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뜨거운 <조선일보>의 맹목적 자기 찬양

독재에 부역한 과거를 일방적 미화로 가리려 하는가

검토 완료

최사라(pilhwa)등록 2005.01.11 18:42

선우휘 전 조선일보 주필 ⓒ 조선일보

언론의 정도를 지킨 거인 '선우 휘' 전 주필?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기사를 통해 "윤전기 세우고 'DJ 납치사설' 쓰다",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감사원장 제의 거절" 등의 표제를 통해 선우 휘 전 주필을 마치 독재에 항거한 투사나 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초 안기부에 불려가서도 민주화 인사를 보호한 일화를 들면서 그의 강직한 면을 부각시키려 한다. '선우 휘' 전 주필은 지금의 <조선일보>를 있게 만든 인물이며, 현재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에 비견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과연 그는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독재에 저항한 기개를 지닌 인물이었을까.

'체면 위한 언론자유선언'이 독재에 저항한 기개인가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방우영 당시 상무가 편집국장 직을 제의했을 때 "방 상무가 정도를 벗어나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말한 일화를 들며 그를 강단 있고 사심 없는 언론인이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방우영은 박정희의 독재에 맞서 언론자유 운동이 일어나자 기자 30명을 해고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선우 전 주필은 언론자유 운동에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선우휘는 조선일보 해직언론인들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이때 그는 왜 후배기자들에게 가만히 있느냐고 말했냐는 해직기자쪽 변호사의 질문에 자유언론수호선언이 "옳은 일이니까 해야 한다기보다는 조선일보의 체면을 위해 남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 史 2권, 한겨레 신문사, 269쪽에서 인용>

이처럼 '체면을 위해' 언론자유선언을 했다고 한 그를 두고 과연 강직한 기개를 가진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

민주화 요구하던 정의구현사제단 비난 사설 1면 배치

<조선일보>의 주장과 배치되는 그의 행보는 또 있다.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친 함세웅 신부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주필로 재임하던 시절 원래 2면에 실리던 사설을 특별히 1면에 배치하면서까지 정의구현사제단의 민주화 운동을 비난했다는 것이다. 함 신부의 증언을 살펴보자.

…70년대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 당시에 선우휘씨가 <조선일보> 주필이었는데 정의구현사제단과 저의 행업을 1면의 특별 사설로 낸 거예요. 그 당시 사설은 원래 2면에 있었답니다.

1면의 특별사설은 큰 정치·사회적 엄청난 사건을 다루는 면이었는데, 정의구현사제단 비난의 글을 1면 사설로 실었으니 <조선일보>의 실체가 입증된 셈입니다. 그때 <조선일보>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2004년 7월 15일자 <오마이뉴스> '일부 성직자 <조선>에 이용 당해...역사에 부끄럽지않은 기자 돼야" 에서>


선우 휘가 주필로서 재임하던 시절 <조선일보>가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에 대해서 왜곡하고, 그들의 활동에 대해 “시국이 어려운데…”라는 이유를 들어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함세웅 신부는 <조선일보>가 독재의 앞잡이구나 확인했다고 할 만큼 당시 <조선일보>의 행보는 민주화나 언론자유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런 행보들을 돌아보면 <조선일보> 주장대로 그를 독재에 맞선 언론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선우 전 주필의 이런 엇갈리는 행보를 통해 본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좀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언론자유 실천은 주제넘은 짓?

조선일보의 궁색한 자기 미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우 전 주필이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를 가리켜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나"라고 일갈한 사례를 들면서 조선일보에도 독재에 맞선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부각하려 든다.

'선우 휘' 전 주필 관련 조선닷컴 기사 ⓒ 조선닷컴

하지만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은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며 박정희와 가깝게 지내는 등 유신 권력의 한 축을 상징하고 있었고, 1974년에는 편집국장이 유신지지 발언까지 실었으며, 이에 항의하는 기자 두 명을 하극상이라는 군대식 표현을 써가며 해직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선우 휘는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독재에 저항하기는커녕 언론자유를 위한 행동을 '주제넘은 짓'이라 폄하하기도 하였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실천을 위해 기자협회 분회의 회보를 발간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신문제작을 하는 일도 벅찬데 그런 것까지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인이 다시 "들어가야 할 기사가 빠지든 깎이든 기자는 기사만 써내라 이 말인가"라고 질문하자 선우휘는 “그렇다”라고 명쾌하게 답변했다. 변호인이 선우휘의 글을 인용하여 "언론이 병들어 빈사상태"에 놓여도 "모든 것을 사장에게 맡기고 가만 있어야 하는가"라고 되묻자 선우휘는 "물론이다"라고 잘라 말했다.<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대한민국 史 2권, 한겨레 신문사, 269쪽에서 인용>

<조선>의 역사 왜곡, 독재에 영합한 과거에 대한 궁색한 미화일뿐

'언론이 병들어 빈사상태'에 놓여도 '모든 것을 사장에게 맡기고 가만 있어야'한다고 말한 그를 어찌 언론인의 정도를 지킨 사람이라 일컫는단 말인가. 이는 명백한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정반대되는 사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조선일보의 기술이 무섭기까지 하다.

심지어 선우 전 주필은 1980년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의 자유를 붙잡고‘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감상적인 처사"라 주장하기도 하였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가 벌어지자 조선일보는 가장 앞장 서 '언론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며 목청을 드높였다. 선우 휘를 통해 과거를 미화하려 들면서 무슨 생각으로 조선일보가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는지 의문이 든다.

독재에 영합한 과거는 묻어둔 채, 특정 사건만을 부각하며 '독재에 항거한 언론' 운운한다면 가히 개구리가 뱀을 삼키고, 개미가 코끼리를 밟아 죽이는 형국이다. 이런 식의 맹목적 자기 미화는 오히려 과거 독재에 부역한 행위를 더욱 돋보이게 할 뿐이다. 지금 조선일보에 먼저 필요한 것은 아전인수식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두웠던 행각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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