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국공립대로 통합되어 대학의 제역할의 본보기가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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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우(lotrec78)등록 2004.06.09 20:24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과 더불어 그동안 적체되어 왔던 굵직굵직한 사회쟁점이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안에 편입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서울대폐지론이다. 한국의 교육에 관한 관심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압도적이다. 그런데 그런 열기의 대부분은 학생의 목소리보다 학부모의 성화로 들끓고 있으며, 개인의 자아실현으로서의 수양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서의 실사구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체가 담론의 영역에서 쏙 빠진채 오직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적 향학열의 정점으로써의 서울대가 배치되어 있는 현실로 인해 서울대는 제구실이외의 부정적 양태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한경쟁이라는 경제논리와 강자가 추앙받는 정글의 법칙을 교육에 대입시키면 서울대 존폐를 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삼성이라는 굴지의 대기업이 국가경쟁력의 한축을 담당하는 것처럼 서울대도 국내외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단 왜 그렇게 독점적인 지위를 획득했느냐에 대한 논쟁은 차지하자. 서울대 출신 그 개개인이 실제로 어떠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삼엄하게 평가하는 문제도 접어두자. 상징적 권력으로서의 서울대가 논의의 대상이지, 개개인의 서울대 학생은 서울대 폐지 문제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한 구분은 서울대가 폐지되면 서울대에 갈 만한 뛰어난 인재들을 고사시키는 것으로 와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런 전제 조건을 가지고 전체정원을 줄이고 대학원중심으로 무게이동을 하겠다는 서울대 자체개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지논의가 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지 따져보자.

가장 본질적으로 공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합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인성과 능력의 제 깜냥껏 배양이 그 핵심이 아닌가 싶다. 또 사회화의 교육과정을 통해 개인마다 자기 나름의 자아실현의 여건을 수월하게 보장해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경제능력을 얻게 해주는 특화된 실용교육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공교육 개념으로서의 접근에서 최고의 지향점은 아니다. 다시 처음 논의로 돌아온다면 서울대에 몇명보내고 몇명이 대기업에 취직하고 몇명이 판검사가 되는 수치계산은 학업의 지엽적인 성질의 것일 수는 있어도 공교육의 본질로 오인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현재 서울대 입학기준이 담보하고 있는 것은 중고등 과정의 학습 능숙도에 따른 상위 경쟁자들의 선별뿐이다. 그리고 그런 상위 경쟁자들의 독점으로 인해 서울대는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벌집단을 확대재생산하는 매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이런 고착된 구조가 여태까지 서울대가 쌓아온 명성과 프리미엄 그리고 자본의 집약으로 인한 총체적 교육환경의 비교우위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나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 열의, 도전의식은 어느것도 저절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서울대라는 이력이 국가경쟁력을 운운할 수 있는 인재양성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서울대가 학생들의 학습과 연구의 동기유발 요인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요인은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주동적인 힘이다. 오히려 엘리트코스를 정규화시키는 지금의 규격화된 교육은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기 십상이다. 즉, 이미 서울대가 형성해놓은 기득권안에서 자기개발을 등한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약 초거대 이윤을 산출하는 경영인을 키워내는 것이 국가경쟁력의 실체라면, 그러한 몇몇의 리더가 개척하는 "영웅적 서사"는 이미 그 허구성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반박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리더의 혜안이 놀라울정도의 사회가치를 창출한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주위를 메꾸고 있는 성실하고 역동적인 외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말해 집단에 속한 개개인들의 역량의 벡터가 그런 성과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경제지표만을 가지고 그것이 국가의 경쟁력이라다고 말한다면 보석같은 소수의 중요성이 간과될수 없지만 총체적인 사회역량, 사회구성원의 행복지수, 인문교양 및 이공계통의 과학적 소양의 융합이 가져오는 시너지 효과를 기획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발전상이 아닐까 한다.

그런 발전상의 저해요인의 핵심에 서울대의 폐해가 불러오는 모순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장광설이 필요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의 자격이 점진적으로 능력중심으로 옮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서울대는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으며 또한 누릴 수 밖에 없다. 한국사회의 인적네트워킹의 핵심적인 사항이 학연이고 보면 사회의 주도적 위치에 포진해 있는 서울대출신들은 서울대라는 직함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특권에 이미 공모되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즉, 개인의 능력이 어슷비슷하면 서울대출신들은 독점적 특혜를 누릴 수 밖에 없게끔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적네트워킹이 합리적으로 작용하는 사회라면 그 집단의 규모에 대한 위화감만을 논하면 될테지만, 음성적으로 혹은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쉽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종의 문벌처럼 형성된 기득권에 연착륙하기 대단히 쉽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사회인식속에서 비서울대 출신들의 박탈감을 상대적인 것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획득지위가 서울대 입학으로 인해 고정되기 쉬운 경향은 목매달고 사교육에 매달려야만 하는 평균적인 부모들의 과잉 열성의 원인이 될 수 밖에 업으며 이것은 뱀이 제꼬리를 물듯 끝없는 순환구조를 만들게 된다.

교육은 구조적인 문제다. 한국적 교육 구조에서 서울대는 정점의 위치에 있다. 사회진출의 통로로 밖에 효용성을 부여 받지 못하는 대학교의 위상 속에서 서울대의 폐지로 인해 그런 서열경쟁의 폐해를 완화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일련의 교육개혁은 과단성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수능시험을 가지고 대증요법을 남발하는 것으로는 학부모와 학생을 결코 현재의 구조하에서 만족시킬 수 없다. 서울대는 독점적 권한보다 다시금 학문의 상아탑으로써 국공립대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수행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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