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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동생은 고3 19살이다. 내 동생은 아침마다 교복을 입고 귀 밑으로 2cm정도 되는 머리를 단정히 하고 검정색 운동화에 언밸런스한 하얀색 민양말을 신고 학교로 향한다.
이 지역에서도 규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동생의 학교는 아직 내가 중학교 다닐 시절의 교칙 그대로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선도가 줄을 서서 머리 길이를 재고 가위로 한참 외모에 민감한 여고생들의 머리를 함부로 자르는 일이 행해진다고 한다. 단 한마디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성역이고 있을 수없는 일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유를 빼앗겨 간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우리 학교에도 이런 교칙이 있었다. 물론 요즘은 많은 학교들이 교칙이 수월해지고 나의 모교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이는 명문대를 많이 보내지 못하는 이른바 '마이너급 인문계 고등학교'나 그렇다.
내로라하는 명문고는 아직도 머리길이는 물론이고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기도 하고 양말에 티끌만한 무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귀 밑으로 수치를 정해논 머리 길이는 공부하기에 바쁜 고등학생들에게 한달마다 한번씩 미용실에 가는 귀찮음을 만든다. 때문에 나의 고교시절에는 각 고등학교에서 두발 자율화를 위한 투쟁 아닌 투쟁도 벌어졌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교칙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이런 보호라는 통제 속에서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마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네들 사이에서 머리가 긴 아이, 치마를 유난히 줄인 아이 등등 개인의 의사로 자유롭게 결정해야 할 여러가지 사항들이 '노는 아이'의 것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한 학급당 학생수는 세계적인 수준이면서, 학교 폭력과 더불의 교사의 제자 성추행까지 일어나는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이 정도의 인권 침해는 물론 신경쓸 겨를도 없는 사소한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소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아이들은 각종 학내 사고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의식적 권리를 빼앗기게 된다. 자신의 학사 운영에 대한 권리도 갖지 못하면서 의무만 지켜야 하는 학교의 현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 그 아이들은 매일 달달 외우고 있는 교과서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청소년도 사람이다. 그네들이 아직 투표권도 행사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다 할지라도 그들 역시 사람이다. 17세 18세의 학생들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결정 할 수 있는 의식이 갖춰지는 나이이며 옳고 그른 것을 판별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들이 대학에 와서 사고 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분명 지금 자신의 머리를 잘리면서, 빨간 양말을 원함에도 흰색 양말을 신으면서 무엇인가 불만을 느낄 것이다. 이제는 그것을 말하게 만들어 줄 차례다. 상명하복식의 교육은 지난 수십년간 지긋지긋하게 해왔으니 말이다. 이제 윗사람에게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능력도 조금은 배워야 할 것이다.
요즘 인천외고에서는 학생들의 권리 찾기가 한창이다. 그것이 비록 그것이 선생님들의 조종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드디어 고등학생의 입에서 '민주적 학사운영', '민주적' 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인천외고 사태는 아직은 미흡한 점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로 인해 교육 당국은 청소년들이 학내에서 자신의 인권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제도의 개선과 자신의 인권에 대해 인식 할 수 있는 교육의 개선이 절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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