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기설기 꼬인 오해의 실타래와
출생에 관련된 비밀, 그리고 남매, 피섞이지 않은 형제의 운명.
이중 복수의 종결과 용서, 화해.
결말의 반전.
이것이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마지막 회에 담은 내용들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어쩌면 그리 신선하지도 않은, 그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다뤄지는 '입양아' '미혼모' '시한부와 죽음' 문제가 사건의 발단이 되어 나오는 식상한 소재를 조금더 새롭고 감각적으로 버무렸다. 임수정의 패션은 올해 겨울 여성 패션의 아이콘이 되었고, 무혁체 말투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드라마 '다모'이후, 드라마 중독에 가까울 만큼 열중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다모 폐인'처럼, '미-사 폐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홈페이지 게시판 접속이 중단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인터넷 상에서는 무혁의 죽음과 은채의 자살, 최윤의 컴백 콘서트와도 같은 드라마 내용의 결말이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일부러 미리 읽지는 않았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을 마지막회 방영이 되는 날까지 미루고 싶었고, 또한 그 기다림을 조금 즐기기로 했다. 또한 그 기다림과 궁금증의 설레임을 배반하지 않은 마지막회의 반전이 매우 즐거웠기에, 프로그램 종영이후의 시청자 소감 정도로 이런 기사를 끄적거려볼 생각인 것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드라마 초반부터, 사건의 빠른 전개와 뮤직 비디오 같은 영상 구성, 짜임새 있는 탄탄한 스토리 구조, 재미있는 양념같은 조연 캐릭터-배우 오들희, 버려진 쌍둥이 누나와 그녀의 아들 김갈치-의 활약, 감각적인 대사로 금새 많은 젊은 시청자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나간 장면으로 구성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살아있는 인물
- 배우, 오들희. 작위적이면서도 허영심있고 또한 다른 한편의 깊은 모성을 보여준 이혜영의 연기가 오들희를 더욱 감칠맛 나는 재미난 인물로 그려준다.
- 버려진 무혁의 쌍둥이 누나와 그녀의 아들 김갈치
버려지고 나서 어릴 때 머리를 다쳐서 정신 발달이 그 시기로 머문 누나. 어디서인지 아비도 모르는 자식을 배어서 스스로 아들의 이름을 '김갈치'라고 짓고 노점에서 김밥장사를 하며 같은 집에서 오손도손 산다. 아마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닌지. 갈치는 형편상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한글 받아쓰기 실력 만큼은 교육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한 제 엄마와 입양되어서 한글이 익숙치 않은 무혁에게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마음 씀씀이나 말하는 것도 어른스럽고 대견해서, 어리더라도 엄마를 든든하고 야무지게 받치는 기둥이다.
#잊지 못하는 과거의 사랑과 짝사랑의 아픈 기억
- 무혁은 한동안 호주로 입양되온 자신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자상하게 김치를 먹여주던 과거의 사랑이 돈많은 마피아와 결혼을 해버리고 그를 떠난 뒤, 죽음을 각오하고 그녀의 생명을 구하고도 한동안 잊지 못해 아파한다.
돈많고 늙은 여배우(오들희)와 가수로 자란 아들(최윤)을 둔 집에 은채의 부모님은 그들의 매니저와 가정부로 함께 살면서 은채는 어린시절부터 십몇년간을 끙끙 앓기만 했던 짝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무혁과 최윤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무혁을 연기한 소지섭의 눈빛은 깊어졌고, 영화 '장화 홍련'의 주연을 따냈던 신인 연기자 임수정은 연기력 위에 은채라는 맑고 여린 영혼을 담아냈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 중에서도 따스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
- 곧 죽게된다는 것, 그래서 심장이 약한 윤에게 심장을 기증하고 죽겠다는 슬프고도 진지한 대사의 중간에 무혁은, 그 상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은채에게 하얀 김이 어린 버스의 창문에 '장남 아니다'라고 서툰 글씨체로 썼다가는 씨익 웃으며 '장난 아니다'로 고쳐쓴다. 지하철을 탈 때에도 무심결에 지하철 광고를 읽으며 한글을 익히려는 그의 모습은 입양아로서의 무혁에 대한 리얼리티를 더해주었다.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보는 마지막회 <미안하다 사랑한다>
- "아줌마, 밥 주세요."
무혁이 자신이 엄마의 의지로 버려진 상황이 아닌 것을 알고 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줌마'라 부르며 하는 대사다. '아줌마 밥주세요'라는 짤막한 대사에도 그의 지독히도 외롭고 가난했던 입양된 어린시절 엄마에게 향하는 애정의 갈증을 다 담아낸다. 서툰 솜씨로 투덜거리며 라면에 계란을 넣어 끓이는 오들희, 라면을 한 입 가득 입안에 물고 서러운 눈물을 토해내는 무혁. 다 먹지도 못하고 '잘먹었습니다'한마디를 남기고, 그 집을 나오며 무혁은 마음 속으로 중얼 거린다. "엄마. 감사합니다."라고.
-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저씨 사랑해요."
무혁의 죽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 은채가 울면서 절규하는 대사. 그녀를 남기고 그는 그녀 곁을 떠난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
무혁이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은채에게 전화해서 하는 짤막한 한마디. 어쩌면 그는 모든 불행과 슬픔을 껴안고 죽음으로 떠나려는 중에도 살아서 남은 모두들에게 하고픈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인 은채,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 민주,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다른 입양아이자 엄마의 아들인 최윤,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을 품게 했던 엄마, 쌍둥이 누나와 갈치... 그가 사랑한 모든 이에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그래도)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심장을 바치고 죽은 그의 묘비에는 영어로 'I'm sorry, I love you'라는 유언같은 한마디가 적혀있다. 그가 죽은 1년이 지난 후에, 은채는 그와 함께했던 호주의 흔적을 둘러보고는 그의 묘비옆에서 준비해온 약을 먹고 무덤안의 그와 나란히 누운 자세로 자살한다.
- 무혁이 코피를 흘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
같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일제히 영화 '천장지구'나 '비트'의 한장면을 떠올렸다. 죽음을 얼마 안남기고 윤에게 심장을 주기위해 그렇게 계속 질주를 했다는데, 비장미와 슬픔이 감도는 분위기가 남자 주인공을 끝없이 동정하게 한다. 이무렵 호주에서 나타난 옛애인은 그에게 다른 치료를 권하지만, 그는 결국 거절한다.
- "윤아, 사랑한다. 아들. 아드을~." 오들희가 매일 아들 윤을 부를 때 하는 말
그 모습를 하염없는 부러움과 질투 혹은 미움과 복수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무혁은 그 장면과 그 대사에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이름을 오버랩시킨다. "무혁아, 아들. 사랑한다. 아들"이라고, 가장 아들로 이름 불리우고 싶었던 존재에게 정작 한번도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한채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 두명의 은채가 호주에서 둘의 추억의 공간에서 교차하는 장면
일인 이역으로 두명의 닮은 여자가 딱 한번 영화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교차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러브레터>가 생각난다. 한명은 예전에 무혁을 우연히 알게되고 사랑하게 되는 은채와 무혁을 잃고 혼자가 된 쓸쓸한 은채 두명이 영화 <러브레터> 한장면처럼 거리에서 스친다.
- "아저씨. 우리는 다음 생에서 만나요. 아저씨. 네?"
은채가 윤에게 가면서 하던 대사. 그리고 마지막 은채의 자살 장면에서 이 대사가 생각 난다. 두명의 남자가 번지 점프대에서 동반자살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는 '인연에 관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야기 구조와 맞물리며 드라마는 마지막을 숭고한 사랑의 두 남녀의 죽음을 간결하게 마무리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엄마가 자신이 버린 아이들이 매니져의 말대로 죽은 것이 아니라, 무혁과 무혁의 이란성 쌍둥이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가와 마지막까지 무혁누나와 갈치를 보살피며 이 일을 책으로 써서 고발하려던 기자가 복수를 접는 과정을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기거나, 짤막하게 잘라내버렸다. 극적인 마무리와 폭발적인 클라이막스 진행을 피하고 은채와 무혁의 죽음으로 드라마의 결말의 포커스를 잡았다. 어쩌면 시청자는 무혁의 엄마(오들희)가 그런 엄청난 사실의 전모를 알게되어 눈물을 펑펑 쏟게 하거나 그것을 통해 그간의 맺힌 분노와 한을 오들희에게 모으면서 사건의 절정을 맞이하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눈물도 시청자의 감정이입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결말이 보다 드라마틱하게 시청자의 마음을 파고 들 수도 있다. 엄마가 끝내 이 사실을 모른채 무혁이 죽은 것이 복수가 싱겁게 마무리 된 석연찮은 느낌도 줄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후자의 결과가 보다 세련되고 깔끔한 마무리를 준다는 느낌이 든다.
'미안하다. 미워한다. 미안하다. 미워한다... 그러나 사랑한다.'
사랑이 '살거나 혹은 죽는 것'의 문제라서, 늘 연애를 두려워하고 피해다니는 나에게,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 그런 마음의 폭풍을 겪고 미움과 사랑과 증오와 운명, 인연이 엉켜진 깊은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떠난 사랑의 빈자리가 너무나 커서 1년의 지독한 외로움과 쓸쓸함과 의미없음 부질없음을 참지 못하고 사랑하는 죽은이의 주검으로 찾아가 미련없이 죽음을 택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은채가 되고 싶어졌다.
|
|
|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