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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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철(ttpple)등록 2004.12.24 17:35
대학 4년의 과정을 모두 마치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머리속에서 맴돈다. 학생이라는 십여년 간의 익숙했던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느낌, 그리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상태라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고 어느 시간에 어디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도 사라졌다.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 어떤 구속도 존재하지 않는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교수에서 의사, 그리고 기자. 어린 시절 나의 꿈은 구체적이지 않았기에 쉽게 변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던 순수함이 있었다. 지금 나는 어린 시절의 그 커다란 꿈을 실현시키기 직전의 순간에 있다. 혹 그 꿈들이 그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 직전의 순간. 요즘들어 한 TV CF가 눈에 들어온다. '이 아이가 30년 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음악가가 됩니다.' 라는 류의 멘트로 이어지는 광고의 장면들 속에는, 어린 시절의 꿈많았던 내모습, 그리고 아직은 미래에 대해 불안하기만 한 현재의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사진 속에서 그저 평범한 여느 아이들과 같은 어린이가 훗날 세계 속에 이름이 알려지는 위대한 인물이 된다. CF속의 그 30~40년 간극은 아이와 성인, 두 모습에서 너무나도 큰 괴리로 다가온다. 도대체 저 작은 아이의 모습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인물의 상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중국에서의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에서 폭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나비효과'. 마치 '나비의 날개짓'과 '폭풍'이라는 두 '사건'에서 느끼는 괴리감과도 같다.

CF의 사진속 어린이는 어느 순간부터 세계적인 유명인의 모습을 만들게 되었을까? 어떤 기회? 어떤 계기? 조그만 어린아이가 큰 인물로 자랄 수 있었던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었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코흘리개 아이가 어떻게 저런 위치에까지 갈 수 있을까. 지하철 역에서 문득 발걸음을 새우고 바라보았던 CF, 그리고 거기에서 연상되었던 '나비효과'는 삶의 어떤 결정적인 변화를 바라고 있는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작은 움직임, 작은 행동, 작은 노력일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은 원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그 결과는 점점 커져가는 것이다. 중국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에 폭풍을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처럼. 나비효과는 공간, 시간상의 커다란 괴리가 모두 인과관계에 의해 짜여진 것임을 설명해준다. 지하철 역에서 보았던 CF의 멘트, '이 아이가 30년 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아이가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결정적인' 계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30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작은 노력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결과일 것이다.

무언가 나의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계기가 문득 찾아오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의 모습은 내 삶의 세월동안 가꾸어온, 내 인생의 결과물이다. 지금 나의 머리속을 채우고 있는 '직업'을 갖는 것도 혹은 못 갖는 것도 다 나 자신에게 원인이 있다. 세상에서 '운'과 '우연'만을 바라보게 되면 지금의 작은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세상 모든 것, 모든 행위, 모든 움직임에는 그 어떤 결과를 야기시키는 의미가 있다. 그것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폭풍'과 같은 커다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결과에만 집착했던 태도를 버리고 지금 이순간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그것이 모여 시, 공간상의 엄청난 괴리를 이루는 '폭풍'이 된다는, 나비효과를 믿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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