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민’들의 촛불 잔치?!

탄핵반대 국민행동의 관변단체적 행태를 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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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명(osr1998)등록 2004.06.28 10:03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파병반대의 움직임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껏 지키고, 또한 만들어온 민주주의가 너무도 어이없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이번 6월 26일 파병반대 집회에서의 시위 집행부를 강력히 규탄하는 바입니다.

26일 오후 7시경 집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 활동을 하는 친구를 따라 20여명 정도의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시위대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회가 시작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 날의 집회가 10여 년 전 관변단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로 진행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여기까지 허락해줄게.”하는 경찰의 친절한 협조 아래, 폴리스라인과 함께 선 ‘네티즌 자원봉사단’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교’들의 “앉아주세요!”, “질서를 지켜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며, ‘일반 시민’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 붙은 어느 누군가들을 위해 모두가 다 깃발과 피켓을 내리며, 촛불조차 마음대로 켜지 못하고 앞에서부터 뒤로 일사분란하게 켜야만 하는, 거리에 앉은 사람들은 무대 위를 구경하다가 지시에 따라 소리 좀 지르는 그런 집회가 바로 우리가 독재에 맞서서 싸워 얻어낸 집회의 자유입니까!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글이라도 써 낼 수 있고, 거리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고, 어떤 조직이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헌법의 권리가 마치 공권력의 시혜로 이루어진 것인 냥 스스로를 관변단체로 만들어버린 파병반대 국민행동 집행부의 26일 집회에서의 행동에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독자적인 시위 대오를 만들어 대오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시민’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시위대에서 나와 동화면세점 앞에서 자체 집회를 가졌습니다. 20여명의 시위대가 자유롭게 두런두런 둘러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앞에서 우리의 주장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몇 분이 더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이 쪽으로 온 분들도 있었고, 어쩌다가 합류하게 된 분들도 있었습니다. 한 30여 명의 사람들이 ‘조직’이 되자 우리는 중지를 모아서 행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앞에 서서 그들을 조롱하며 규탄하였고, 시청까지 걸어가서 서울 광장을 지나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정치집회가 금지된 그곳에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활보하였습니다. 경찰들이 모두 광화문의 시위대를 보호하러 투입된 탓이었을까요. 거기서도 몇 분이 더 동참하였고, 네 명의 초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위대에 들어오기도 하였습니다. 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는 전쟁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인권위원회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시 광화문에 왔을 때 그곳에서는 만 오천 명의 사람이 여전히 깃발을 내리고, 일사분란하게 앉아서 경찰의 보호와 ‘네티즌 자원봉사단’의 지시를 받으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집회 대오 뒤, 폴리스 라인 밖에서 둥그렇게 둘러서 정리 집회를 하려고 하자 경찰들이 와서 대오 안으로 들어갈 것을 종용하였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싫어요.’라고 말했고 경찰들은 이상하게도 순순히 물러났습니다. 다시 정리집회를 하려는데 이번에는 ‘네티즌 자원봉사단’의 어느 남자분이 오셔서 아까의 경찰들과 ‘똑같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집회 대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이러시면 ‘질서’없이 보입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정리하고 갈 껍니다.”
“그래도 이러시면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어떻겠습니까?”

‘일반시민’이라는 말이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일반시민’이란 대체 누구입니까? 여자친구를 따라 나온 대학교 4학년생인 저는, 민주노동당원이며, 아나키즘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일반시민’입니까? 아니면 운동권입니까? 아니면 무엇입니까? 저기 가는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투표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 없고, 이라크에 군대 보내서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 사람은 그럼 ‘일반시민’입니까? 조금 더 솔직히 말해,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성을 숨기고 파병 반대 시위대 안에 앉아 있는 수많은 노사모, 국민의 힘 등 노무현 지지자들은 ‘일반시민’입니까? 아니면 그들은 또 무엇입니까?

‘일반시민’이란 대체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 존재이며, 직장에서는 직장인이 되기도 하고, 수업시간에는 학생이 되기도 하며(‘운동권’도!), 시위 현장에서는 운동권이 되기도 하는 것일 뿐, ‘일반 시민’이라는 시민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반시민 보기에’라는 그 분의 말이 왜 저에게는 자꾸만 ‘어른들 보기에 안 좋다’를 들먹이며 똑같은 머리스타일, 똑같은 운동화, 일렬로 늘어선 조회대오를 강요하던 중고등학교적 선생님들의 말과 같이 들리던 것일까요. ‘질서’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탄핵반대집회가 우리를 관변단체로 만들었습니다!

탄핵반대집회의 코메디를 기억하십니까? 집행부와 법무부, 행자부, 청와대가 모두 한 목소리로, “정치 집회 아니다.”, “우리는 문화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하면서 집시법 위반을 애써 피해가며 공권력의 허락을 받기 위해 애썼던 그 코메디 말입니다. 한겨레와 같은 ‘진보적인’ 언론들이 집회시위문화의 신기원을 열었다며 극찬을 한 ‘촛불 문화제’의 그 코메디 말입니다.

2002년의 촛불집회 이후, 탄핵반대집회가 그 동안 정치집회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참여’가 완성되는 순간, ‘집회의 자유’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개인들이, 혹은 조직된 단체들이 각자의 정치적 지향에 따라서 때론 한 목소리로, 때론 여러 목소리를 외칠 수 있는 집회가, 경찰의 가호아래 집행부와 ‘자원봉사단’의 일사분란한 지휘를 받으며 이루어지는 관변단체의 집회와 같이 변질된 그 지점에서부터 우리는 다시금 ‘집회의 자유’라는 권리와 시위의 새로운 형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촛불집회는 아무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집행부가 그렇게 원하는대로 한 100만 명이 모여서 움직인다면 모를까. 아니 그런다 할지라도 이미 공권력이 허락해준 한 평 땅 안에서 그들이 예측가능하게 움직이는 질서정연한 대오는 더 이상 권력자와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 촛불집회들의 기사 양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2002년 12월 7일의 촛불집회를 기억합니다. 그 때는 아마 고 심미선, 신효순 씨(지나가는 이야기지만 누가 그들을 ‘미선이’, ‘효순이’로 부를 권리를 주었나요? 남자인 김선일 씨가 추모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를 기리기 위한 첫 번째 ‘대형’집회였을 것입니다. 혹시 그 때 나오셨던 분들 기억하십니까? 집회 집행부는 ‘정리집회 합시다.’를 외쳤음에도 시위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의해서 최초로 미국대사관 앞까지 돌파해내었던 그 때를 말입니다. 그 때의 참가 인원은 26일 집회와 비슷한 만 오천여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일반시민’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때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대사관앞으로 달려가는 대오의 최전선에는 여고생들이 있었음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런 ‘일반시민’이 국민행동 집행부의 생각처럼 비정치적인 대중이 결코 아님을 기억합시다. 집행부와 노무현 지지자들의 그런 태도야말로 또 다른 ‘엘리트주의’는 아닐까요? 깃발을 끝까지 내리지 않는다고 당신들에게 비판받는 ‘운동권’ 사람들의 그것보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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