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음반 - 앨범 읽기에 관한 단상

노래 듣기와 음반 읽기

검토 완료

박진서(jipark2001)등록 2004.09.30 10:37
꽤 오래 전 부터 봐 왔던 광고였다.
TV에서도 본거 같고...인터넷에서도 자주 본 광고였다.
여느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 같지 않게, 스타들이 등장 했다.

'당신이 산 영화표가 '올드보이'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음악 CD가 '보아'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산 정품이 '문화 산업을 키웁니다.'
문화에 투자하세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한 동안 그냥 스치듯 지나간 광고였는데,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나 같이 삐딱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보면, 마치 우리들이 정품을 사지 않아서..
그냥 몇 푼 아낄려고, 인터넷에서 다운 받거나 그냥 길거리에서 해적판을 사서
문화 산업이 침체 되었으니 앞으로 무조건 정품을 사라는,
소비자들이 제대로 해야만 우리 문화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성 광고같아 영 기분이 찜찜하다.

그렇다. 당연히 정품을 사야지…
하지만,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자. 정품과 해적판이 별 차이가 없다면, 그리고 정품을 사봤자 별로 좋은 것도 느낄 수 없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 왜 정품을 사야할지 나 자신 부터 의문이 든다.
단지 법이 그러하니까, 그냥 정품이 더 좋으니까, 복사본과 해적판은 나쁘니까..이렇게 해야한다 라는 무언의 압력이 지금의 시대에 무슨 효과가 있을까?

솔직히 영화 산업의 경우 어느정도 영화관에서 그것도 개봉관에서 영화를 보는
문화가 정착이 되어 영화사의 적자가 심각하다느니, 한국 영화 문제 있다느니
하는 얘기가 거의 없지만 음반 산업의 경우는 영화 산업과 달리 문제의 본질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서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가수들의 인기는
한창 치솟고 있다는 뉴스는 자주 접하는데, 가수의 얼굴이며 자존심과 같은 음반은 왜 팔리지 않는가?

난 여기서 가수들의 음반 - 앨범 읽기의 문화가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아니 남아 있기는 한지..
그리고, 노래의 생산 담당자인 가수들과 음반사가 무엇을 소비자에게 주요하게 - 문화 컨텐츠 (contents) 를 생산해 보여 줄려고 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뭔지 묻고 싶다.

누군가가 소설 '태백산맥'을 읽을 때 '소화'만 나오는 부분과 '하대치'만 나오는 부분이든 아니면 '염상진' 염상구' 형제의 얘기만 읽었을 때 과연 그가
소설 '태백산맥'을 읽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영화'올드보이'를 꾸벅 꾸벅 졸다가 마지막 반전 부분만 제대로
보고 나왔다면, 과연 그가 그 영화를 제대로 보고 나왔다고 얘기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의 몇 몇 인기있는 가수나 혹은 음반 제작자들은 우리들에게
태백산맥의 3권과 10권이 가장 재미있으니 그것만 열심히 읽으라고 강요하는
거 같고, 동시에 그 영화의 기막힌 반전 부분이 이러하니 귀찮게 두 시간씩
볼 필요 없이 편집된 하이라이트만 보고 그 영화를 봤다고 때를 쓰라고 숨어서
충동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 하나의 음반을 만들 때 '그래! 이 노래만 쎄게 한 번 띄어보자'라고 작정하고,방송에서 공연장에서 어디에 가든 그 노래만 부르는 현실에서 누가 그 가수의 앨범 전체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음반 산업이 성공하려면 그 성공의 발판도 노래 듣기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된다. 즉, 음반 하나를 완성한 후 그 앨범 속에 담겨져 있는 타이틀 곡
하나를 위해 곁가지로 붙어있는 나머지 노래들을 하나의 희생물로 전락 시키는게 아니라, 그 나머지 노래들도 그 앨범 전체를 튼튼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버팀목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우리시대에 정착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첫 곡의 시작이 그 음반의 마지막 곡에서 하나의 흐름을 타고 곱게 안착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면 노래 하나만을 위한 가수가 아닌 음반 창작자로서의 가수로 기억되는 그날이 우리의 노래 문화가 새롭게 시작되는 싯점이 되지 않을까?

그 음반 -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이 그 속에 담아 놓은 노래 하나 하나는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가수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할 때 많이 묻는 질문 하나를 생각 해보자.
'당신이 가장 아끼는 노래가 무엇인지요?' 대체로 그들의 대답은 팬들이 기억하는 히트곡과는 많이 멀어져 있다.
어느 구석에 숨겨져 있는 오래된 음반속에 감춰져 있는 노래가 그 중의 하나라고 그들은 대답한다.

이제부터라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자.
그리고, '먼지덮힌 오랜 앨범에서 찾은 명곡'에 대한 기쁨과 그 노래를 같이
부르는 기쁨을 가수나 음반 제작자가 찾아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모습을
지금이라도 보고 싶다.

이제 더 이상 하나의 히트곡만 띄우면 된다는 식의 막연한 복권식 음반 제작을 포기하고 첫번 째 곡 부터 그 음반의 마지막 노래까지 하나의 흐름을 그 앨범 전체에 담아 음반의 문화적 상품화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라고 얘기 하고 싶다.

광고로 시작했으니, 광고로 하나의 예를 들며 얘기를 마무리 해보자.
'미류나무 따라 큰 길 따라 하늘에 올라가는 구름따라~~'로 시작되는 양희은의 '내 어린 날의 학교'가 내게는 TV광고를 보는 즐거움을 한층 더 해주었다.
아마도 어느 회사의 기업이미지 광고로 기억된다.
(물론 그 노래의 광고 효과는 - 내 개인적으로 -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밝힐 순 없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회사광고인지 난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번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그 광고를 그렇게 곱게 살린 그 노래의 출처가 어디인지? 만일 그 노래를 듣고
싶어 그 노래가 담긴 앨범을 구할려면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예민한 독자라면 인터넷을 확인 해 보겠지만…..)
요즘은 거의 찾기가 힘든 레코드 가게에서 양희은의 독집 앨범을 아무리 열심히 뒤져봐도 우린 그 유명한(?) 노래를 찾을 수 없다.
불행히도 소비자들이 그 문화 컨텐츠(contents)의 출처가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오지로 낙향한 천하의 불량티처'를 부제로 담은 '선생 김봉두'의 O.S.T 앨범 두 번째 자리에 놓여져 있다.
21개의 트랙에 담겨져 있는 그 앨범은 그 트랙 전체가 하나로 모여 내가 혹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어릴적 느껴 왔던 아른한 분위기와 시간들을 소리로 그리고
노래로 표현한 우리시대의 소중한 음반 중의 하나이다.
양희은 작사, 최용락 작곡의 ' 내 어린 날의 학교'의 진정한 감수성과 따뜻함을 우린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학생 한명이 선생님의 무등에 올라타 얼굴을 짓누르고 있는 그 앨범의 사진에서
그리고 하나 하나 소중하기 그지없는 영화 속의 대사와 음의 선율들을 1시간 여
동안 들을 수 있는 참을성을 통해 우린 소중한 앨범 하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2003년 3월에 M&F Albums에서 제작한 이 음반은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절판이 되었다. 단지, 광고 덕에 늘리 알려진 그 노래만 혼자 쓸쓸히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면 각자의 MP3 속에서 홀로 소리를 내고 있다.
이 음반의 Music Director인 최용락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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