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고향에 살고 있으면서 가끔 시내를 다니다 보면 아는 얼굴을 만나곤 한다. 낯은 익지만 쉽사리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어색하게 반가운척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그가 동창임을 확인하고는 최근의 안부를 묻는다. 특별히 나서는 성격이 아니고 조금은 내성적인 편이라 동창회나 동기회 모임같은곳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확히 15년동안 한번도 가 보질 않았다. 물론 친했던 친구들이야 계속 연락을 하며 만나기는 하지만 500명이 넘던 고교동창생들 대부분의 모습들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지 오래다. 가끔 민방위 훈련을 가면 친하지 않았던 동창생들을 만날수 있고 아는척 할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15년의 공백탓에 단지 동기동창이라는 끈으로 잇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했던것이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무신경했던것 같다. 고향에 쭉 살면서 졸업했던 모교와 가까이 살면서도 그곳에서 보냈던 추억에 대해 너무나 홀대하며 살아왔던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느닷없이 그 추억을 기억해 내기 위해 동창회에 갔던것은 아니었다. 올해 초, 우연히 모 사이트 카페를 검색하다가 내가 졸업했던 고등학교 동창회카페를 찾게 되었다. 호기심에 그 카페에 가입하고 전화번호를 남겼었다. 몇달뒤 이름도 생소한 한 녀셕이 전화를 해서 자기가 동창회 총무라 소개를 하는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나지 않는 이름... 급히 앨범을 꺼내서 찾아보니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친구...그다지 친하지 않았던...아마도 학교 다니는 동안 한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던것으로 판단되었다. 6월쯤에 동창회가 있으니 참석하라고 하였다. 물론 가지 않았다. 일부러 가지 않았다기 보다는 생활에 묻혀 살다보니 잊어버리고 말았다. 설사 잊어먹지 않았다 해도 혼쾌히 참석하지는 않았을것이다. 그 어색함을 떨쳐 버리고 익숙함이 느껴질때까지의 과정은 늘 내겐 부담이었으니까...그렇게 잊고 지내던 11월 어느날...역시나 그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11월13일..동기동창회를 한다고..꼭 참석해 달라고...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역시나 잊고 있었는데 그 뒤로 전화가 다섯번이나 더 왔다. 순간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 한번 가 보자.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생각에 가 보기로 작정한날...오늘이었다. 체육대회겸 동기동창회. 학교를 올랐다. 가까이 있지만 참 오랜만이었다. 운동장에 오르니 차들도 많았고 군데군데 체육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동창회가 첨인지라 어디가서 무엇부터 해야하는지부터 횟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참 어려울것 같던 분위기에 이미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정말 졸업하고 처음보는 얼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때 빨간 벽돌교실에서 같이 수업받던 친구들...거짓말처럼 소복히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것처럼 그들도 대부분 나의 이름을 기억해 내진 못했다. 하지만 분명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그들과 나 사이에 공유되어있던 추억 덕분에 쉽게 친해지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서로 술을 권하고 같이 공을 차며 참으로 오래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일체감이란게 느껴졌다. 변해 있는 모습들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은 것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녀온 동기동창회 였지만 그간 너무 여유없이 메마르게 살아온 내 인생에 작은 거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를 옮겨 회식을 하고 술이 한잔 더 들어간다음 한 녀석이 교가를 부르자고 했다.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가 단 한줄도 기억나지 않는 교가를 이녀석들은 전부 알고 있단 말인가...묻기도 뭣하고 적당히 주위에 분위기나 맞추며 입만 뻥긋거리려 마음을 먹는 그 순간...한녀석이 선창을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15년동안 한번도 부르지 않아 잊어먹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교가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태백산 높고도 굳은 뜻으로 낙동강 길고도 빈 맘으로 우리는 닦으리 힘을 다하여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길 배워서 ~~~~".
|
|
|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