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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쓴 글을 한 편 소개합니다. 그 친구의 필명은 '아기장수'.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나 소설가는 아니고, 함께 가입해 있는 대학 동기 카페에 사투리로 된 시를 연작으로 써서 올리는 할 일없는 친구입니다. 경상북도 칠곡이 고향인 그는 삼사십 년 전의 시골 고향말과 풍속을 놀랍게 복원해 낼 줄 아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그는 '동무집애 갔지예.'라는 사투리시를 써서 올렸습니다. 우리 카페 회원들만 보기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여기 소개합니다. 원래 사투리로 된 글이지만, 표준말로 옮긴 것을 먼저 소개하고 뒤에 원문을 소개합니다. 물론 원문으로 읽는 것이 훨씬 실감납니다.
동무집에 갔지요.
무너진 담 너머로 옆집 쇠돌이한테 갔지요.
마당 편평한 데 네모 크게 그리고
네모 모퉁이에 혀 빼물고 한 뼘 힘주어 돌려
쇠돌이 집, 내 집 자그만하게 지어 놓고
땅따먹기했지요.
내 땅빼기는 납작돌, 쇠돌이 것은 번쩍이는 사금파리
손톱으로 세 번씩 땅빼기 튕구어 금 그어가며
저하고 나하고 대가리 맞대고 빈땅 따먹기했지요
땅따먹기하다가
목말라
샘물 퍼 먹었지요.
둘이서 힘들게 힘들게
샘돌벽에 두레박 부딪히는 소리 들으며
두레박 끈 낑낑 끌어올리니
한 두레박 물 오다 다 흘러 반 두레박도 안 됐지요.
둘이서 내 한 번 저 한 번
저 한 번 내 한 번
동그란 두레박에 주둥이 대고 물 먹었지요.
"너희집 두레박은 이상하네." 하니까
"우리 것은 깡통 두레박이다!"
"깡통이 뭔데?"
"어른들이 양철 두레박이라 하기도 하더라."
"양철은 뭐고?"
"몰라. 그런데 이거 미제라 하더라."
"미제가 뭔데?"
"젤 좋은 거. 젤 좋은 거는 다 미제라 하더라."
이러다 다시 마당에 퍼질러 앉아 땅따먹기했지요.
빈 땅 다 없어져 버리고 인제 내 땅 제 땅만 남아서
남의 땅 뺏어먹기 하는데,
내 돌땅빼기는 손톱으로 세게 튕구니 이게 또로록 딴 데 가버렸고
쇠돌이 사금파리는 번쩍 내 땅 확 가로 질러
내 땅 따 묵고 또 따 묵고
제 뼘 안에 들어가는 가장자리 땅까지 제 땅으로 만들어 놓고
손 톡톡 털면서
"우리집에 미제 또 있다" 이렇게 말하대요.
난 빼앗겨 없어진 내 땅만 보고 있는데
저 혼자 부엌에 뛰어 가대요.
문지방 폴짝 넘어 뭘 한 손에 들고 나오며
움푹 패인 커다란 숟가락 하늘까지 치들고서
"이거 우리 아부지 숫가락이다. 미재다."
힐끔 쳐다보다 집에 와 버렸지요.
"할배-, 우리집에 미제 없어요?"
할배는 지게에서 똥장군을 부려 놓고
핫바지 뚤뚤 걷어 올리고 두레박으로 발등에 물 퍼붓다
"이눔 땅따묵기 했구나. 손 씻어라."
땀 젖은 할배 얼굴 밑에 내 얼굴 들이밀고
"우리집에 미제 없어요?"
"있지."
"정말로?" "어디요? 뭔데요?"
"통시- 똥바가지가 미제다."
"아니다. 제일 좋은 게 미제라 하던데…"
"미제는 땅따먹기 잘하는 미국놈의 것을 미제라 해. 그 똥바가지 미국놈 하이바거든."
"미제라고?!"
미국놈이고 하이바고 뭔지 몰라도 우리 할배가 미제라 했다,
미제라 했다.
무너진 담 꼭대기 높이 서서 쇠돌아 쇠돌아 쇠돌이를 불렀지요.
쇠돌이가 저희 집 모퉁이에서 대가리 내밀 때
나는 두 손으로 번쩍 들었다.
똥물 떨어지는 똥바가지 하늘보다 해보다 더 높이 들었다.
"이거 미제다!"
4337. 8. 14 광복 전날 똥바가지 든 아기장수 씀.
<그 때 그 시절 말로 된 원문입니다.>
동무집애 갔지예
뭉개-진 담 너머로 옆집 시돌이한테 갓지예.
마당 팬팬-한 대 네모 커개 거리고
네모 모티-예 쌔 빼물고 한 삠 힘 조- 돌리
시돌이집 내집 째맨-하게 지아 놓고
땅따묵기햇지예.
내 땅빼기넌 납작돌, 시돌이꺼넌 번-쩍이넌 사검패이
손톱어로 시- 분썩 땅빼기 팅가라 검 꺼- 가미
지하고 내하고 대가리 맞대고 빈-땅 따묵기햇지예.
땅따묵기하다가
목말라
샘-물 퍼 뭇-지예.
둘이서 심들개 심들개
샘돌비락애 뚜리박 바털리넌 소리 덜어미
뚜리박 꺼내끼 낑-낑 껄어올리이
한 뚜리박 물 오다 다- 헐러 반 뚜리박도 안 댓지예.
둘이서 내 한 분 지 한 분
지 한 분 내 한 분
똥-거란 뚜리박애 주디-대고 물 뭇-지예.
"너거집 뚜리박언 이-상하네." 카이끼내
"우리꺼는 깡통 뚜리박이다."
"깡통이 먼데?"
"어-런덜이 양찰 뚜리박이라 카기도 카더라."
"양찰언 머꼬?"
"몰라. 그런대 이거 미재라 카더라"
"미재가 먼-대?"
"잴- 좋은 거. 잴- 좋은 거는 다 미재라 카더라"
이카다 다시 마다-퍼질러 앉아 땅따묵기햇지예.
빈 땅 다 없어졋뿌고 인자 내 땅 지땅만 남아서
나무 땅 뺏어묵기 하넌대
내 돌땅빼기넌 손톱어로 시기 팅구루이 이기- 또로록 딴 대 갓뿌고
시돌이 사검패이넌 번쩍 내 땅 확 가로 질러
내 땅 따 묵고 또 따 묵고
지 삠 안애 덜어가는 가-땅꺼지 지 땅어로 만덜어 놓고
손 톡톡 털미
"우리집애 미재 또 있다." 이 카대예.
난 뺏끼- 없어진 내 땅만 보고 있는대,
지 혼자 정지 띠- 가대예
문지방 폴짝 넘어 멀 한 손애 덜고 나오미
움-푹 파인 커다-란 숙가락 하늘꺼정 치덜고서
"이거 우리 아부지 숙가락이다. 미재다!"
힐꿈 처다보다 집애 왓뿌릿지예.
"할배-, 우리집애 미재 없어예?"
할배넌 지개애서 똥장구이 부라 놓고
핫바지 뚤-뚤 걷어 올리고 뚜리박어로 발떵애 물 퍼붓다
"이눔 땅따묵기햇구나. 손 싯거라."
땀 젖언 할배 얼굴 밑애 내 얼굴 디리밀고
"우리집애 미재 없어예?"
"잇지."
"정짜로!" "어대예? 먼대예?"
"통시-똥바가지가 미재다."
"아이다. 재-일 좋은 기 미재라 카던대…."
"미재넌 땅따묵기 잘하는 미국노무 껄 미재라 캐. 거 똥박재기 미국놈 하이바거던."
"미재라꼬?!"
미국놈이고 하이바고 먼지 몰라도 우리 할배가 미재라 캤다,
미재라 캣다.
뭉개진 담꼭대기 높이 서서 시돌아 시돌아 시돌이럴 불럿지예.
시돌이가 저거 집 모리-서 대가리 내밀 때
나넌 두 손어로 번-쩍 덜었다.
똥물 널찌넌 똥바가지 하널보다 해보다 더 높이 덜엇다.
"이거 미재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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