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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의 해외 체류에서 돌아와 오래간 만에 친구들을 만나본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워하는 얼굴의 한편에 그늘이 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잘 돌아왔어. 역시 고국이 좋지?”
라고 하는 말에 왠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들이다. 조그만 표정의 변화에서도 그 친구의 심중에 무엇인가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동안 이곳저곳을 다녀보았다. 몇 년 되지 않는 동안에 고국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가만히 보니 정말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많이 달라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내 나라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마치 또 다른 남의 나라에 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살아갈 일도 막막하지만, 도대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진짜 걱정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친한 친구들의 얼굴에서 수심을 읽는 것이 더 큰 걱정이다. 그들의 쳐진 어께를 보고 있노라면 나마저도 왠지 힘이 빠진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왔기에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 성인기에 만났지만 서로 마음이 맞아서 사귀게 된 친구들이다. 그들과 함께 했기에 한동안 나는 중년에 접어든 삶을 권태롭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힘들어하는 얼굴, 쳐진 어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참 마음이 아픈 일이다.
예전의 즐거웠던 추억이 생각나면서 “이젠 다시는 그 시절이 되돌아 올수 없겠지...”라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지금이 몇 해 전이랑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삶은 항상 고달팠었다. 객관적으로 오늘날의 삶은 전의 삶보다 한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 친구들은 다행히도 아직 모두들 직장은 가지고 있다. 단지 살아가는 조건들이 전보다 힘들어졌을 뿐이다.
“희망이 없어. 이젠 예전과 같은 날은 결코 오지 않을거야.”
이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아니야.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야."
우리가 친구가 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행복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뜻했던 바와는 달리 세상은 더욱 살기가 힘들어졌다. 혹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에게 여유로운 날들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내 기억에는 늘 우리는 가난했었고 그 가난을 이겨보려고 노력했었다. 또 우리의 존엄을 억누르는 권력에 대항해서 싸웠었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을 때에도 우리의 삶이 윤택해 지는 것보다도, 여전히 그늘에 놓여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할 때 진정으로 보람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노력을 함께 해왔던 친구들이 지금 기운이 빠져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흔들어 깨우고 싶다.
“친구들아.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할 일이 많은 시기야. 세상에는 우리가 할 일을 기다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다시 학창시절 같은 열정으로 가득 차서 오늘날의 문제점을 이겨나가자.”
라고.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은 그때처럼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던 시기가 아니야.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리고 우리는 이미 너무 지쳐있어서 살아가기 위한 노력 외에 다른 것을 할 힘이 없어.”
내가 만난 대부분의 친구들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렇게들 이야기 했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지친 친구들에게 다시 속삭여 본다.
“꿈이 없는 시대에 꿈을 잃지 않는 것. 방향이 없는 시대에 방향을 찾으러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색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 이 어려운 시대를 맞아 더 많아진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서 자그만 무엇이라도 해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닐까?”
그러나 친구들에게 나의 조용한 속삭임은 쉽게 가 닿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정말 많이 지친 것 같다. 내가 잠시 외국에서 쉬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계속 ‘현장’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이미 나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그래서 더 많이 지쳐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혼자서 메아리 없는 외침을 계속해본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의 꿈은 더 커지는 법이란다. 꿈을 결코 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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