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규명, 그리고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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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윤(dywoo)등록 2004.09.11 10:42
박근혜 대표가 당대표직을 걸겠다고 하셨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국가보안법을 지켜 내겠다고 하셨다.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도 하셨다. 박 대표, 말씀은 많이 하셨지만 동어반복을 지나치게 구사하셨다. 국가보안법이 왜 자유민주주의의 보루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설명하셨다면 그래도 좀 나을 뻔 했는데 말이다.

다시 박정희다. 언제나 박정희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지금 국가보안법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보다 앞서 과거사 진상규명 역시 박정희에 발목이 잡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9시 뉴스에서 본 어느 보수단체의 여성 회장님은 붉은 립스틱에 어울리지 않는 걸걸한 목소리로 국가보안법 유지와 과거사 진상규명 반대를 부르짖으셨다. 그 분도 어김없이 “그들은 우리 박정희 대통령님을 깎아 내리려고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심지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도 박정희는 빠지는 법이 없다. 최근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그 많은 이슈들 어디에서나 박정희가 등장했다. 혼자만 너무 예민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박정희’란 이름 석자만 들어도 짜증이 나려고 한다. 갈 길이 급한데도 모든 논의가 박정희에서 멈춰 버린 것 같아서다.

그러고 보니 한나라당은 대표를 정말 잘 뽑았다. 국가보안법을 지켜내겠다고 외치는 대표 뒤에서 빙긋이 웃으며 서있을 수 있는 여유도 다 대표를 잘 뽑아놓은 덕분이다. 박근혜 대표가 아니었다면, 거대 야당이 밀어 부치는 과거사 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 폐지에 어떻게 지금처럼 저항할 수 있을까. 과거사 진상규명이든 국가보안법이든 무조건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몰아 세우지는 못했을 것 아닌가. 적지 않은 국민들의 ‘박정희 향수’는 또 얼마나 든든할까.

박정희 이야기는 이제 좀 그만하자. 과거사 진상규명을 집요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 아닌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을 왜 자꾸 끄집어 내는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에 발목이 잡혀 논쟁으로 시간만 보내지 말자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친일파들이 치안유지법으로 독립투사들을 때려 잡았던 것처럼 역시 그 친일파(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제 국민들을 때려 잡았던 것이 하나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아니겠는가.

치안유지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국가보안법은 과거사 진상규명 차원에서 폐지하는게 옳지 않을까.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일제시대를 지나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쳐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식민지 잔재가 아닌가. 과거사 진상규명에 합의했으면 폐지하자. 제발 좀 하자.

박정희가 너무 부풀려졌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의 대표가 되면서 더 심해졌다. 누가 말만 꺼내면 야당 대표를 흠집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돼 버린다. 산업화의 공과 유신독재의 과가 너무나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그래서 결코 결론내리기 쉽지 않은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어야 할 때다.

과거를 들추기가 두려운 사람들의 주장처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이야기를 할 때다. 언제까지 박정희에 발목이 잡혀 있어야 하나. 박정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버리자는 것이다.

생각할 수록 한나라당은 대표를 잘 뽑았다. 앞날을 내다보는 탁월한 안목이었다. 그런데 당시 탄핵 후폭풍으로 지리멸렬할 위기에 처해 있던 당을 구한 사람은 박근혜가 아니라 박정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박근혜가 대한민국 제 1야당의 대표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정치인 박근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분석기사는 본 적이 없다. 그저 ‘싸이질’을 즐긴다는 사실과 장사꾼 정몽준과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사실 외에는 박근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정치인 박근혜는 어떤 인물인지, 어떤 비전과 리더십을 가지고 제 1야당을 이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으니 누가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현 정부의 정체성을 따지고, 그 많았던 인사 청문회에서 자질을 따지던 제 1야당의 대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박 대표의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켜 내겠다’는 말씀이 그리 힘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박 대표의 ‘과거에 국가보안법이 오용된 사례가 좀 있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라는 말씀이 서글프게 들린다. 국가보안법으로 피눈물을 흘리신 분들의 가슴에 못질은 하시지 말아야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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