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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6백만 불의 사나이, 초원의 집
<슈퍼맨> <6백만 불의 사나이> <초원의 집> 등은 내가 어릴 적 즐겨보던 외화이다. 아마 지금의 30, 40대 들의 뇌리에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세계 평화를 수호하던 슈퍼맨과 6백만 불의 사나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초원의 집>에 나오는 한 농부는 험난한 서부개척기를 고집스레 견뎌내며 슈퍼맨이나 6백만 불의 사나이 못지않은 영웅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우리의 우상으로 군림하던 슈퍼맨, 6백만 불의 사나이 그외 수많은 영웅들은 공통적으로 미국적 가치관과 세계관의 신봉자들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바쁜 와중에도 전 세계에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 'Made in USA'라는 딱지를 달고 전 세계, 아니 우주를 누비던 미국의 영웅들은 곧 우리들의 영웅이기도 했다. 베트남 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60, 70년대를 관통하는 삶 속에서도 철부지에 불과한 우리들이 누구보다 세계 평화를 낙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이들 슈퍼맨과 6백만불의 사나이에 대한 믿음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머리가 커지고 사회 비판적 시각이 생기면서부터다. 미국의 실체,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에 관한 진실, 남미와 동남아 등지의 친미정권, 자본주의 사회의 웅숭깊은 그림자 등에 대해 하나둘씩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슈퍼맨과 6백만 불의 사나이에 대한 환상도 깨져버렸다. 비로소 국제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계 평화, 정의, 자유는 슈퍼맨이나 6백만불의 사나이가 지켜주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도 슈퍼맨이나 6백만불의 사나이가 미국이 추구하는 영웅의 표상이라면 기꺼이 속는 셈치고 눈감아 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미국의 영웅들은 세계 평화, 정의, 자유를 위해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정의를 훼손하고 자유를 짓밟는 등의 패덕을 일삼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아테네 올림픽에서 양태영 대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줄행랑친 폴 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의 금메달을 가로챈 오노.
내가 알기로는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이 존경하고 추앙하던 영웅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귀로 듣지도, 눈으로 볼 수도 없지만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인간 승리를 이루어낸 헬렌 켈러, 병상의 소년에게 홈런을 쳐주기로 한 약속을 끝내 지켜낸 홈런왕 베이브 루스 그외에도 알게 모르게 선행을 베푼 수없이 많은 의인들, 미국 어린이들이 장래희망 1순위로 꼽는 소방대원들….
이들이야말로 전통적으로 미국이 지향해온 영웅들 아닌가?
차라리 오노와 폴 햄이 떳떳하지 못한 승리를 부끄럽게 여기고, 부당하게 취득한 전리품을 반납했더라면 진정한 영웅의 반열에 올라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황금에 눈이 멀어 스스로 정의와 자유가 배제된 치욕스런 삶을 선택하고 말았다.
과연 오노와 폴 햄이 진정한 영웅인가? 과연 그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나라에게 세계 평화와 질서, 정의, 자유를 맡기는 것이 옳은 걸까?
지금 전 세계가 미국에게 묻고 있다. 언제까지 수치스런 승리와 더러운 전리품에 목을 맬 거냐고. 언제까지 오노와 폴 햄, 린치 일병 같은 거짓 영웅들의 환영에 도취해 있을 거냐고….
그래도 어린 시절 우리가 슈퍼맨과 6백만 불의 사나이에게 끌렸던 것은 비록 그들이 전세계에 미국적 가치를 전파하기 위한 의도로 가공된 허구적 존재일망정 '세계 평화와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그 기백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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