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상실, 전쟁이 되어버린 시위와 진압

나는 '공권력'이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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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원(suwona)등록 2004.11.14 09:22

시위와 진압에서 폭력이 절정에 다다르면 모두 그 목적을 상실하고 만다. ⓒ 최인수


노동자들은 오후에 시작될 집회를 기다리며 대열을 정비한다.

2004년 8월 17일. 포항 포스코 정문.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의 37일간 이어온 집회.

우리는 더운 여름 두꺼운 진압복을 입고 포스코 입구에 서 있다.

졸음이 몰려온다.
어제는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서야 짐을 풀었다.
도로에서 노동자들과 잠시 대치하다가 왔던 길이다.
아무일 없이 끝났다. 다행이었다.

햇볕이 뜨겁다. 땀이 눈 속을 파고든다.
따갑다. 내가 왜 여기 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1선에 배치된 중대와 노동자들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우리는 좀 뒤에 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후 앞쪽이 조용해졌다. 노동자들은 앉기 시작했다.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밥먹을 시간이다.


그때.


"공격 앞으로!"

도발적인 진압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노동자들을 손에 잡히는대로 짓밟고 방패로 찍었다.

쓰러진 노동자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무전병이 대원들을 말리며 앞으로 전진해라고 소리쳤다.

방송차량을 먼저 부수고 빼앗았다.
방패로 유리를 깨고 사람을 끌어냈다.

놀란 노동자들이 몸을 피했다.
이긴듯 했다. 끝난 듯 했다.


그런데.


성난 노동자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벽돌을 던지고 쇠뭉치를 날렸다.
하이바 철망이 부숴지고 돌 조각이 튀었다.

동료들이 쓰러졌다. 도로에 피가 고였다.
짧은 비명에 다리가 부러지고,
이마가 터져나갔다. 눈 앞에 파편이 날아왔다.
방패가 쪼개지고 그 사이로 쇠창이 배를 쑤셨다.

우린 불리했다. 무모했다.

처음부터 건설노동자와 싸움이 되지 않았다.
서울 중대는 매일 이러겠지만, 우린 경험도 없었다.


겁을 먹은 중대는 후퇴했다.

"씨바! 빨리 빠져!"

다급한 뒷걸음질에 동료들이 넘어졌다.
넘어진 동료는 보호장구가 벗겨진 채 구타당했다.

더 많이 다치고 깨졌다.

무전에서 계속 구급차를 요청했다.

우린 밀렸다. 더 피할 곳도 없었다.


궁지에 몰렸을 때, 휴전에 들어간 듯했다.
노동자들은 예정된 집회를 진행했다.


우리는 그 틈에 그제서야 점심을 먹었다.

나와 한솥밥 먹는 동료들이 병원에 실려갔다.
우리가 밟고 찍은 노동자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복잡하다.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빨리 먹어야한다. 언제 또 싸울지 모르니까.


집회장소에서 소리타래의 공연이 들렸다.
격렬했던 분위기도 수그러지는 듯 했다.


소리타래가 외쳤다. "앞으로 갑시다!"



그들은 다시왔다.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눈에 보이는 큰 돌을 움켜쥔다.

"절대 물러서지마! 뒤로 빠지는 놈은 내가 죽인다!"



시위와 진압에서 폭력이 절정에 다다르면

모두 그 목적을 상실하고 만다.

싸움은 계속되고 분노와 복수심은
보상받지 못할 상처만 남긴다.

칼이 있다면 서로 찔렀을 것이다.
총이 있다면 서로 갈겨버렸을 것이다.


전쟁이 되어버렸으니까.


. . .


엄마가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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