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도 추억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엔 깊이 새겨두어야 할 상처의 흔적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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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senti79)등록 2004.06.24 09:42

살인의 추억 포스터 ⓒ 싸이더스

누군가 나에게 한국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 영화의 희망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화려한 특수효과나 막대한 규모의 자본투입이 가능하다 한들, 탄탄한 시나리오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 당시 조폭 영화 일색이었던 한국 영화의 부흥기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실제 사건과 작가적 표현의 경계를 쉴 새 없이 넘나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해결사건인 화성연쇄살인을 다루면서, 좀 더 깊이 그 사건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시대상황까지 치밀한 분석하는 것.

'살인의 추억'은 실제 미해결된 연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스릴러물이라는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의 흥행요소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약 6년 동안 10차례의 강간살인사건을 저질렀던 범인이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살면서, 그 사건을 '추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영화적 설정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 푹 빠질 수 있게 한다.

감독이 스스로 '농촌스릴러'라 지칭한 것에서도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영화에서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하는 멋진 형사나 미모의 여주인공은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천재적인 추리력을 지닌 등장인물이 없음은 물론이다. 단지 이 영화 속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종류의 피해자만이 존재할 뿐이다(어쩌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박현규마저도!).

이제 좀 더 상징적인 의미에 주목해보자. 가난한 농촌마을의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줄줄이 살해당한다는 설정은 실제 발생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상징적이다. 가난하고 약한 계층의 사람들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사회구조(얼굴 없는 가해자)에 의한 피해를 입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당시 한국사회에서 빨간색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 감독은 범인에게서 살아남은 여자의 입을 빌려 '부드러운 손'이라는 단서를 던져놓는다. 이것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논, 그리고 채석장과는 상반되는 이미지이다. 또 다른 목격자인 백광호는 '나 보다 잘생겼다'는 단서만을 남겨 놓은 채 기차에 몸을 던진다.

이 두 가지 단서만으로 어떤 추리가 가능할까? 한 개인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좀 더 큰 범주에서 범인이 속한 집단을 가려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물론 이 작품에 드러난 상징적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사건이 발생한 동네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용의자 박현규 ⓒ 싸이더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에 맞춰보자. 곱상한 얼굴을 하고 부드러운 손을 놀리는 계층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지식인 집단이다(물론 여기에는 언론인도 포함이 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치인들은 백주대낮에 직접적으로 행동을 하지만 지식인들은 비오는 날 어둠 속에서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결코 쉽게 덜미를 잡히는 법이 없다.

봉준호 감독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80년대의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를 '동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80년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로 얼마나 많은 인원동원이 이루어졌던가. 영화 속에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된 것도 결국은 전경들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다른 곳에 '동원'되었기 때문이었다.

봉준호감독이 가장 좋아한다는 여고생 '동원' 장면 ⓒ 싸이더스

동원에는 언제나 강제력이 뒤따르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동원된 사람들의 피해의식을 보상할만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명분과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지식인이 정권에 기여하는 몫이다.

마치 작업장에서 홀로 떨어져 부드러운 손으로 기계를 관리하는 박현규와 같이, 지식인들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엄청난 사회적 위기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손을 거칠게 다루는 일은 없기 때문에 뚜렷한 증거가 없다. 늘 배후에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검사로는 일치하는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DNA검사의 결과는 불일치였다. ⓒ 싸이더스

살인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도 아무 두려움 없이 그것을 추억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영화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 범죄가 잊혀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기억하는 것 자체가 응징의 시작이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는 아플수록 더 깊이 새겨두어야 할 상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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