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친구를 떠나야 했던 사연

[오마이뉴스와 나] 오마이뉴스다운 책임감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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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천(simwon)등록 2005.02.21 10:18
때는 2003년 1월. 3년여간 사귀어온 소중한 친구와 이별하고 말았다. 그것도 서로간에 아주 감정이 안좋은 상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0년 어느 봄날

전국적인 '바꿔'열풍이 휘몰아칠 때, 나는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있던 어느 단체에서 활동하며 오마이뉴스와 친해졌다. 부천에서, 서울 강동에서 우리가 '바꿔'를 외칠 때 오마이뉴스는 그에 호응하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섰고 우리의 눈에 그 오마이뉴스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2000년 5월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에 아니 언론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기사라는 것을 올려본 나는 그 신선함에 부르르 떨며 오마이뉴스에 대한 사랑에 빠져들기 시작했었다. 못쓰는 글이었지만 기사로서의 값어치를 인정받았다는 뿌듯함과 나의 의견을 이제는 맘껏 알릴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마이뉴스는 나의 즐겨찾기에 당당히 들어왔고, 드물게 기사라는 것도 올려보면서 오마이뉴스와 나는 친구가 되어갔다.

환경운동이라는 것은 저 천한 개발독재에 맞서 싸우는 일종의 민주화운동이었고, 오마이뉴스 역시 민주주의를 위해 애써오신 선배 운동가들의 열린 정신이 만들어낸 산물이었기에 거의 모든 면에서 오마이뉴스와 나는 궁합이 척척 맞아들었고, 결국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물결까지도 함께 받아들이며 정말 세상이 바뀌고 있구나 하는 감동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앞둔 2003년 1월이 왔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되었다.

세상에서 버림받았거나 정말로 갈 곳이 없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받아주는 곳, 그 성스러운 사랑의 장소 꽃동네 때문이었다.

꽃동네의 상징인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 그 중 살아남아 꽃동네의 사람으로 살아가던 오웅진 신부가 부동산투기와 횡령, 자신의 형제등 가족들에게 꽃동네회원들이 보내준 소중한 돈을 생활비로 부쳤다는 의혹,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는 의혹등이 날마다 오마이뉴스의 메인화면을 장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기사들을 보며 최초로 나를 엄습한 것은 사랑의 땅인 꽃동네 내부에서 우리들 모르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니 하는 허탈감이였다.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기사가 거듭될수록 "이건 아닌데..."하는 새로운 의문들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기사들은 꽃동네에 가해지는 의혹의 이야기들을 이미 기정사실로 단정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다른 여러 사건들과는 달리 꽃동네 의혹사건의 시작이 내부고발자나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내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꽃동네에 적대적인 외부의 조직과 기업들의 고소고발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오마이뉴스는 간과했던 것이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제보했던 사람이 꽃동네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오마이뉴스가 확인만 했더라도, 검찰의 수사가 왜 시작되었는지를 오마이뉴스가 확인만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커질 이유가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오마이뉴스라는 나의 친구와 논쟁을 시작하였고, 결정적인 한방으로 오마이뉴스라는 나의 친구는 나와의 이별을 고하였다. MBC의 PD수첩이 꽃동네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오마이뉴스는 나를 비롯한 자신의 친구들을 "수구꼴통" 정도로 매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가 PD수첩을 본 후 "안티MBC"라는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거짓보도였다.(안티MBC라는 카페는 MBC를 친북언론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만든 카페이며 기사는 사후 정정되어있음)

오마이뉴스가 우리를 그런식으로 매도하다니. 이건 배신감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쓴소리를 해주는 친구에게 "넌 우리의 적이고 우리의 타도대상이야"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모든 사건들을 수구와 진보의 대결구도로만 바라보는 오마이뉴스의 경직성이 그러한 사태를 몰고왔던 것이다. 어쩌면 꽃동네의 보수적인 투표행태와 오웅진신부의 보수적인 이미지 등이 오마이뉴스를 더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그렇게 50건이 넘는 꽃동네관련 대문기사들이 불과 수개월동안 오마이뉴스를 장식하였고, 기사가 거듭될수록 오마이뉴스와의 골은 더욱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8월1일. 오마이뉴스가 그렇게도 바라던 대로 꽃동네 오웅진 신부와 수녀,수사,환경운동가,마을주민등 다섯사람은 검찰에 의해 불구속기소되었고, 사건은 1년6개월이 지난 현재 21차 공판까지 진행되어 왔다.

나는 오마이뉴스에 대한 서운함과 꽃동네에 대한 의혹해소 차원에서 꽃동네의 거의 모든 공판을 방청하였다. 그리고 중간중간 그 내용들을 오마이뉴스가 아닌 다른 인터넷매체등을 통하여 기사화하였고, 이제는 꽃동네사건이 99% 오해와 음해의 산물이라는 확신을 얻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오마이뉴스는 당한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다.

이미 멀어진 친구이지만 나는 오마이뉴스를 아직도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도 자신의 애독자인 우리를 친구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친구 오마이뉴스에게 바라는 것은 딱 두가지이다.

꽃동네사건을 여론화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으니 사건이 완결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는 것, 그리고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꽃동네에 대하여 오마이뉴스가 보도해 왔던 사실들이 근거없는 억측이나 음해 등으로 결론 지어질 경우 오마이뉴스다운 책임감과 의연함으로 그동안 꽃동네와 꽃동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었던 상처를 깨끗이 치유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오마이뉴스는 친구들을 되찾게 될 것이며, 또한 용기있는 언론으로 박수를 받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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