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코리아가 위태롭다

사교육이 우리 사회를 절망으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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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훈(youthpower)등록 2005.02.18 19:48
외국인들이 보고 평하기를 우리 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이라고 한다. 금새 없던 건물이 생겨나고, 어디든 활기가 넘치고, 바쁘게 움직이고, 유행에 민감해서 라이프 스타일이 급속도로 바뀌는 등의 특징을 보고 그런 말들을 하지 않는가 싶다. 그러나 그 역동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살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회적 안전망이 너무도 허술한 이 땅에서는 쉽게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은 바로 각박한 싸움터 같은 이 사회를 벗어나서 삶을 제대로 누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싸움터가 되었거나 말거나 그간 많은 부작용 속에서도 역동성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하나의 축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멈춰있지 않고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역동성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으므로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동기부여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갖은 노력으로 소위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한 분야의 톱이 되는 신화를 이루어 내었다. 또한 ‘개천에서 용났다’는 속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공부해서 신분상승을 이룬 사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서민들은 나도 저런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의 이러한 역동성이 주는 장점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즉 사회의 변동 가능성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오늘이나 내일이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승의 최고 수단은 예나 지금이나 단연 학벌이다. (이것의 옳고 그름을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교육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빈부의 차로 인한 학력 격차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아무리 가난한 집 자식이라도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것이 좋은 직장과 가난 극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가난한 집 자식은 사교육비를 제대로 대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고액 과외를 하는 아이들과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 형편에 이르러서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신분상승의 통로가 차단되고 있다. 아니 신분상승은커녕 저학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결국 부모의 가난을 되물림하게 되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중, 상류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구축한 부와 명예를 지키고 대물림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교육 부문만 보더라도 이들은 고액 과외, 해외 유학 등 엄청난 돈을 뿌려가며 자녀들에게 투자하기 때문에 이들의 자녀들은 인생의 스타트 라인에서 남보다 저만치 앞선 채로 출발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대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니까 갈수록 농어촌 출신과 저소득층 학생들 비율은 줄어들고, 대도시 출신과 고소득층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앞으로 ‘개천에서 용난다’ 는 속담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개천에서는 늘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만 나올 것이고, 용이 나는 물은 따로 존재할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교육이 학력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영향력은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갈수록 사교육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가진 사람들의 자식이 공부를 잘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만일 20-30년 전에도 사교육의 영향이 지금과 같았다면 가난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출세했던 통로를 막고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쌓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계급에 따라 학력의 격차가 뚜렷해진다는 것은 우리처럼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렇듯 계급 간의 수직이동이 드물어져 간다는 것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시대의 부모들이 그토록 힘겹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식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나는 비록 힘들고 고달파도 자식은 좀 더 공부를 많이 시켜서 이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있는 집 자식들에게는 당할 수 없다는 자조가 확산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다이내믹 코리아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역동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출산율 감소로 인한 우려의 소식을 듣게 된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희망이 없는 우리 사회에 자식 낳기가 두렵다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희망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돈의 위력으로 학력이 좌우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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