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교육 개혁안은 <평등주의>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 <조선>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적 자세는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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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aristotal)등록 2004.10.21 17:05
속담에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가 제대로 이 속담에 맞는 일을 또 저지르고 있다. 원체 타고난 습성이 그러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터이지만, 제 눈 하나 간수 못하는 ‘망둥이’이니 어쩔 것인가? 늘 제 눈에 맞는 색깔의 안경으로만 세상을 보니,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

어제 서울대 국감에서 정운찬 총장이 소신임을 밝히면서 고교 평준화의 틀이 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게다가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학본고사 부활은 당연한 일이고, 고교등급제 문제는 차치(且置)하고서라도 기여 입학제까지도 올바른 교육 방향이라고 말했다 한다.

이러한 자신의 소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의원들의 의식변화를 요청했다고도 한다. 그러자 요즘말로 코드가 맞는 조선이 여우 같이 나서 <세종로 빗자루>라도 되는 듯 덩달아 날뛰며 좋아하고 있다.

18일에 영국에서 중등교육 개혁안 발표되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내친 김에 "英 중등교육 60년 만에 최대혁신 <평등주의 포기>”라는 기사로 조선닷컴의 머릿면을 장식했다. 지나친 호들갑이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좀 배운 사람은 그 기사 내용이 뭔지 제대로 읽을 줄 안다. 그 기사를 정확히 보려면 http://news.bbc.co.uk/1/hi/education/3751644.stm 에 가보기 권한다.

조선이 그 개혁안에서 보고자 하는 시각은 “수준별 교육은 어떤 학생이 입학한 지 몇 년이 지났느냐와 상관없이 자기 능력에 맞는 과정을 선택해 공부하는 것이다. 이 개혁안은 지난 60년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교육은 ‘평등주의’ 때문에 학생이 능력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해 대학과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점이다. 이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꼴두기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의 개혁안의 골자 좀 살펴보자. 만일 조선의 기사대로 ‘평등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가히 ‘혁신’을 넘어 ‘혁명적’이다. 미안하지만, 그 개혁안 어디에도 ‘평등주의’란 언급은 한군데도 없다. 그 개혁안을 제안하고 발표한 Mike Tomlinson은 ‘진전(Evolution)’이지 ‘혁명이 아니(not revolution)’라고 말한다. 어차피 영국의 교육제도는 평등이기보다는 선별제도에 가깝다. 이미 12세에 대학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니 말이다.

이번 개혁이 지난 반세기 동안에 있어온 어느 시험개혁보다도 획기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지속적으로 교육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곳은 12-16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A 레벨 시스템의 교육 방식과 내용이었다.

최근에 영국에서 교육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세 가지 관점에서 제기되었다. 첫째는 현재의 직업세계에서 필요한 능력을 갖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는 젊은 학생들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대학에서 제기한 불만이다. 대학 측으로 보자면 현재의 교육 체제로는 점증하는 학생들의 학력 증가로 인하여 - 그것이 내신 부풀리기이든 아니든 간에 - 뛰어난 학생과 아주 뛰어난 학생을 판별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지나치게 시험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영국은 현재 시험이 너무 많아 중등학교마다 매년 평균 15만파운드(약 3억원)씩 시험 관리 비용이 들 정도이니 그런 불만도 나올 만하다. 그러니 시험을 간단히 하자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교육 개혁안이 마련되었다는 것이고, 이 개혁이 학교, 시민, 기업체에서 받아들여지면 2007년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사실 영국에서의 시험개혁은 187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의무교육 연한의 확대와 교육내용의 변화, O 레벨, A레벨로의 교육체제의 변화, 1988년에 O-levels과 CSEs를 GCSE(Th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로 대체하는 교육 개혁으로 끝없이 지속되어 왔다. 이는 교육문제가 국가의 장래에 얼마나 중요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교육문제에 대한 해법찾기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 Mike Tomlinson(the former inspector of schools in England)가 제안한 교육 개혁안은 14세에서 19세 동안에 이루어지는 기존의 GCSEs와 A-levels, 직업 교육을 대체하는 네 부분의 새로운 자격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그 개혁안의 요지는 높은 학력 단계에서는 이른바 대학이 요구하는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같은 A라도 차별을 둬서 A++를 도입하고, 교사의 평가에 의해 자신의 실력에 적합한 레벨에서 공부하게 하고, 기업에서 요구하는 직업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읽고 쓰는 능력(영어교육 즉 국어교육을 강화하고), 기본적 계산력(수학교육), 정보 통신교육을 강화하자는 것(literacy, maths an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이 교육 개혁안의 골자이다.

이것이 무슨 <교육 평등주의>를 포기하는 개혁안이란 말인가?

실상, 영국의 기업가들은 이런 교육 개혁을 가지고 영어, 수학 교육 실력 수준이 오를까 걱정이란다. 반응이 신통치 않다는 말이다. 학생들의 반응도 그렇다고 한다. 오히려 학생입장에서는 수업에 대한 스트레스, 공부에 대한 압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 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어떤 시험제도이든지 다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시험제도의 개선이 뭐 그리 혁신적이냐고 빗대서 말하기도 한다. 어떤 제도이든 문제는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불만은 더 높은 수준의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학업에 신경을 써야만 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수험생들의 변별력을 요구하는 입장인 대학으로서는 당연 이번 개혁안에 찬성을 표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의 대학들이 학생의 숨은 능력을 찾아내는 데 게을 리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기존 교육체제를 유지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이제 곧 사회에 나가 일해야 할 학생들에게 적합한 <직업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개혁안의 골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BBC도 학교 교육을 벗어나 이발, 미용 등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또 그들의 일에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의견을 인터뷰해서 올려주고 있다.

영국 산업연합회(CBI)는 세 회사 중의 한 회사가 취업자들의 국어 구사 능력과 기본적 셈 기술을 가르쳐야 하는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개선할 교육 방안을 내놓을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졸업해서 직장을 구하려는 것은 ‘국가의 수치’라고 까지 말했다 한다.

우리나라가 현실적으로 당면한 교육 개혁은 전적으로 <대학입시제도>와 <고교평준화 폐지>에 매달려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니 대학에 들어와도 대학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교육체제를 고칠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도대체 하지 않는다.

여태껏 예전의 경기고등학교 향수에 젖어 고교평준화 폐지에 목매달고, 교육받을 평등한 기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좌파 이데올로기 시각에서 공격이나 해대는 <조선일보>는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집단이다. 이 따위 문제로 시간낭비해가면서 씨부렁대는 조선같은 신문이 있으니, 큰일이다. 본말이 전도됐다는 말이다.

무엇을 교육하고, 어떻게 교육하고, 직업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대학에서 어떤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지, 대학들 간에 공정적 경쟁이 이루어지는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대학 교수들 간의 학문적 경쟁을 유도할 방향은 무엇인지....하는 등등의 문제가 교육 개혁의 중요 현안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상 한국의 대학의 숫자는 너무 많다. 줄여야 한다. 대학생의 수도 너무 많다. 선진국과 같이 30%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능에 맞는 직업교육을 시켜 사회에 진출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그러나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런 교육개혁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학벌주의를 약화시킬 것이지 고민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요청된다.

요컨대 고등학교에서 직업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하는 보다 중요한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평등주의는 좌파이라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비난을 일삼는 것으로 마스터베이션하는 언론이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신문일 수 있는가?

툭하면 외국의 특정한 사례를 침소봉대해서 노무현 정권의 기본적 틀을 깨서 기득권 가진 자들의 이익을 보존하려는 물타기 수법을 저지르는 조선의 작태야 말로 비난의 대상이고,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들의 전통적 수법이다.

영국의 이번 개혁안에서 보듯이 교육 개혁은 어렵다. 교육 개혁은 지속적으로 요청되는 작업인 동시에 전국민의 인내와 양보, 가진 자와 없는 자간의 상호 의사소통, 교육 주체와 그 당사자들, 기업과 대학, 종국에는 정책 입안자들이 함께 모여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서로의 이해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양보의 정신을 기초로 해야 겨우 이루어질지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새로운 교육 개혁안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교육에 관련된 여러 주체들이 모여 토론하는 마당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익 집단의 이데올로기 편향적 자세를 가진 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교육 개혁안이 준비되어서는 안 된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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