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고함과 침묵사이

9월의 마지막날 심야 지하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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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호(soohoya)등록 2004.10.01 08:30
9월의 마지막날 11:36, 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한강진역쯤인가에서 문이 열렸다.
눈에 띄는 분홍색 티을 입은 아저씨 한분이 탔다.
이내 그는 지하철 가는 방향쪽으로 힘겹게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내가 앉은 쪽 대각선 쪽에 자리를 잡는가 싶다가
지지봉을 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아저씨의 흥글방망이놀기에
사람들이 기겁하며 자리를 피했다.
아저씨는 시종일관 불특정 다수에게 욕설을 해댔다.

나는 천천히 보고있던 신문을 보다 높이 들어
기사에 집중하는 척 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말을 되뇌이면서 씩씩거렸다.
신문에서는 정치권이 성난 민심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는 기사가
이제 아예 지하철 안을 오고가는 아저씨와 오버랩되었다.

그러다 한 칼럼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글을 보았다.
유토피아는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No Where'라고 하는데
'W'를 앞으로 당기면 'Now Here',
즉 여기 이곳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
나는 유토피아를 제대로 경험한 셈이다.
신문을 더욱 높여 내 몸을 다 감춰가면서 말이다.
실은 낮에 헌혈해서 신문 들 힘도 없었지만...

목적지에 내리는 순간에도
고래고래 날뛰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잦아들 줄 몰랐지만,
지하철 안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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