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신문 11월 1일 <수암칼럼> ⓒ 매일신문
'문화혁명의 광신적 홍위병들이 철저히 과거를 파괴하고 깎아내리는 공자 죽이기로 국력을 쇠잔시켰다'고 하지만, 그 광기와 폭력성의 문제점을 부인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중국의 봉건적 사상은 그 뿌리가 완전히 거세된 면도 있다.
그 후 등소평의 실용주의가 중국을 발전시켰다고 일반적으로 얘기들을 하지만 그 정지작업이 모택동의 일련의 개혁을 통해 이루어진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해마다 봄철이면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수천년 이어온 극심한 빈부격차와 일부의 절대적 빈곤이 해소되었고, 문혁 기간 중의 도시와 농촌에서 소비수준 향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 인민의 높아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혁 개방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문 연구도 있다.
그 중국의 현대사를 단편적으로만 해석해서 현재 우리나라 지도층에게 '미래지향적 사고와 역사관의 눈높이'를 논하는 것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과거청산이 다음 세대의 도약에 밑거름이 됨을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관의 빈곤을 보여줄 따름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늘에 와서 '공자는 죽어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을 하는 이가 있는데, 그 주장의 타당성이 인정받기도 한다. 공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인가?
독재권력이 반대파를 포용?: 수암칼럼 11월 29일 '스페인 지하성당 앞에서'
▲ 매일신문 11월 29일 <수암칼럼> ⓒ 매일신문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예찬론, 그것에 빗댄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개혁에 대한 비난을 보면 기가 막히다는 평가밖에 할 말이 없다.
칼럼은 실제 길이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스페인의 지하 땅굴 속에 있는 바예 데 로스 까이도스 지하성당을 프랑코 총통이 왜 세웠을지를 생각한다.
프랑코 총통은 1936년부터 3년간 전 스페인을 초토화시키다시피한 내전 이후 36년간 철권 정치를 휘두른 군부출신의 독재자다.
프랑코의 그 지하대성당은 호국영령을 기리는 충혼탑이나 국립묘지 같은 성격을 갖는다는 것, 스페인 내전 당시 죽어간 60만 영령들을 왕당파였든 공화파였든 가리지 않고 동족간의 부질없는 살상의 비극을 대성당이라는 상징적인 화해와 포용의 공간 속에 아우르고 녹여 담으려 한 것이라 한다.
그걸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 중인 과거사 관련 법안과 4대 입법문제가 국민들의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 초기 프랑코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스페인 피레네 산맥에서 한국 공수부대를 훈련시켰음을 뿌듯해한다.
독재자에 대한 찬미…무어라 할말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 의미도 대성당 하나로 내전으로 동강난 국민분열을 치유해 낸 프랑코식 통치의 장점을 뚫어보려 한 때문일 것이라 주장한다. 박정희 시대에 언제 반대파를 수용한 적이 있는가?
박정희의 친일 행적을 비판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긴급조치와 유신헌법으로 단순한 정치적 반대자들을 끊임없이 빨갱이라 낙인찍어 형장의 이슬로 보낸 사실, 그 다음 군부독재자 전두환이 권력 장악을 위해 광주에서 수많은 동족을 학살한 것을 무엇이라 설명할 것인가. 그 스페인에서 프랑코 총통 생전의 철권정치, 사후 프랑코 시대에 대한 과거청산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남미의 군사독재자들에 대한 과거청산을 그 식민지 종주국인 스페인이 방해해서 남미의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따라서 사회와 사상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사고와 행동의 다양성?: 수암칼럼 10월 25일 '法 모르는 관리가 볼기친다'
▲ 매일신문 10월 25일 <수암칼럼> ⓒ 매일신문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말과 행동이 나와 다른 집단이나 개인은 누구나 반개혁으로 몰아내치고 갈라버리는 반(反)화합, 반(反)통일(국론) 체질을 어떻게 뜯어고쳐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부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우리는 그들을 반정부인사라 부를 수 있다)이 서울의 남산에, 대구의 앞산 밑에 가서 반죽음이 되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가. 그 시대 우리 사회에 사고의 다양성이 과연 존재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회과학의 학술서들이 금서로 묶여 불심검문이 대상이 되었고, 일부 서적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무슨무슨 간첩단 사건'이란 이름으로 명태 꾸러미 엮듯이 엮어 20-30년의 실형을 선고하거나 사형을 언도해 며칠 만에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가?
개혁정권은 무엇보다 먼저 겸허해야 한다고 하고, '바람으로 벗기려 드는 오기서린 개혁보다는 햇볕으로 벗게 만드는 포용의 개혁을 지향하라'고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 이상으로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쬐고 토론이 만개한 사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민족통일에 대한 관점이 문제: 수암칼럼 10월 11일 '분열이 더 큰 이적행위다'
▲ 매일신문 10월 11일 <수암칼럼> ⓒ 매일신문
'가장 멋진 대북 시나리오가 어떤 것이 좋을 것인지나 머리맞대고 의논해보라'고 외친다.
결국 우리 사회의 가장 묵은 숙제인 민족분단의 문제에 부딪친다. 김정일 정권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살하고 어린이를 굶주리게 하며 경제는 파탄인데 핵무장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그 정권을 무너뜨리고 3천만 북한 인민이 자유와 민주주의 경제체제의 풍요를 함께 누리며 통일한국을 이뤄가는 시나리오를 강구하라고 한다. 여기에 차이가 있고,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북한 정권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대량의 탈북민이 남한으로 밀려들어올 경우 수암칼럼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볼까? 이 부분에 대한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
어차피 시장경제로 이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북한 사회를 두고 그 이행을 도와서 점진적으로 남북한의 통합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대책없이 북한 체제의 붕괴를 야기해서 한반도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그 기회를 주변 강대국들이 활용해 한반도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수암칼럼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세계 사회에서 어떤 집단이 가장 위험한 폭력 정권이고 어떤 집단이 덜 위험한 폭력정권인지를 어떻게 명쾌하게 구분하는지를 수암칼럼은 설명해야 한다.
이제 진정으로 우리 역사가 발전하기 위해서 남한 사회 내부에 남아있는 숙제, 한반도에 남아있는 숙제를 해결하는 데에 수암칼럼이 더 이상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 남한 사회가 경제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러나 동시에 군사독재 등 많은 숙제를 다음 세대들에게 남기는 과정에서 중심지 역할을 했던 지역사회에서, 과거의 성공과 과오의 역사를 뒤로 하고 21C를 지향하는 새로운 사고가 용솟음치도록 하기 위해 이제 '수암칼럼'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해야 한다. 그게 매일신문이 살고, 지역사회가 사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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