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우리네 고향의 추억들

고향 그리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다!

검토 완료

이덕근(ldk56)등록 2004.11.19 19:32
아직도 눈에 선한 그 때...

국민학교 양철지붕을 때리던 빗소리,
공골다리 난간에 살구씨 갈아 구멍내고
입에 넣어 삐삐~ 불고 다녔던 때...

장터 버스정류장 앞 진국이네 어무이 점빵에는
풍선뽑기, 또뽑기, 돌사탕, 방망이사탕, 홍길동 풍선껌,
촌넘들 구멍난 보겟또엔 땡전한닢 없는데
빨리 집에나 가지 코 훌쩍이며 구경은 왜하노?

길땅꾸 차 한번 긁어놓은 신작로 맨질거리는 곳을 골라
타이어표 통고무신 닳을까봐 벗어들고 뛸때
양은벤또 속에 고추장통, 양철 필통속 동아연필,
박자맞춰 딸그락~ 뗄그락 거리고...

"저기 뻐쓰온다!" 길옆으로 비켜서서
"한번 태워주이소~" 절을 해대는데 스벌넘 기냥 지나가네...
지나가는 버스 뒷통수에 대고 팔뚝 까서 "니기미" 한번 날리고
뽀얗게 일어난 흙먼지 뒤집어 쓰고 돌아설제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 그 땟국물 자국...

길가 점식이네 밭에 무우 하나 쌔벼서
입으로 돌려가며 흙 묻은 껍데기 벗기고
연초록색 윗부분 한잎 베어물면 싸아했던 그맛...
밑으로 내려갈수록 매운맛이 나던 조선무우,
입 언저리가 얼얼해지면 신작로옆 또랑에 홱 집어던지고
꼬질꼬질한 소매 끝으로 입 한번 쓰윽 문지르면
청송 산판에서 뚱거리 가득실은 제무시 한대
또 먼지 일으키며 지나가고...

집에 가니 어른들 다 들에 가시고 누가 있나...
마루밑에서 졸고있던 검둥이만 입 찢어지게 하품하고
정지문 열고 들어가 보니 뭐 먹을게 있나...

부뚜막 한켠에 밥뿌제 덮인 대광주리 하나
제껴보니 한번 삶아놓은 거무튀튀한 보리쌀...
놋숟가락으로 푹 한번 뜨면 왈그락 거리는 생보리쌀,
그거 한숟갈 떠넣고 고추장 종지 찾아 풋고추 찍어 한입 베물었는데
스벌~ 니기미, 디게 맵네...
물 한바가지 퍼서 마시면 관자노리 찡해지면서 현기증이 확~
삶은 보리쌀 떠먹은 표 안나게 살살 고르게 해놓고...

꼴 베어 놓고 숙제도 해야되는데
깔딱낫 하나 바지게에 얹고 거랑건너 논둑길 지나갈제
"아참! 아까 종례시간에 신종덕 선생님이
내일까지 기성회비 안갖고 오면 총채 자루로 손바닥 맞는다 캤제"
아부지도 뭔 돈 있겠나
다음 장날 뭐라도 갖다 팔아야 돈 생길까...

또래 몇놈 모여서 장난 반, 꼴베기 반...
아직 바소가리 반도 못 채웠는데
납작돌 주워다가 벼락치기 세판,
지게 작대기로 오징어 그려놓고 삼년고개도 몇판...
집에 일찍가봐야 호박구뎅이에 똥 퍼주라 칼텐데
어스름 저녁까지 칼이삼도 하고 놀다가자.

꼴 반 지게 푸석하게 흔들어 부품~하게 만들어 지고 집에 가면
아부지는 여물 썰고 어무이는 정지에서 밥 하고,
"또 밥에 감자 섞었나? 아린 자주감자..."
마늘쫑 무침에 쌈 한 양재기, 그것도 꿀맛이라...
짤아빠진 간고등어 한토막은 아부지 상에만 있고
천천히 먹어야제, 저거 남으면 빼다구라도 발라 먹그러...

호롱불 등잔 밑은 어두웠지.
아래 등판에 내려놓고 엎드려 산수숙제... 곱셈 나눗셈,
4곱하기 6은 24던가 28이던가...
4단 첨부터 해봐야 알제... 사일은 사, 사이는 팔...
동아연필은 침 안묻히면 "깽"하게 안써지더라.

세어보니 책장은 아직도 너댓장 남았는데
갈수록 구구단 단수는 높아지고
엎드려 공부하려니 잠은 쏟아지는데
칠일은 칠, 칠이 십사... 팔육이 뭐더라...

아부지는 2학년때 도덕책 찢어 담배 말아
호롱불에 대고 쭈욱 한모금 빨아 피우시는데...

"아부지요 선샘이 내일까지 기성회비 꼭 가오라 카디더~"

"돈이 어데있노?"

"그라믄 다음 장날 지내서 낸다 카까요?"

"장날 머 내다팔게 있어야제..."

"지황 말라논거 팔면 되잖니껴?"

"이눔아야, 요새 지황값이 똥값이다.
가을에 담배감장 해가지고 준다캐라"

어이구~
담배는 아직 밭에 서있고
황초집엔 거미줄만 잔뜩 끼었는데
언제 담배감장?

명 짧은 넘 기성회비 받을래다 죽겠다!!

에이~ 씨
손바닥 맞고 변소청소 하느니
내일은 학교 가지말고
노루맥이 벼락바우 밑에서 중간학교나 해야겠다.

어차피 숙제도 다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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