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나

글쓰기를 두려워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검토 완료

위창남(cfhit)등록 2004.05.29 15:10
난 글쓰기를 무척 두려워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글을 쓸수 있겠구나 하고 마음먹었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를 읽고부터다. 아니, 그렇게 유명한 작가의 글을 읽고 감히 글을 쓸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쉽게 썼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읽기 편하다는 뜻이다.

선배가 있었다. 같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선배는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했었다.

‘소녀가 내앞을 지나갔다.’를 두고 한 동료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 소녀가 내앞을 지나갔는데 난 안 보는 척하며 쳐다봤어.”

그선배는 어떻게 표현할까 다들 궁금해했다. 드디어 선배가 입을 열었다.

“소녀가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어. 약간 보랏빛이 나는 원피스를 입었는데 꽃무늬가 군데군데 들어있는 아주 예쁜 옷이었지. 어쩐지 소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랄까 예쁜 애는 뭘 입어도 어울린다는 그런 단순한 뜻은 아니고 소녀와 그 옷이 마치 하나의 그것처럼 너무 잘 어울렸어.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고 소녀의 머리가 나풀거렸어. 좋은 샴푸를 썼는지 향기가 은은하게 내코를 기분 좋게 자극했지. 그 향기에 취해있을 무렵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오고 있었어. 사뿐이라는 표현이 맞을거야.”

이렇듯 그선배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그것도 듣는 사람이 빠져들 만큼 아주 재밌게 얘기를 했다. 한문장만 갖고도 종일 해도 모자랄 정도의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이야기는 그선배 못지않게 재밌게 잘하는 편이다.

“나 이러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재밌지 않겠냐?”
“와 괜찮은데요. 재밌겠다!”

그러나 내가 그내용을 글로 써가면 이런 반응이 나왔다.

“아니 얘기를 들었을때는 상당히 재밌던데 글로 읽으니까 별론데…. 도대체 주제가 뭐예요?”

나도 답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글도 잘쓰고 읽으면 감동이 줄줄 느껴지던데 왜 난…. 더욱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한번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휴대용녹음기를 샀다.

“내가 말한걸 그대로 녹음해서 이걸 글로 옮기면 괜찮을거야.”

그러나 막상 녹음 버튼을 누르면 왜 그렇게 떨리든지 몇마디 하지 못하고 스톱버튼을 누르기 일쑤였다.

만화모임이 있었다. 나를 빼곤 거의 다 학생이었다. 그중 안경쓴 여학생이 물었다.

“상실의 시대 읽어봤어요?”
“…안 읽었는데….”
“네~? 그럼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모르겠네요?”
“…….”

마치 어떻게 그런 작가도 모를수 있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듯 말했다.

“응,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아는데 하루키는 아직 못읽어 봤네….”

오에 겐자부로는 얼마전 TV에서 봤던게 떠올랐다. 그 여학생 당황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아마 오에 겐자부로는 생각지 못한 듯 싶었다. 갑자기 방송사가 고마웠다.

다음날 바로 서점으로 가 하루키의 책을 샀다. 하도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읽었지만, 솔직히 뭐가 감동적이고 뭐가 재밌다는 건지…. 난 그저 그렇게 읽었었다. 오히려 너무 기대를 하고 읽어서인가 조금은 씁쓸하기까지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식이면 나도 쓸것 같은데…. 물론 아마츄어의 건방진 말이다.

그러나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쓰고있고 지금은 내가 스토리도 직접 쓰고 콘티도 짠다. 물론 아직도 배우면서 쓰는 중이라 많이 어색하고 또 써놓고 나면 고칠 부분이 많아 여기선 이렇게 표현해야 되는데…. 라고 안타까워하지만 다 그게 내가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의 철학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한다. 나를 보건데 모든 사람들은 다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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