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은 왜 피를 팔아야했을까

- 극단 <미추> 의 "허삼관 매혈기"를 보고 -

검토 완료

김명신(hatsal)등록 2004.06.09 22:10
극의 잔잔한 전개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은 관객에게 두 시간 가까이 올려다 봐야하는 불편함을 불평하지 않게 한다.

빨간 등, 열린 무대, 주연과 조연의 조화, 별다른 긴장감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극을 이끌어가는 지구력,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웃게 하는 힘,

이런 것들은 주인공 허삼관의 본래 성격이 갖는 힘이 아닐까 한다. 급히 서두르지 않고 자신보다는 타인을 더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이어서가 아닐까. 특유의 욕설은 뭔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장면에서 막음 장치가 되고, 허옥란 역시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허삼관을 믿고 따르는 아내 역을 잘 해낸다.

이 극이 중국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옛날 배고팠던 시절 우리의 이웃을 보는 듯하여 낯설지 않다. 게다가 자칫하면 매우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허삼관의 매혈기는 슬프다기보다 따뜻하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보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위해 피를 팔아야했던 그의 희생이 아름답고 따스하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왜?"라며 푸념 섞인 자조의 말을 하지만 그건 그저 푸념일 뿐이다.

그의 매혈기를 돌아보자면 이렇다.

그는 결혼하기위해 피 판 돈으로 애인 있는 여자 허옥란에게 음식을 사준다. 애인이 있지만 되사줄 형편이 못되는 옥란은 하는 수 없이 허삼관과 결혼해서 세 아들을 둔다. 하지만 일락이 결혼 전 애인 하소용의 아이임을 알게 되는데, 허삼관은 그때부터 "자라대가리"노릇을 하는 얼간이로 소문이 나고, 허옥란은 부정한 여자로 여겨져 문화대혁명 당시 세 아들과 허삼관의 맹렬한 비판과 자아비판을 받게 되기에 이른다.

허삼관은 일락이 하소용의 아들임을 안 이후 미워하지만 그는 두 번째로 일락이를 위해 피를 팔게 된다.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일락이가 병원비를 물어줘야하는 사고를 치게 된 것이다.

허삼관의 일락에 대한 미움은 점점 더해가고 허옥란에 대한 배신감을 결혼 전 좋아했던 여자에게 풀기에 이른다.. 결국 동네 사람들 모두 알게 되고 그녀의 남편은 허삼관이 그녀에게 잔뜩 먹을 것을 선물했다며 허옥란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결국 허삼관은 그녀를 위해 또 피를 판 것이다.

그리고 찾아든 가뭄으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허삼관의 가족은 다시 한 번 피를 팔아와서 국수를 사주는데, 허삼관은 일락에게 군고구마나 사먹고 오라고 한다. 정에 굶주린 일락은 집을 떠나 하소용에게 가보지만 문전박대되고 거리를 헤맨다. 하지만 허삼관에게 발견되어 오면서 일락은 진정한 아버지는 허삼관임을 깨닫는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일락과 이락은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데, 허삼관은 좀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길 바라며 공장장에게 술과 담배를 제공하려고 피를 팔게 된다. 이 땐 이미 지칠대로 지친 허삼관은 일락이가 간염에 걸려 큰 병원으로 가야하는 상황까지도 구걸하다시피 피를 팔게 된다.

허삼관이 이토록 피를 팔아야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물론 자신의 결혼을 위해서 피를 팔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거의 가족을 위해서였다.

허삼관은 늙어서 피를 팔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죽을만큼 늙었다.
처음 피를 팔러가기 전 물배를 채워 피의 양을 많게 하겠다는 생각과 피를 팔고 난 후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병을 먹었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그것을 먹고 싶어서 피를 팔고 싶다고 한다.

허삼관 매혈기의 잔잔한 감동은 소박한 내용과 탄탄한 연기력과 별로 꾸미지 않았지만 색다른 구성- 출연진이 관객이 보이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삼관의 일생이 자식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바치며 살아온 우리내 부모님의 모습이라는 것에 있다. 한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따뜻함이 깃들어있는 연극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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