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상처받은 사람들께 바치는 콩트-<님>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찾고 있는 님은 바로 그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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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kjt487)등록 2004.07.19 17:36
*TV를 눌러 꺼도 잠을 못 이뤘습니다. 벗들도 또한 같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그래, 이 땅의 상처받은 벗님들과 흰눈 수북수북
내려 쌓이는 백담사로 떠나가 보았습니다. 2004년 7월19일 올림.

♠콩트

김준태

님은 어디에 있을까? 님은? 사람들은 '님'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님을 만나려고 평생동안 사방팔방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마무리한다.
낯선 시골 기차역에서 숨을 거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처럼 조용히,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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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눈발이 정신을 잃게 할 정도로 흩날렸다. 한계령을 넘어가는 차량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도 물론 없었다. 폭설주의보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만중씨는 내친걸음에 백담사로 달려가고 싶은 것이었다.

“백담사까지는 7km를 걸어야 합니다. 봐요. 쌓인 눈이 벌써 80cm 가량 되지 않습니까.”

<설악산 관리사무소> 직원은 고개를 흔들며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허만중 씨는 그러나 빙긋 웃고 나서 배낭을 들춰 맸다. 백담사 쪽으로 걷고있는 한 스님이 보였던 것이었다.

“저기 스님께서도 걸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동무삼아 잘됐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허만중 씨는 뛰어가서 스님에게 합장을 했다. 곧 알게 되었는데 그는 운봉 스님이었다.

“옷차림을 보면 등산하실 분은 아닌데...무슨 일로?”
“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님? 어떤 님인데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는 님이라서..."

바람은 산줄기를 가르는 듯이 세차게 불었다. 나무에 얹힌 눈발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무릎까지 빠져드는 눈길이었다. 껑충껑충 뛰어오던 노루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멈칫 했다. 스님은 세상 나이로 60살쯤 되어 보였다. 허만중 씨는 그 순간 길옆 나뭇가지를 부여잡았다.

“스님께서는 백담사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범어사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하오면 무슨 일로 이 힘든 날에?”
“저 역시 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범어사에도 좋은 님이 계실 것 같은데요?”
“님은 하나이면서 열이고 열이면서 또 하나입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 계십니다.
오늘 그래서 저도 행여 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눈 내리는 이 깊은 산길을 택하여
온 것입니다.”

“아, 그러나 스님께선 건강하십니다.”
“헌데 설령 뵈옵는다한들 알아차릴 수 없다면...”

“깨달음이 없이는 결국 님을 볼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네. 볼 수 없고 그의 가벼운 숨결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윽고 운봉 스님이 지팡이를 들어 가리켰다. 백담사가 두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한때 한용운 선사가 머문 백담사가 켜켜이 쌓인 적막산중의 고요와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않았습니다) 허만중씨가 어깨의 눈을 털며 마음 속으로 (스님!) 하고 부르자 운봉 스님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는 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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