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제주도에서 광주로, 인천에서 수원으로 ...

건강보험공단의 상식을 넘어선 노조탄압, ... 여전히 대화의 벽이 가로막힌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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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winwinter)등록 2005.02.03 11:23

사회보험노조경인본부 김기철 남동지부장 ⓒ 박은정

노조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요즘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배제하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용자들의 완고한 벽에 부딪혀 고단한 싸움을 하고 있다.

2월 2일 건강보험공단 남동지사에서 직위해제된 사회보험노조 남동지부장(김기철 씨)을 만났다. "건보공단은 15명의 해고자를 전원 복직시키기로 한 합의를 어기고 있습니다. 노조가 이에 항의하고 농성을 하자 그동안 인정해 온 노동조합 활동을 모두 봉쇄하고 있습니다."

해고자 복직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 건강보험공단과 사회보험노조에 노조지부장 227명 전원 징계 방침이 내려지는 등 대립이 첨예해진 것은 지난 1월 3일 부터다. 건보공단의 시무식에 노동조합이 별도의 시무식을 치르면서 참가하지 않자 건보공단이 시무식에 참여하지 않은 노조간부들을 모두 직위해제 한 것이다.

건보공단은 직위해제일 뿐 징계는 아니라지만 직위해제된 노동자들은 모두 평소 근무지와 동떨어진 곳에 발령을 받고 업무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징계결정을 기다리는 형편이다. 제주도에서 근무하던 한 조합원은 광주로 발령을 받아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 남동지부에서 직위해제를 당한 조합원 3명 역시 수원, 강원 등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다. 정식 징계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실질적인 징계 상황에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 남동지사가 노조사무실의 게시물을 철거한 자리, 맨 아래는 노조현판을 떼어낸 자리다. ⓒ 박은정

"단체협약에 지부장은 노조활동에 주 4시간을 쓸 수 있게 돼 있고, 사안이 있을 경우 노조활동을 우선하도록 돼 있지요." 김기철 지부장은 단체협약이 보장하는 노조활동이 근무지 이탈로 되어 징계위원회에 올라 있다.

나머지 2명의 조합원은 건보공단게시판에 건보공단임원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고 직위해제됐고 심지어는 노동조합게시판에 올린 글을 문제삼아 직위해제 됐다. 징계대상은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근무한 것,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웠다는 것 등 대부분 단체협약이나 관례로 통용되던 일들이다. 마찬가지로 단체협약에 보장하고 있는 "노조시설편의 제공"을 위반한 건강보험공단은 직원휴게실과 같이 사용하고 있던 노조사무실도 철거했다. 조합의 집기나 게시판은 모두 철거됐고 노동조합 현판 마저 떼어냈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월 13일 '직무지침 시달'을 통해 전국 지사에 사실상의 모든 노조활동을 규제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남동지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징계를 비롯한 노조탄압도 '직무지침'의 연장에 있었다.

얼마전 감사원은 건보공단에 대한 감사에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민연금공단 등과 비교했을 때, 지사의 수가 많고 4급 이상의 직원이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었다.

감사원의 구조조정 필요성 제기가 언론에 보도된 것이 최근 진행되는 노조탄압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한편에서 일고 있다.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 노동조합을 배제하기 위한 포석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이런 의혹을 뒷받침 하는 것이 건보공단 감사실이 이미 포화상태인 감사실 인원을 20명이나 증원한 것이다. 새로 선발한 인원은 별도 모집이 아니라 지사 근무 인원을 선발했다는 점, 감사 시기도 아닌 때에 전국을 돌며 특별 감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가를 낸 기록이 있는 조합원을 찾아서 실제 병원 치료를 받았는지를 조사 한다든지, 근무태도를 감시한다든지 조합원들의 생활을 감사한다는 편이 맞습니다." 이처럼 직무와 무관한 감사 내용은 노조원의 '징계 빌미 잡기'라는 의혹을 부추긴다.

"노동조합 게시판은 별도 관리자가 관리합니다. 그래서 노동조합 간부도 누가 글을 올리는 지 알 수 없지요. 그런데 노동조합 자유게시판에 공단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고 징계라니요?" 안정된 직장이라는 건보공단 안에서 노조활동을 하는 간부 노동자는 지금도 상식을 넘어선 노조탄압의 벽 앞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소득없는 면담 - "판단하는 게 아니라, 보고하는 것이 내 임무"
<민주노동당 간부, 건강보험공단 김기호 인천 남동지사장 면담>

인천남동지사장과 면담 중인 민주노동당 박인숙 최고의원과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간부들 ⓒ 박은정

같은 날, 민중진영합동순회를 진행중인 민주노동당 박인숙 최고의원 및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간부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 김기호 남동지사장을 면담했다.

다른 지사에 비해 징계자가 더 많은데다가 노조사무실의 집기를 들어내고 게시물을 모두 철거 하는 등 노조탄압이 거센 남동지사에 이유를 묻고 의견을 전달하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공단 인천남동지사의 조합원은 노동조합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이유로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 김기호 인천남동 지사장 ⓒ 박은정

박인숙 민주노동당 최고의원이 남동지사에 유난히 징계조합원이 많은 이유가 지사의 방침 때문인지를 묻자 김기호 지사장은 "지사는 방침을 따를 뿐이며, 어떤 판단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다른 지사에 근무하는 사람보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를 많이 일으킨 것이라 생각한다." 고 답변했다. 면담 과정에 지사장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침 수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인숙 최고의원 ; 지사장님 사무실 바로 맞은편이 노동조합 사무실이었다. 어제까지도 노동조합 사무실로 모두가 알고 인정해 온 공간을 지침이 내려 왔다고 하루 아침에 집기를 들어내고 하는 것은 일방적인 지침 이행 아닌가? 또 조합원들이 노조조끼를 입고 일하는 것이 징계를 해야 할 이유가 되는가?

김기호 지사장 :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일을 하는 데 유독 20 명 정도 되는 사람들만 조합원 조끼를 입는다. 그러면 지침에 따라서 조끼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무언가?

박인숙 최고의원 : 지사장은 지사 인원을 관리할 책임도 있지만 원활한 관계를 보장할 책임도 있다. 지사에서 같이 일해온 사람들을 보호할 책임과 노사간 합의한 사항을 지킬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김기호 지사장 : 나도 조합원들 문제로 잠을 설치고 감기까지 들었다. 징계 수위를 조절하는 노력은 하겠지만 지침 내용을 보고하는 것이 내 임무다.

한 시간 가량 면담이 이어졌지만 지사장에게 다른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위계와 지침에 따라 언제든지 무용지물이 되고마는 '노사합의'는 노사간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었다. 곁에서 깊은 숨으로 듣고 있던 김기철 지부장이 제지해서야 소득 없는 면담을 끝낼 수 있었다. 김기철 지부장에게 공단과의 대화의 벽은 그가 내쉬는 깊은 숨 만큼이나 높고 두터웠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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