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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로도덴드론(Rhododendron)이란 이름이 조금 이상한 쌈지공원이 있습니다. 일반 공원은 파크(Park)란 명칭이 붙은 반면 규모가 작아서인지 이곳은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란 명칭이 붙어있습니다.
대저택의 정원에 불과한 그 공원은 한바퀴도는데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나트막한 구릉길을 넘어가면 호수가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딱히 갈데가 없으면 우리가족이 즐겨가는 나들이 길이기도 합니다.
자갈밭이 있어 호수변에서 얇은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기도 합니다. 호수는 날씨에 따라 바다처럼 파도가 일기도 하고 여름이면 수변식물이 몰려와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큰아이는 답답한 일이라도 있으면 호수변의 큰바위에 좌정한채 멀리 수평선에 시선을 두기도 했습니다.
규모가 작아서 그렇게 사람들이 꼬여들지 않는 점도 이름대로 안락지역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날씨가 풀리면 큰 공원에는 주차장에 여유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립니다. 다들 이민자들로 겨우네 못한 만남을 야외공원 잔디밭에서 민족별 모임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런 공원에는 아예 불판이 준비되어 있어 바베큐 파티가 즉석에서 열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하지만 음주는 금지되어 있어 한국분들은 맥주를 몰래 화장지로 감싼 컵에 따루어 마시기도 합니다.
우리가족이 일요일 밤에 거의 빠짐없이 찾는 곳이 그 로도덴드론 안락공원입니다. 한바퀴도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고 월요일에 대비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그리고 우리 내외는 다음주의 가게일을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어느날 밤 이슥하여 그곳으로 향하여 구릉길을 오르내려 호수변에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딸아이가 소리를 지르길래 돌아보았죠.
시커먼 무슨 동물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순간 ‘대체 저게 뭘까?’ 싶었죠.
가끔 큰 공원에는 밤늦게 애완견을 데리고 와서 방치하지 말라는 팻말이 붙어 있죠. 코요테가 출몰하는 지역이라 애완견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 작은 공원에 코요테가?’라는 경계심으로 살피니 다행히 큰 고양이였습니다. 개가 아닌 고양이라면 평소 다루는데 자신이 있는 저가 자세를 낯추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놈이 다가옵니다. 사람만 보면 달아나는 도둑고양이와 달리 이놈이 다가와선 앉아 있는 저를 꼬리를 치켜세우고 한바퀴 돌았습니다.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자 만족한 듯 ‘가릉 가릉’소리라도 내는듯 했습니다. 아이들과 아내도 자세를 낮추어 앉도록 하자 모두들에게 한바퀴씩 몸을 비비듯 돌고는 이내 우리가 키우는 고양이라도 되는 듯 옆에 앉았습니다.
“역시 고양이는 아빠가 잘 다뤄.”
아이들은 이 밤중에 큰 페르시안 고양이를 한껏 만질 수 있는 행운에 아빠 자랑까지 해주었습니다.
목둘레에 리본까지 매어져 있는 걸로 보아 인근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 모양이었습니다. 이름은 적혀있지 않아서 아이들과 갑론을박 끝에 ‘미샤’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딸아이는 한국에서 키우던 ‘미미’가 생각났는지 ‘미미’라고 짓자고 우겼지만, 우리 내외는 성남 모란시장에서 사온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가출한 ‘미미’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미샤’를 밤에 만난 것만 서너번은 됩니다. 밤이면 어디서 ‘미샤’가 나타날 것 같아 두리번거리면 가끔씩 찾아오는 그 페르시안 고양이는 만지는 촉감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도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라 한동안 우리가족의 사랑을 받다가도 자기가 관심이 가는 어떤 것이 떠오르면 이내 자리를 털고 가버리는 무정한 놈입니다.
그 미샤를 낮에 딱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큰 아이가 좌정을 하는 그 느름바위에 녀석이 한낮인데 늘름하게 앉아 있더군요. 저는 그 바위 밑에서 초록뱀을 본적이 있어 여간해서는 호수가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어느 어수룩한 백인 아저씨가 ‘웬 호수가에 고양이가?’해서인지 다가가선 손으로 쓰다듬으려는 차, 글쎄 그 어진 페르시안 고양이가 갑자기 악수라도 하는 듯 앞발로 그 아저씨 손을 할퀴더군요.
미샤의 또 다른 모습에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만 그 양코배기 아저씨의 쩔쩔매던 모습이란…
이곳에 사노라면 한국보다 여러 동물을 구경하는 것 같습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옆 개울가를 밤에 따라오르는 오소리가족을 본 적도 있고 1층 어느 집에서 키우던 흰고양이 두남매는 딸아이의 단골 친구였습니다.
‘조조’, ‘실베스터’란 이름표까지 매단 흰고양이는 딸아이의 짓궂짐도 너끈히 견디며 상대해준 어른스런 고양이였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주위를 어슬렁거릴 때면 나타나서 사람에게도 다가오는 청설모도 있었습니다.
사람보면 달아나는 여느 청설모와 달리 그 깡마른 청설모는 너무 사람들에게 친숙하여 의아했습니다. 하루는 퇴근길에 보니 어느 중동계 아저씨가 호주머니에서 호두조각을 꺼내어그 놈을 훈련까지 시키더군요.
그 아저씨도 그 청설모도 특이했습니다. 그러던 그 청설모가 어느날 사라지고 아이들이 청설모 꼬리를 길에서 보았다는 둥, ‘조조’ 아니면 ‘실베스터’의 짓이라는 둥 시끄럽더군요.
저도 그 청설모가 글쎄 보이지 않는다고 시큰둥 대답하고 말았죠. 그러던 어느날 밤 베란다에 담배를 피우려고 나가 아래를 내려보았죠.
저 멀리 아래서 어떤 흰물체가 파도치듯 뛰어오르는 걸 보았죠. 자세히 보니 낮에 그렇게 양순하게 짓궂은 딸아이의 공격에 늠름하게 대처하던 그 흰고양이 남매였습니다. 아, 글쎄 이놈들이 야행성이라 밤에는 숲에서 온갖 난리를 치는 모양입니다.
무언가를 보았겠죠. 흰고양이 두놈이 숲속에서 마구 뛰어오르는 모습은 밤이어서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일화도 주위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이곳이 재미나지만, TV에서 가끔 등장하는 맹견 ‘핏불(Pit Bull)’의 사육을 금지해야된다는 의견과 ‘핏불’애호론자들의 반대의견에는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가 없더군요.
우리의 ‘도사견’ 비슷한 ‘핏불’이라고 불리는 시커먼 맹견은 가끔씩 아이들을 공격하여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미련스레 보이는 ‘핏불’을 데리고 타는 인간을 만나면 저도 오금이 저립니다.
개를 키우는 것도 좋지만 꼭 저렇게 무서운 놈을 키워야 되는지 속으로 야속하지만 움츠리는 저를 그 개의 소유자는 괜찮다고 안심시킵니다.
저는 속으로 ‘이놈아! 네집 개니 너에게만 괜찮지!’하고 욕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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