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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출근투쟁들 해야 할 터인데 잠 안 자고 대책회의들을 하셨을까요.. 참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력하고 바보같아서... 새로 단장되는 '데일리 세음여'에서 펼쳐놓고 싶은게 많았고 초대하고 싶은 사람도 많았는데 아쉽습니다. 거의 다 차려놓았는데, 먹을 사람이 없네요. 분식집에서 한식집으로 업그레이드하려고 하는데 맛있는 분식 잘 만드는 주방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사람'에 대한 가치가 새로워질 날이 있겠죠...”
불교방송 BBS FM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밤 자정에서 새벽 2시까지 방송되는 ‘세계음악여행’의 진행자의 갑작스런 교체설과 관련, 청취자들이 긴급대책채팅을 가졌던 몇 시간 후인 오늘(4일) 새벽 다음까페 <세계음악여행> 게시판에 진행자 강민석씨가 올려놓은 글 일부입니다.
불교방송 게시판에는 지금, 불교방송국의 일방적인 개편(진행자 교체)과 관련, 해당 방송 청취자들의 문의와 항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중요하고 급박한 사안이 얼마나 많은데, 웬 마이너 방송국, 그것도 심야방송 DJ 교체 건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할 일없어 보이시나요? 할 일없어 보이는 사람 얘기를 좀 들어봐주실랍니까.
제가 이 방송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6월 어느 잠 못 들던 밤이었습니다. 주파수를 돌리다가 흔히 듣기 힘든 중동쪽 음악에 발목을 잡혔고, 이후 멘트 하나 없이 이어지던 세 곡의 음악에서 완전히 필을 받아버린 저는 진행자가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음악이 끝나고 나지막히 이어지던 목소리, 좀 별난 음색과 분위기의 그 진행자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검색을 하고, 해당 방송 게시판을 찾기에 이르렀고, 그렇게 벼락 맞은 느낌으로 시작된 만남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오늘까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려고 마련했던 디지털 녹음기에다 거의 매주 녹음을 하며 방송을 들었습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이상한 손님들 때문에 곧잘 울었던 집동네 대형마트 캐셔였을 때, 인적 끊긴 밤길을 홀로 걸어 퇴근하던 1년전 그때나 심야좌석을 1시간씩 타고 자정 쯤 귀가하는 요즘이나, 주말밤이면 저는 이 방송을 듣습니다. 방송은 두통약 같기도 하고, 따뜻한 손 같기도 합니다. 주말밤에 방송 듣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고, 따로 연애할 생각도 안 들 만큼, 제게는 특별한 방송입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닌지, 방송 게시판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역시 거의 같은 증세를 고백해오곤 했습니다. 주로 문화, 환경, 여행, 모진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남기, 숨막히고 화나는 현실에서 황폐해지지 말기...이런 것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순한 마음들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연을 맺을 수 있었던 건, 거의 전적으로 진행자의 힘이라는 걸,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압니다.
제가 듣기에 우리 나라 라디오 방송들은 몇 몇 방송을 빼고는 거의 전부가, 소비적인 청춘들의 쓸 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농담 따먹기나, 현실을 버텨내는 데는 약도, 힘도 되질 않는 살찐 감상 아니면 팔자 늘어진 낭만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만난 불교방송의 <세계음악여행> 진행자는, 선곡과 원고 작성으로 인해 나날이 눈에 띄게 머리숱이 줄어가는, 우리들의 시인이기도 한 그는, 늘 낮은 목소리로, 이 땅의 ‘호박꽃과 달팽이’들의 연약함과 결핍과 슬픔을 어루만져주는‘미스터 디제이’였습니다.
방송을 듣게 된 지 1달쯤 되었을 때, 저는 그를 밤귀신 붙은 모든 이의 대부, 앓는 마음의 선험자, 모든 헤매도는 영혼의 멘토, 혹은 과묵하나 다감한 위로자…라 정의했었지요. 80년대 ‘노찾사’ 출신으로 방송국과 출판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것, 이름은 날렸으나 흥행엔 참패해 만든 이들은 쫄딱 망한 ‘마리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는 것, 국문과 출신이라는 것, 진행자에 대해 하나 둘씩 알게 되기 전이나, 알고 난 후나 제게 그는 우주를 떠도는 별을 보는 사람일 뿐입니다.
엔지오의 발길도 닿지 않는 곳, 드러나지 않은 고통들과 남초 호수 미생물들의 안위에 관심을 갖는 음악방송 디제이. 과묵한 편이지만 할 말이 있으면 비 맞은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알아들으면 좋고 못 알아들어도 괜찮다는 듯…언제나 낮게 이야기하는 이상한 진행자. 가끔 웃는 시늉도 하고 재빨리 고백도 하고 장난기도 있는데 주로 썰렁해서, 그 썰렁함조차 애달픈 구석이 있는 사람...
그런 진행자에 대해 정을 담은 사연들이, 청취자 게시판에 간간히 올려집니다. 일일 평균 등록수가 많아봐야 10개가 되지 않고. 최대 조회수도 50-60회가 될까 말까한 ‘시골 구멍가게’ 같은 방송 게시판, 그래도 그곳에선 숱한 ‘호박꽃과 달팽이’들이, 대한민국 마이너리티들이, 마음을 풀어놓고, 숨을 고릅니다. 숨쉴 구멍을 찾고, 잠시 쉬어가는 나무 그늘을 얻곤 합니다. 때로 하소연하고, 때로 툴툴대고, 때론 눈물 흘리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곤 합니다.
피그미 사람들이 물장구치는 소리, 먼 바다 식인고래 울음소리, 갈대밭을 지나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방송을 어떻게 잊을까요? 고딕 메탈과 철지난 샹송이 하룻밤에 흘러나오고, 사막의 모래바람을 닮은, 비밀을 간직한 목소리를 만나는 시간.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들의 고풍스러운 낭만으로 버석거리는 가슴을 적셔주던 방송...수도사들이 부른 비틀즈 노래와 티벳 스님의 자장가를 골고루 들려주던 그 디제이가 오는 10월 11일 가을 개편과 함께 교체된다는 것입니다.
개편 때마다 매일방송이 되기를 기원해온 청취자들은 10월 11일 개편으로‘세계음악여행’이 매일방송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진행자는 다음 까페 게시판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등 개편 준비로 한참 정신이 없었구요. 그런데 개편을 열흘 앞둔 10월 1일 녹음방송을 마치고 진행자가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난데없는 해고 통고를 받으면서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아무리 프리랜서 DJ라도, 아무리 권위를 인정받는 저명한 거물인사가 아니라도 이런 일방적이고 무례한 경우가 어디 있을까요. 청취자들이 분노하는 까닭입니다.
다음까페 <세계음악여행> 회원들의 긴급 대책 회의가 있었던 월요일 새벽, 진행자 강민석씨가 올린 글에는 “결과를 전달받은 후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더 노력해서 잘 해보겠다는 의사를 방송국에 다시 가서 밝혔고, 한 번 결정된 내용을 번복할 수는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의 방송에 진 빚이 많은 청취자로서 저는 화가 나는 걸 떠나 서글픈 기분이 듭니다.
강민석씨가 진행하는 <세계음악여행>은 2002년 10월 17일에도 단 한 마디의 사전 안내도 없이 폐지된 일이 있습니다. 현재 70여명쯤 되는 회원이 가입해 있는 다음까페 <세계음악여행>가 만들어진 날이기도 합니다. 6개월 이후인 2003년 4월에 <세계음악여행>이 부활한 것은, 강민석씨와 그의 방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방송 메인 청취자 의견 게시판 <세계음악여행> 게시판, 다음까페 <세음여>게시판에는 <세계음악여행>의 진행자, 세음여지기를 어째서 누구도 대신할 수가 없는지, 그의 방송이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되어주었는지를 호소하는 청취자들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늘 이 세상이 고통과 파멸의 늪에 빠질 것을 두려워해왔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기술은 언제나 정복자들과 세상을 구하려는 자들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무수히 많은 영웅과 선구자들이 탄생하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요. 21세기가 되었고, 첨단과학의 시대는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깊어지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오늘의 진정한 영웅은 누구일까요. 정치가, 학자, 경제인, 종교지도자, 심지어 운동선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존재들. 그런 명함을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이 배출되어 나오지만 어느 누구도 비틀거리는 세상을 구할 것 같지 않습니다.
지나간 흔적도 없이, 그 누구에게도 영웅이 되려 하지 않으면서 늘 바람처럼 죽은 땅을 고독하게 일구어 씨를 뿌리거나 누군가의 머릿속에 평화와 사랑의 이야기를 넣어주거나 누군가의 손에 책을 들려주는 사람....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2004년 9월 26일 일요일 자정 <세계음악여행>을 여는 글이었습니다. 청취자들에게는 그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진행자 교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송국 사람들은 그 사실에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 걸까요.
소수의 사람들이, 소수라 힘없고 쉽게 무시당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좋아하는 게 있고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항의를 합니다. 그런데 누굴 대상으로 따져야 하는지, 듣고 싶은 방송을 듣고 싶은 청취자의 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다만 멀쩡한 진행자가 한창 개편 준비를 하다 말고, 해고 통고를 받아야 하는 이유. 개편에 관한 안내 고지 하나 없이, 폐지도 아니고 확대 편성이 되는 상황에서 개편을 코앞에 두고 가장 공이 큰 진행자(면서 선곡도 하고 작가 역할도 해온)를 난데없이 교체한다는 이유를, 청취자들은 구체적으로 알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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