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연쇄살인 사건과 '묻지마 범죄'

우리 사회가 고쳐나가야 할 점

검토 완료

최종일(allday33)등록 2004.07.23 19:28
작년과 올 상반기에 걸쳐 30대 남자가 무고한 시민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경위가 밝혀지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아연실색(啞然失色)케 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연쇄살인을 저지른 피의자에게서 별다른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은 피의자 유영철(34)이 '가진자'와 '여자'에 대한 증오에서 이들을 상대로 살인행각을 벌였다고 발표했지만 유씨는 기자들에게 “살해동기가 잘못 보도됐다”는 발언을 해서 이에 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구체적인 살해 동기는 후속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유씨가 피해자들과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점과 대부분의 피해자들에게서 금품을 빼앗거나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은 확인되었다.

전문가들은 유씨의 범죄와 같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들과의 직접적인 원한이 없이 자행되는 범죄를 '선진국형 범죄', '무동기 범죄', '묻지마 범죄' 등으로 부른다. '묻지마 범죄'는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우려된다.

또한 이번 연쇄 살인 사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피해자의 상당수가 경찰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윤락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유씨의 연쇄 살인 사건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앞으로 우리사회가 고쳐나가야 할 점을 몇 가지 지적해 보겠다.

우선 경찰은 초동수사에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 기존의 살인 사건은 주로 피해자와의 원한·치정·금전관계 등에 의해서 발생했다. 그래서 경찰 수사는 피해자 주변을 탐문조사해서 의심이 가는 인물이나 의혹이 짙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유씨가 저지른 범죄나 서울 서남부 지역 살인사건은 피의자 주변 조사만으로는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다(경찰의 실종 신고 졸속 처리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단서나 주변 목격자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초동수사를 원활히 진행시킬 수 있도록 일선 경찰관들에 대한 교육 및 관련 시스템 마련에 힘써야 한다. 일반적으로 살인사건 발생 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119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경찰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그리고 범죄의 사각지대에 놓인 윤락여성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윤락행위가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금품을 빼앗겨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을 악용해서 노래방 도우미만을 상대로 32차례나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범죄도 발생했었다.

매매춘은 발본색원(拔本塞源)으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경찰은 매매춘의 단속과 윤락여성들 대상의 개도 활동과 더불어 관련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이들이 범죄에 노출되는 걸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도 마련해야 한다. 경찰의 치안 서비스는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살인 사건 발생을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살인사건을 저지른 자를 법의 심판대에 반드시 오르게 하는 건 별개의 것이다. 이것이 또한 살인 사건 발생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경찰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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