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희망찾기] "본업 따로, 부업 따로... 투잡스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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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일(youngiri)등록 2005.01.05 10:50
2005년 을유년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지금까지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덕담을 많게는 수십 번 이상 주고 받았을 겁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덕담과 같이 올해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특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신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슴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롭게 맞이하는 새해가 마냥 즐겁고 들뜨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 젊은이들과 비정규 노동자들, 그리고 극심한 경제불황에 허덕이는 서민들과 거리의 노숙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기자는 앞으로 4회에 걸쳐 2005년 희망을 찾아 나선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새 경기가 안좋은 탓인지 벤처기업 사정도 말이 아닙니다. 언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닙니까"

회사원 조재근 씨(32.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는 낮에는 직장인이지만 밤만 되면 집 근처 고깃집 사장님으로 변신한다. 소위 잘 나간다는 벤처기업에 다니고 있는 조 씨가 고깃집을 개점한 것은 지난해 11월.

조 씨가 회사를 다니면서 두 번째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회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나, 둘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는 조 씨는 "몸은 피곤할 지 몰라도 한정된 월급에 허덕이던 예전과 달리 경제적으로 한결 여유를 갖게된 것 같아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고 밝혔다.

을유년 첫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된 지난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의 한 건물 앞.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퇴근 후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준비하거나 동료들과 간단히 한잔 걸칠만한 시간이지만 구 모씨(29)씨의 사정은 좀 다르다.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그가 퇴근 이후 더 분주한 이유는 바로 두 번째 직업전선으로 뛰어들기 위해서다.

"지난달부터 개인이나 중소기업체의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는 부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그러나 요즘 들어 대형 프로젝트가 잦은 탓에 밤샘 근무가 많아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요즘 이들처럼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낮에는 본래 직장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또 다른 일을 하는 이른바 '투잡스(Two-Jobs)족'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채용정보 네트워크 커리어와 다음취업센터가 직장인 1339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투잡(Two Job)을 가진 경험이 있는가'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4%가 투잡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결과 투잡 경험은 여성(59.7%)이 남성(40.3%)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경험했던 투잡은 서비스직이 34.9%로 가장 많았고 주말 아르바이트 25.3%, 전공분야 전문직 19.3%, 전공직 프리랜서 14.8%, 온오프라인 판매업 5.7%의 순이었다.

이들이 회사일을 하면서 또다른 일을 갖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계속된 경제불황으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조이면서 고용조건이 불안정해진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일찌감치 사라지고,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에게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투잡스족'이라는 신종
경제용어를 만들어 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까지 경기도 용인에서 건설업체를 운영했던 배 모 사장(48) 역시 '투잡스족'이다. 배 씨는 최근 2년 간의 극심한 건설 경기침체로 회사가 부도나자 오전에는 할인점에서,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부인도 새벽에는 우유와 신문배달을, 낮에는 동네 슈퍼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배 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돈이 들어갈 곳이 한없이 늘어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배 씨는 조만간 몇몇 지인들과 함께 소상공인지원센터를 찾아 유망한 소점포 아이템과 창업비용 등을 알아볼 계획이지만 "요즘 경기가 워낙 안좋다보니 이마저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회사원 유영현 씨(28) 역시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율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린다고는 하지만 경제사정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현재 직장을 다니고는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다음달부터는 투잡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적성 따라, 취미 따라 사정도 가지가지 = '투잡스족'이 늘어나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자아실현의 한 방편으로, 또는 자신의 숨겨진 적성을 살리거나 미래에 대한 경험 등의 이유로 제2의 직업으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대학 시절 미술사학을 전공했던 오미옥 씨(가명. 여. 38)는 틈틈이 국내·외 잡지에 미술평론을 기고하고 있다. 현재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인터넷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오 씨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다면 굳이 한 개의 직업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며 "적성에 맞는 다른 직업을 찾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입사한 윤 모씨(여. 27)도 퇴근 후 서울의 한 보습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윤 씨가 바쁜 회사 생활을 쪼개가면서까지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5년 뒤 회사를 퇴직한 후 학원을 직접 경영할 꿈을 가지고 있는 윤 씨에게 돈을 더 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윤 씨는 "퇴직 이후 미래의 직업에 대한 경험을 쌓는다는 차원에서도 두 가지 일은 필요한 것 같다"며 투잡스족 생활을 적극 권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적성이나 취미생활을 위해 부업을 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워보인다. 한 취업사이트 조사에서 '특기를 살리거나 취미생활을 위해 부업을 하겠다'는 응답은 각각 7%와 4%에 그쳤다.

◆ 무리한 도전, 부작용도 두 배로 = 직장 상사들에게 '투잡스족'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이들 대부분이 이중업무에 시달리느라 직장에서 졸거나, 지각하는 것은 예사고, 결근하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간부는 "일반 직원들 사이에 본업은 팽개친 채 부업 구하기에만 매달리고 있어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투잡스족'이 상대적으로 많은 중소기업이나 벤처업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취업 전문가들은 "내수 경기가 위축되고 구조 조정 등으로 위기감이 팽배해진 직장인들의 '투잡스족'에 대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그러나 경제적인 목적만을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두 가지 일을 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지 냉철히 판단하고, 본업과 부업의 합리적이고 적절한 시간 분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주5일 근무제 실시로 한편에서는 레저 붐이 일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생계를 걱정하면서 밤잠까지 설쳐가며 투잡스에 나서는 사람들. 2005년 희망을 찾으려는 우리 서민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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