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관제언론을 닮아가는가?

80년대 관제언론과 민주노동당 헌재판결 논평의 공통점.

검토 완료

신승렬(phlip)등록 2004.10.22 15:09
80년대를 지나온 독자들은 기억하겠지만 이 시절 신문과 방송은 정도는 달랐지만 예외없이 정권의 보도지침에 따라 기사를 쓰고 검열받는 관제언론이었습니다.

지금 당시의 관제언론들이 '언론통제' 운운하지만 당시의 언론환경은 지금과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철저한 통제 속에 있었습니다. 기사의 논조, 내용, 크기, 배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매일매일 내려오는 문화공보부의 보도지침에 의해 신문이 만들어졌으니까요.

이 당시 언론, 그 중에서도 신문들은 이러한 통제 속에서 예외없이 비슷한 모습들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제 민주노동당의 행정수도 헌재판결에 대한 논평은 그 시절 신문들이 보여준 모습들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들이 겹쳐지는 것일까요.

1. 양비론을 전개한다

예, 다들 알고 계시듯이 당시 신문들 중 정부의 영향력하에 있지 않았던 이른바 '자유언론'들은 양비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매일 꺼내들었습니다.

"정부당국이나 여당에도 문제가 있지만 야당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지나친 공권력에 대한 항의는 공감되는 바가 있으나 이를 폭력적이고 불법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류였죠. 이는 한편으로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또 한편으로 어용언론으로 독자들에게 욕먹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었죠.

이러한 양비론은 사안의 시시비비를 깊이있게 판단하지 않고 양쪽 이해 당사자보다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편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어제 민노당의 논평 한 부분을 옮겨 보겠습니다.

1. 민주노동당은 양당의 책임을 묻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법안을 합의 통과시키고 수도이전 문제를 당리당략 차원으로 일관해온 점에 대해 국민앞에 사과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도 예외없이 위의 양비론의 장점들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기까지는 기사 제목만 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당연히 예상했던 이야기일 겁니다. 그럼 두번째로 넘어가 볼까요?

2. 행간, 혹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진실을 담는다

조선일보 김대중 이사기자가 당시 "우리는 거리의 편집자에게 졌다"는 유명한 칼럼에서 고백했듯이 기자들은 검열이 미처 보지 못하는 아주 작은 기사, 혹은 기사의 행간에 진실들을 담아내곤 했습니다. 독자들이 그 내면의 진실을 읽어주리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죠.

거리의 편집자가 누구냐구요? 그 작은 기사들을 크게 가판대에 써붙이며 진실을 알렸던 가판 판매원들을 의미합니다. 저 역시 거리의 편집자가 되어 어제 민주노동당 논평의 숨겨진 진실을 읽어보겠습니다.

1. 민주노동당은 지금까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졸속적으로 수도이전을 추진해온 노무현 정부에 대해 지속적인 경고와 우려를 표명해왔다.

1. 민주노동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가 수도권과밀인구분산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게 추진해온 수도이전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를 바란다.


자, 이것이 숨겨진 진실입니다. 즉 민주노동당은 언뜻 보기에 위에서 보았듯 양비론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여당과 정부가 더 나쁘다는 진실을 여기에 감춰두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한나라당은 졸속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잘못은 있으나 후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취지에 맞지 않게"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정부, 여당은 계속 이를 졸속으로 추진해 왔기 때문이죠.

이렇게 전체를 읽고 분석해야만 어느 쪽이 더 나쁜지 알 수 있게 행간의 의미를 숨겨둔 논평을 만드느라 고심했을 지도부의 고민이 느껴지는 논평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관제언론과 어제 논평의 공통점 하나를 지적해 볼까요?

3. 핵심은 놓치거나 외면하고 부수적인 것만 건드린다

당시 언론은 예외없이 정권-대통령,안기부, 군 등 - 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그들의 하수인 격이던 정부부처나 여당 일부만을 비판하는데 그쳤습니다.

정권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고, 당시 막강했던 정권은 설사 언론이 공격할 의지가 있다고 해도 비판이 가능하지 못하도록 자신들에 대한 (불리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어제의 논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마지막에

1.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을 근거로 한 위헌결정이 극히 이례적이고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바이다.

이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으나 누가 봐도 어제의 논평의 주요 타겟은 양 정당과 노무현 정권이지 헌법재판소가 아닙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납득하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이를 계기로 노정부가 사업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아도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제 판결의 진정한 역사적 맥락, 영향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판결은 앞으로 민주노동당이 집권하거나 여당이 되더라도, 그들의 정책이 기존 보수층의 정서에 어긋날 경우 헌법재판소에서 자의적인 '관습헌법'론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는 엄청난 판결입니다.

지금 여당보다도 훨씬 진보적인 민주노동당이 집권해 정책을 만들거나 입법을 할 경우 헌재는 현재보다 훨씬 더 강경하게 이를 막고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국민의 뜻에 의해 구성된 입법, 행정부의 정책을 대표성이 없는 헌재가 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문제를 지엽적인 것으로 지적했을 뿐입니다. 이들은 강제적으로 통제당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큰 문제를 짚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예전 관제언론보다 더 문제있는 논평을 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공식적인 반론을 기대합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