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이발소에 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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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기(flyturtle)등록 2004.12.28 14:56
지금은 극심한 불경기라고 하지만 한때는 이발사가 아주 안정적인 직업이었을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남자가 미장원에 드나드는 일이 이상하게 보였고 특이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미장원 출입구를 배회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롭게 남성들이 드나들기에 이르더니 아예 남성전용 미용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서 일까. 최근에 미용사들이 전동식 바리캉을 사용하는 것이 적법한지에 대한 이용협회의 질의에 복지부는 ‘이용업은 머리를 깎거나 다듬는 행위인 반면 미용업은 머리 등을 손질하는 행위’라는 법 2조에 의거해 불법이라는 판정을 했다. 바리캉 사용여부를 두고 법적인 조치 운운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국이용사회중앙회가 최근 보건복지부에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냈다고 한다. 물론 설사 이런 탄원이 받아들여진다 할지라도 전체주의 국가체제가 아닌 한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이용사중앙회도 답답한 심정에 그런 탄원서를 냈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이발소가 전혀 자신들이 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손님들이 변하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행정력을 동원해 달라는 듯이 보이니 마치 남자들이 장발단속에 걸려 할 수 없이 이발소에 가야 했던 시절이라도 그리워하는 것인가 하는 혼란 속에 빠지게 한다. 이용사중앙회는 왜 남자들이 이발소에 가지 않는지를 생각해봐야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학창시절에는 편하게 가던 이발소가 더 이상 편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난 그저 간편하게 머리만 깎고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의자를 뒤로 쑤욱 젖히더니 얼굴에 뜨거운 수건을 올려놓는다. 뭐 피부가 노곤 해지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뭔가 시간을 끈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 마사지와 함께 면도를 해주고서는 크림을 발라준 후 다시 수건을 덮고서는 옆자리 손님의 머리를 잘라준다. 다른 자리의 아저씨는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는데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눈만 말똥말똥, 머리에는 아침에 먹은 반찬이 뭐였더라 TV에서 본 드라마 내용이 뭐였더라 하는 잡생각만 떠오른다. 조금 지나자 접이식 이발소 의자에 적응하지 못한 허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편히 자고 있는 아저씨가 신기할 뿐이다.

한참 뒤에야 의자를 바로 세우고 머리를 깎기 시작한다. 그런 뒤 세면대로 안내해 머리를 박박 감겨준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시간은 훌쩍 넘겨 버린 듯하다. 그나마 드라이 와중에 내 앞에 놓인 요구르트 한 병이 수고(?)의 대가인가? 하여간 멍한 정신으로 이발소를 나서니 아뿔싸! 약속시간에 늦고 말았다.















'어느날 갑자기' 같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 바쁘다면 면도는 생략하고 머리만 빨리 깎아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 쉽게 안 나오는 소심한 사람도 있지만, 머리모양 자체도 미장원에 비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위질 자체가 다르다나 뭐라나. 어떤 사람은 하필이면 칸막이가 되어있는 이상한 이발소에 갔다가 다신 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는 법이니 하나를 가지고 모두를 매도할 수는 없지만 한 때 어느 시기에는 그런 이발소가 범람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여간 이렇게 이발소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가?

결론은 이발소도 과감히 변하면 된다. 흰 가운을 헤어 디자이너 뺨치는 세련된 옷차림으로 바꾸고, 컷 위주로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원하는 손님에 따라서는 빨간 머리 염색도 해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존의 면도 후 이발이라는 휴식공간에 걸 맞는 편안한 이발용 의자를 비치해 두고 일반 컷 손님과 분리하는 것도 좋을 성 싶다. 마치 미장원이 머리 손질하는 손님과 컷 손님을 구분하듯이.

소비자는 항상 냉정하다. 이를 강제화 한다고 해서 불황이 호황으로 바뀔 리는 없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이용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장원을 견제해 소비자를 옭아매겠다는 식의 발상은 거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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