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을 문신

어느 소설가의 세상 사는 이야기

검토 완료

이명랑(ysreporter)등록 2004.09.20 11:38

일러스트레이트 ⓒ 강우근

엄마들이 뭉쳤다. 슬비 엄마, 연희 엄마, 다훈이 엄마, 그리고 상이의 엄마인 나. 평소 우리 넷은 몰려다닐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이다. 어쩌다 유치원 현관 앞에서 마주쳐도 목례 한번 안 할 정도로 서로 냉랭한 편이다.

그런데 왜 뭉쳤냐?

엄마들이 서로 호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조건 뭉쳐야만 되는 일, 바로 아이들의 생일 파티 때문이었다. 네 아이의 생일이 모두 같은 달에 있기 때문에 네 아이의 엄마인 우리들은 무조건 뭉쳐야 했다. 파티 계획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서로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연희네로 집합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주스보다는 색소가 안 들어간 야쿠르트가 어떠냐, 닭다리보다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팝콘 치킨이 좋지 않겠냐 등등 음식 메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과학적인 계획을 세웠다. 메뉴가 결정되자 우리는 또 한 번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해 함께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고, 또 별로 호감도 느끼지 못하는 엄마들이 드디어 함께 모여 장을 보러 갔다. 후딱후딱 해치워 버리고 빨리 헤어져야지 하는 얼굴로 우리는 마트 안을 바쁘게 오갔다. 연희 엄마가 수첩에 메모해 놓은 메뉴를 부르면 나는 캐리어의 방향을 틀었고, 슬비 엄마는 진열대에서 식품들을 집어 담았다. 신속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로 재빠른 장보기였다.

물건값을 치르고 나와 전체 물건값을 4등분한 뒤에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그럼, 생일 파티 하는 날 아침 8시까지 저희 집으로 오세요.”

연희 엄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각자의 집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꿍하고 있던 다훈이 엄마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점심이라도 먹고 헤어져요. 이렇게 모였는데….”

다훈이 엄마의 말에 아무도 대꾸를 안 했다. 그러자 다훈이 엄마는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뒷말을 이었다.

“점심값은 제가 낼 게요.”

그렇다면 뭐…. 그래서 우리는 또 한번 뭉쳤다.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가 자장면과 돈가스 등을 시켜서 사이좋게 먹기 시작했다. 역시 배가 부르고 볼 일이었다. 어색하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변했고, 급기야는 각자의 가정생활에 대해서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다훈이 엄마가 매 맞는 아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더 열기를 띠어 갔다.

어쩌다 맞고 살게 되었냐. 처음 맞았을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여자의 한평생이 결정된다. 구타도 습관이라고 하더라.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남편들 중에는 아내만 보면 그냥 화가 나서 때린다는 경우도 많다던데 다훈이 아빠도 그런 경우냐. 패면 다훈이 엄마만 패냐, 아이들도 패냐. 주먹으로만 패는 거냐, 재떨이도 던지고 발길질도 해대는 거냐.

엄마들의 질문공세는 끝없이 이어졌다.

“원래 다훈이 위로 누나가 있을 뻔했는데 남편이 계단에서 밀어서 유산했어요.”

세상에! 임신한 아내를 계단에서 밀어? 그 순간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헤어졌다. 그날 이후로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공유할 것이 하나도 없던 엄마들끼리도 이번만큼은 이견 없이 곧장 의기투합했다.

놀이터에서 놀 때 보면 꼭 다훈이가 애들을 패더라.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적이라는 말, 그거 정말 틀린 말 아니다. 근묵자흑이라고 다훈이 같은 폭력적인 애랑 어울리다 멀쩡한 내 자식도 그렇게 되면 어쩌냐. 잔인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남의 자식보다는 내 자식이 귀한 것이 현실인데 다훈이와는 애당초 못 놀게 하는 편이 상책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부모에게 매 맞고 자란 아이들의 모임을 우연히 발견했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매를 맞고 자란 그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렸다. 그들의 정신과 몸에는 한결같이 같은 무늬의 문신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적인 부모가 된다.”

그들의 정신과 몸에 깊이 박혀 있는 이 문신은 그들의 삶을 그늘지게 만들고, 그들은 그 그늘 속에서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 폭력성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불안해한다. 누가 그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새겼는가? 폭력의 희생자인 그들을 누가 폭력의 가해자로 만들고 있는가?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