽂는 그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유령처럼 불확실한 형체로 주위를 맴돌던 적군들이 바야흐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무섭게 달려드는 것이다.

사실상 냉전종식 이후 '북한의 남침'은 무의미해졌다고 봐야 한다. 설령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한다 해도 주변 강대국들의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을 못마땅히 여기는 미국에게 더없이 좋은 명분과 기회만 제공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북한 입장에선 남침해서 이득볼 게 별로 없다. 적어도 현재 상황은 그렇다.

그렇다고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경계를 늦춰도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안보태세를 철저히 점검하고 한시도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

다만 냉전종식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유리한 환경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두말할것없이 냉전시대의 대북억지력은 바로 군사력, 즉 '힘'이었다. 힘의 논리가 모든 걸 지배했고, 힘이 없으면 자유도, 평화도, 정의도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북억지력은 북한을 힘으로 압도하는 것 외엔 없었다. 우리 힘으로 우리를 지킬 수 없다면 우방의 힘을 빌어서라도 북한에 대한 힘의 우위를 입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냉전종식 이후 우리의 대북억지력은 보다 다각화되었다. 기존의 힘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북한을 견제하는 새로운 카드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매년 심화되는 한중경제협력은 단지 경제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대북억지력과도 직결된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의 손발을 꽁꽁 묶어두지 않는 한 앞서 말한대로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철저히 봉쇄됨과 동시에 의미를 잃고 만다.

그런데 냉전종식 이후 더이상 미국을 견제할 세력은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한중경제협력은 이미 양국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바로 한중경제협력 자체가 강력한 대북억지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한미동맹관계를 급속히 잠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중경제협력관계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어떻게 충돌 없이 조화를 이뤄 양립시키느냐가 오늘날 외교 안보의 화두라 할 수 있다.

사실 지금의 안보위기는 다소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 단순히 대북억지력이 약화되어 안보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북억지력은 오히려 냉전시대보다 강화되었고, 탈냉전시대 자체가 북한의 남침 야욕, 적화통일 야욕을 무력화시키는 속성을 띄고 있다.

반면 부시의 등장 이후 우리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론이 현실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속에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보다 미국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지금의 안보위기는 대북억지력이 약화되어 초래된 것이라기보다 한미동맹관계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오는 과도기적 혼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변화와 갈등 양상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본다면,

첫째, 미국 외교안보전략의 변화에 따른 갈등이다. 부시의 등장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은 '미국적 가치의 세계화'를 표방하는 네오콘에 의해 공격지향적으로 변모했다. 그 결과 미국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과 저항에 직면해 있다.

둘째,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갈등이다. 진보와 개혁의 물결이 사회 전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반세기 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한미동맹관계의 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자연히 기존의 한미동맹관계를 주도하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간의 갈등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셋째,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한반도 역학관계의 변화에 따른 갈등이다. 날로 심화되는 한중경제협력관계와 전통적인 한미동맹관계가 상충하면서 한반도 역학관계에 대한 재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른 한미간의 갈등,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격랑속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남한과 북한이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합의를 도출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은 시간의 모래밭 위에 남겨진 발자국에 불과하다. 이념대결은 막을 내렸고, 남북한간 힘의 균형도 깨졌다. 무엇보다 남북한 모두 전쟁을 원치 않는다.

앞으로 남한은 북한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동참하도록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에게 선제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궁극적으로 북핵을 포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과 미국이 각자 한 걸음씩 양보하고 타협해 새로운 한미동맹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내에도 한국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 만큼 이들과 연대해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관계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한미동맹관계에서 한미동맹의 촉매제는 다름아닌 굴종과 순응이었다. 그러나 탈냉전시대인 21세기의 한미동맹관계는 과거와 달라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동반자적 관계로 새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동반자적 관계는 객관적 힘의 차이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서로 진심으로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 위해 알을 깨고 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아프더라도 밝은 미래를 떠올리며 참고 견디자. 모든 사람이 꿈꾸는 그것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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