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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어나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스탠드를 켰다. 그런데 문득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 읽고 싶어졌다. 배가 고파서 에이스 몇 조각을 털어 넣으며, 책장을 펼쳤다.
이 책은 몇 해 전 할인점에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 함께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책이다. 물론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했다면 비슷한 가격에 마일리지도 얻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대만족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짐작할 수 있듯이 <키친>에는 부엌을 끔찍이도 좋아하는 주인공 사쿠라이 미카게가 등장한다. 저자는 짧고 간결한 어조로 시종일관 앙증맞은 문장을 구사하기에 여념이 없다. 맛있는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면 좋을까. 아무튼 도입부의 <키친>은 청량감을 안겨주어 마음을 들뜨게 하는 소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던 미카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다나베 유이치를 만나게 된다. 꽃을 좋아하던 할머니가 일주일에 두 번 들르는 꽃집의 아르바이트생이 유이치였고, 친절한 청년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미카게는 쌀쌀한 인상의 그를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보게 되었다. 미카게는 자신보다 더 슬퍼하는 유이치의 모습에서 혹시 할머니의 애인은 아닌가 하고 우스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큰 집에 덜렁 혼자 남게 된 미카게에게 유이치는 당분간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하여 함께 지내자고 제안을 해오고, 미카게는 그런 유이치를 쿨하게 보는 동시에 믿음직스러워 한다.
미카게는 나이에 걸맞는 주름과 고르지 못한 치열을 가진 유이치의 어머니 에리코에게서 인간다운 매력을 느끼는데, 사실 에리코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에리코는 아내가 죽은 후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성형수술로 닮지 않은 두 부자의 얼굴을 저자는 부처님처럼 반짝이게 보인다고 묘사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아침 식사 장면을 신기하게 느끼면서도 미카게는 평온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더부살이 생활에서 미카게는 아마도 그들을 또 다른 가족으로 느꼈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리코는 타인에 의해 살해당하고 언제인가 미카게가 느꼈던 상실이 고스란히 유이치에게 전해져오게 된다. 한동안 방황을 하던 유이치는 결국 미카게와 재회하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사랑하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친구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랑이 투명하게 빛나는 봄빛처럼 싱그러웠다.
조연들의 활동도 빛났는데, 미카게의 옛사랑 소타로는 공원을 아주 좋아하고, 식물을 사랑하는 남자라 멋있었다. 반면, 유이치를 좋아하는 오쿠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목메고 있어 딱해 보였지만, 어긋나는 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환상의 물매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어렵게 사랑을 이루기도 하고, 그럴 수 없기도 한,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한없이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어김없이 남기는….
<키친>은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의 책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다시 읽어보아도 여전히 유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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