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섯을 죽였다, 처음 느낀 사랑 때문에

2004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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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ikem)등록 2004.06.07 13:30

ⓒ 시네마루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 창녀인 영화를 보는 것은 괴롭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 몸을 파는 그녀들의 삶은 남성 자신의 속성을 스스로 모멸하게 만드는 한편 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을 은밀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 양가의 감정 속에서 스크린을 응시하기란 생각보다 난처한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몬스터>를 보는 것 역시 난처한 경험이었다. 2002년 플로리다에서 사형당한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 위노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에일린이라는 창녀가 6명의 남성을 연쇄살인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197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모델로 활동하다 스크린으로 활동 영역을 옮긴 샤를리즈 테론은 이 영화에서 창녀 에일린 역을 맡아 일생의 연기변신을 시도했다.

할리우드의 박제된 금발배우로 남아있기를 거부하고 세상의 모든 불행을 겪었음직한 거리의 여자로 분한 그녀의 연기 변신은 한마디로 완벽한 성공이었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은 별개로 하더라도 샤를리즈 테론이 보여준 연기에 관객과 평단은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전작 <데블스 애드버킷> <스위트 노벰버> <이탈리안 잡> 등에서 보여준 할리우드 금발미녀의 스테레오 타입 연기를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몬스터>의 연쇄살인범이자 창녀인 에일린 역 자체가 극적 반전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셈이다.

할리우드의 바비 인형 같은 배우가 체중을 30파운드 넘게 불려 뱃살을 만들고 거친 욕설과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거리의 여자를 연기한 이 사건(?)에 골든글로브와 베를린영화제 그리고 아카데미는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새로운 연기파 배우의 탄생을 축하했다. 그녀는 단순히 미모만 앞세워 스크린을 현혹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완벽하게 체현해 낸 배우로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 시네마루

영화 <몬스터>는 이처럼 에일린 역의 샤를리즈 테론의 힘으로 끌고 가는 영화라 해도 무리가 없다. 어린시절 받은 성적 학대와 폭력으로 일찌감치 고속도로 주변의 몸 파는 여자로 나서게 된 에일린은 망가진 자신의 인생을 자살로 마감하고자 한다. 이승의 삶을 끝내기 전 잠시 들른 허름한 바에서 레즈비언 소녀 셀비(크리스티나 리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자신의 계획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레즈비언이라는 성향으로 인해 주변의 따돌림을 받아야 한 셀비는 거칠고 우악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측은한 눈빛을 가진 에일린에게 첫 눈에 끌리고 만다. 그녀가 거리의 여자라는 걸 알지만 열여덟 셀비는 현실의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에일린을 가지고 싶어하게 된다.

셀비는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에일린을 쓰다듬으며 참 아름답다고 말한다. 에일린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타인의 진실한 시선에 삶의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깨닫는 순간. 그녀의 눈앞에는 오직 샐비 만이 보일 뿐. 결국 사랑의 도피를 떠나고야 만다. 그것이 비극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음을 미처 예상치 못한 채.

영화는 에일린의 범행을 모두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첫 살인은 정당방위의 개연성을 보여주지만 차츰 그녀의 범행은 위험상황에서 자신이 살기 위한 방어수단이 아니라 셀비와의 도피자금을 마련키 위한 범죄로 발전한다.

물론 에일린이 처음부터 강도가 된 것은 아니었다. 셀비와 함께 살기 위해 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진입하고자 이력서를 들고 뛰어다녔지만 일자 무식에 글조차 모르는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다. 사회의 냉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그녀는 다시 거리의 여자로 나서게 되고 그녀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영화속의 샤를리즈 테론 ⓒ 오스카위원회

그녀를 거리의 여자로 만들고 사랑에 굶주려 결국 살인마가 되도록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자체의 병리현상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영화는 에일린의 절망 어린 눈빛으로 호소한다. 그런 측면에서 <몬스터>는 마음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니었다.

한편 샤를리즈 테론의 180도 달라진 연기를 보면서 이 전 작품에서 본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과 겹쳐지기에 적잖이 곤혹스러웠다.

2004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샤를리즈 테론 ⓒ 오스카위원회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가 주목받은 이유는 에일린 역의 열연이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또 한편 팔등신을 자랑하는 늘씬한 여배우가 거리의 창녀로 망가졌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배제 못할 것이다.

여배우를 통해 한 여성의 극과 극의 모습을 보기 원하는 것이 결국 대중의 숨겨진 관음적 욕구 아니던가. 그 극단을 오가는데 분명 여배우의 미모는 대중들의 관심을 선점하는데 매우 유리할 것이다. 만약 샤롤리즈 테론이 그처럼 뛰어난 미모의 배우가 아니었더라면 아카데미나 골든글로브, 베를린에서 그토록 그녀의 변신을 환대했을지 의문이었다.

영화를 만든 패티 젠킨슨 감독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일이 없는 것은 에일린이었을 뿐.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셀비는 자신의 내일을 위해 에일린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안긴다.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셀비는 아직 어린 십대 소녀였을 뿐. 에일린은 평생 사랑에 굶주리다 결국 그 사랑 때문에 형장의 이슬이 된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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