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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료보험이 우리 곁으로 한발 더 성큼 다가왔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가져온 실업, 비정규직, 사회의 공공성의 저하등 여러 가지 폐혜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우리사회에 또 하나의 만만치 않은 부담이 다가온 것이다. “민간 보험이 한발 더 다가왔다고? 언제 우리에게 민간의료보험이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민간보험은 이미 우리들의 삶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암보험.’ ‘OO특약보험’ 등의 형태로 이미 민간보험은 우리들의 삶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져온 부작용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의 일부가 가입하는 민간보험에서 암보험등의 상품을 내놓기 때문에 국민의 전부가 가입하는 건강보험에서 암에 대한 적극적인 급여가 되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가오는 것은 이러한 기존의 보완적 성격의 민간보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척 강한 것이다. 바로 외국계 민간병원이 영리법인의 형태로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정부는 인천, 광양, 부산 등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의 하나로 이들을 진료할 외국인 병원의 설립도 허용하겠다는 방침인 모양이다. 그냥 들어 보아서는 당연한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국민에게 별 해가 될 것 같지도 않은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자세히 곱씹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가 있다.
각 경제자유구역에 얼마의 외국인이 거주할지는 추이를 봐야 알겠지만 그 수는 수천 명에서 많아도 수만 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국의 인구대비 의사의 숫자로 본다면 국민 800-1000명당 의사 1인 정도가 보통이다. 외국이라는 특수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1만 명이 거주한다고 할 때 15인 이상의 의사는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재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올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들은 적어도 500병상에서 크게는 10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3시간대기 3분 진료가 아닌 외국계 병원의 시스템을 고려하면 500병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의사가 거주하여야 할까? 1만 명중 외국인 중 20분의 1에 해당하는 500명이란 인구가 항상 교대로 입원하고 있을까. 이들도 큰 병에 걸리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 병원들이 기획하는 병상의 규모는 지나치게 큰 것이 사실이다.
사실 경제자유구역 안이 나오기 전부터도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개방압력 중에서도 의료시장개방에 대한 압력이 만만치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장애. 외국인 의사의 국내의사면허 취득문제, 국내법이 의료기관의 영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의 장벽에 걸려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해왔었다. 그러나 이번에 경제자유구역 안이 나오면서 외국인을 진료한다는 명목으로, 경제자유구역 안에 한국의사면허의 취득이 필요 없이 외국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한 영리목적의 의료기관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안에는 영리목적의 의료기관의 설립을 허가하고, 이들의 수익금에 대한 과실송금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며, 이들 병원의 원활한 운영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이들 병원에서 내국인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인 것 같다.
이런 조치들을 확보하고 병원 설립을 추진하는 외국계 의료기관들이 의도하는 것은 명백하다. 내국인 환자들에 대한 진료로 인한 수입을 올려 이것을 본국에 송금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국인 환자에 대한 진료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예상되는 외국인의 수에 비해 과도하게 큰 규모에 병원을 설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결국 한국 의료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형평성의 차원에서 한국의료 기관들도 영리법인화를 요구할 것이고, 외국계 의료기관에 환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의료의 선진화’에 열을 올릴 것이다. 이미 CT 보유율이 전 세계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의 중복투자로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자원을 효율적이지 못하게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의료기관들은 또 경쟁적으로 시설확충경쟁에 나설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이 사실상 와해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다. 외국계 병원들은 스스로, 혹은 국내의 보험회사들과 손을 잡고 자신들의 민간의료보험을 만들 것이다. 한국 땅에 외국계 의료기관이 들어옴으로써 외국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한층 높아져, 현재보다 더욱 많아진 외국의료에 대한 수요는 내국인이 외국계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요를 충당할 것이다. 이 경우의 의료보험은 암보험과 같이 기존의 건강보험에 가입하면서 보완적으로 가입하는 의료보험과는 달리, 아예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으면서 외국계 의료보험에만 가입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현재 국내 진료비의 7배가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계 의료기관을 이용할 만한 경제적 수준의 고소득층이 대거 건강보험에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건강보험재정은 부실화될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2류 보험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보완적 암보험조차도 의료보험 급여내용의 확장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외국계 병원 도입에 의한 민간보험의 설립은 건강보험을 몰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요구하는 실업과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건강을 지킬 권리마저 빼앗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 의료제도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의료제도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우리보다 영아사망률이 더 높으며, 인구의 15%가 어떠한 의료체계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어려운 시대이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가는 이때에, 우리들의 삶을 지켜가는 마지막 보루인 의료보험체계마저 무너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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