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망국론을 실감 합니다

LG 칼텍스 정유의 파업-가동중단에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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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수(valentinec)등록 2004.07.21 17:29
정유회사라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LG 칼텍스 정유의 파업과 가동중단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7월 19일 오후, 퇴근시간이 가까운 시각, 각 정유사 임직원들은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 가닥 초조감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40여년 국내 정유산업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정유공장 LG 칼텍스 여수공장이 노동자 파업 때문에 생산중단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우여곡절 끝에 가동중단 위기를 넘길 것인가...

업계 사람들의 막연한 우려와 기대는 오후 5시 반쯤 되었을 때 지극히 부정적인, 아니 최악의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하루에 65만 배럴의 각종 석유제품을 생산, 공급하는 국내 제2위의 LG 정유공장이 고질적인 노사 불화로 완전 가동중단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회사는 물론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유공장 최초의 전면파업, 최초의 전면 가동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제품값)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종 가동중단에 이르게 된 전원 메인 스위치의 작동 주체를 놓고 회사가 껐네, 노조가 껐네 책임 전가로 서로 추태를 보이고 있는데, 그런 일은 지엽적이고도 창피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15만 4천 볼트의 전력을 이용, 수십개의 복합공장을 가동하는 곳입니다.

LG 칼텍스 정유 여수공장은 29개의 조정실이 있는데 단 한 곳이라도 파업노조원들이 강제 점령하고 있었다면 전원 스위치를 장악하고 비상 운영하는 것이 회사와 엔지니어들에게 상식일 것입니다.

정유회사의 엔지니어들은 노조원이 아닌 경우가 보통인데 노조는 29개 중 6개의 조정실을 점령하고 비노조원과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했다고 합니다. 회사 고위층 엔지니어들과 최고 경영자는 거대한 연관시설 보호와 산재한 위험물들의 안전확보 차원에서 비상한 각오로 모든 공정 전원의 즉각 차단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합니다.

아침 뉴스에 따르면 조정실을 점령하고 있던 파업지도부 간부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본사, 사업장 등에서 긴급 차출된 엔지니어들과 공장 비노조원, 간부사원들이 동원되어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고, 회사는 노조원들에게 현장복귀를 권유하고 있는데 복귀율은 아직 10%에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번 파업연출과 가동중단 투쟁에 가담한 모든 조합원들이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혹시 일정한 수준의 '폭도들'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고 이를 감추기 위한 양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요? 다른 평범한 파업투쟁 현장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력한 노조의 파업으로 현실화 된 LG 칼텍스 여수공장 전면 가동중단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번 사태를 몰고 온 노사갈등과 노조의 '영웅적인' 투쟁결과는 공장 가동이 재개 된다고 해도 결코 간단히 마무리 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LG 칼텍스 정유라는 일개 기업의 노사갈등이 막대한 생산차질과 영업피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 전반에 충격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LG 칼텍스 정유는 비상사태로 가동중단 될 경우 휘발유 19일 분을 비축하고 있어서 최대 19일간 전국 LG 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파업처럼 갑작스러운 가동중단은 비축유 수급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장 가동을 재개할 경우 정상가동(온 스펙 및 상업생산) 하는 데는 20일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즉각 재가동에 착수한다고 해도 자체 수급차질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 각종 정제공정에 충전되어 있는 각종 값비싼 촉매가 가동중단으로 손상되어서 상당량을 쏟아 버리거나 새 촉매로 보충한 다음 정제해야 하기 때문에 이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파업이 당장 끝나고 정상가동하는데 20일 정도 걸릴 경우 공장손실은 최소 400~600억원 쯤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금액은 영업손실을 계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7.21) 아침 회사가 밝힌 1일 매출감소는 300억 원씩 이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파업이 계속 되어 LG 자체 휘발유 비축분이 바닥나면 석유공사가 비축한 휘발유 12일분에서 매입, 판매할 수 있는데 이 때는 다른 정유사들의 수출용 휘발유를 LG가 매입해서 LG 주유소에 공급하는 비상조치도 병행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악의 단계는 정부가 석유수급조정명령을 발동하는 것입니다. 국내 대부분의 석유제품은 현재 생산과잉이어서 크게 우려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수출용 경질유를 LG 칼텍스 정유 지원용으로 돌린다고 해도 파업이 1주일 이상 장기화 된다면 석유화학 원료 중 당장 벤젠 수급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벤젠은 S-Oil과 LG만 생산하는 석유화학 원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석유화학의 기본 원료인 나프타 수급을 걱정하는 편이지만, 나프타는 내수 물량에 여유가 있고 수급차질이 오더라도 즉시 수입하는데 따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품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G 칼텍스 정유 노조가 회사와 파업 직전까지 6차례 교섭 중 3일째 임금협상(노조요구 10.5% 인상) 회의를 가졌다고 하는데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은 노조가 요구한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매출액의 0.01%에 해당하는 지역발전기금(연간 약11억원 예상) 출연 등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6차 교섭 3일째라는 최단(?) 교섭기간에 정부의 직권중재도 외면한 채 파업을 결정하고 가동중단까지 이르게 된 긴급한 사연이 무엇인지 대단히 궁금합니다. 보통 다른 정유사 노사가 매년 연례행사로 벌이는 단체협약 협상이나 임금협상은 우보(牛步)를 닮아 수개월 동안 최소한 10~20회 정도 회합을 가진 다음에 어렵게 타결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LG 노조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는 3대 요구사항 중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근무'는 상당히 무리하고 이기적인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업 타사는 이미 노조가 양보, 개인 휴가 일수를 조정해서 주5일제가 정착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던가 '지역발전기금 출연' 등은, 타사 노사협상에서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단위노조의 투쟁목표와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주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LG 노조가 민노총의 강경노선에 총대를 맸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LG 노조가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희생양이 될 각오를 다졌다고 해도 이런 요구사항은 실사구시에 맞지 않습니다.

참고로 국내 정유 4사의 급여수준과 복지, 근무여건 등을 피상적이나마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유업종은 종업원들의 임금과 복지수준, 근무여건 등이 다른 제조업종보다 훨씬 좋은 편이라는 사실을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LG 칼텍스 정유 파업사건 후속보도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임직원 급여는 평균연봉으로 따져서 7천만원(오버타임, 수당 포함)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봉은 낮은 이직률, 현장 노동자의 고령화 현상을 일부 반영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적어보면, LG 칼텍스 정유는 생산직 사원 1,200명의 경우 평균연봉이 6,920만원이라고 밝혔습니다. (7.21 언론보도)

동종업계의 임금결정 관행이나 절차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S-Oil이나 현대정유, SK도 비슷하다는 것을 짐작하실 것입니다. 각 사별 동일직군, 동일연령 근무자들로 연봉을 단순 비교하면 그 차이가 10~20만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국공립 고등학교 교감의 평균 연봉이 5천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전자 역시 임직원 평균연봉이 4천 8백만원 선이라고 며칠 전 보도 된 적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종업원 연봉이 5천만원(오버타임, 수당 포함)이 넘는다고 지난해 보도되어 '귀족노조'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분간 구조적 적자가 불가피한 현대정유를 제외하면 국내 정유3사는 최근 10여년간 연말 특별 성과급 등을 포함 최하 1천%가 넘는 보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장 근무여건은 대부분의 주요 시설 공정이 자동화 되어 있어서 일상 근무에서도 근육을 쓸 일은 전혀 없고 24시간 운전이 이루어지는 공장인 관계로 교대근무 노동자에게 최적의 근무형태라는 4조 3교대제를 60년대 정유산업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꿋꿋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LG 칼텍스 노조는 이번 단체협약 요구사항에 해괴한 5조 3교대제로 바꿀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4조 3교대는 항상 1개조가 월 3~5일씩 휴식을 취하는 형태입니다. 정유사들의 복지수준은 우리나라 제조업 수준에서 가히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직원 자녀 2명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 90% 이상(국 공립대 100%)을 책임져 줍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승용차 보유율이 100%를 넘은 것은 수년 전의 일이지만 어떤 정유사는 의료비 본인부담금 중 연간 10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곳도 있습니다. 생산직 노동자들을 위한 클럽하우스에는 골프연습장이 있는가하면 야외 수영장까지 갖춘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여러분은 어떤 계층으로 규정하시겠습니까? 작업복(유니폼)을 입은 산업전사들이니까 모두 사용자의 노동착취와 정부의 노동탄압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라는 고정관념을 그대로 유지하시겠습니까? 누가 퍼뜨렸는지 모르겠으나 ‘귀족노조’라는 말과 ‘노조 망국론’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노동자 공화국’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군인 공화국’ 못지않게 끔찍한 상상입니다. 연봉 7천만원짜리 노동귀족 집단이 생존권 투쟁이라며 공장 문을 닫고 파업하면서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합니다. 지극히 파렴치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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